2023/01 397

기독교와 경쟁하는 세계관들

세계관은 삶의 전반에 대한 전제들의 집합이다. 이 전제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그중 우리 삶에 가장 폭 넓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전제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계관은 유신론적 세계관과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나눌 수 있다. 유신론적 세계관에는 기독교 세계관, 이슬람 세계관, 그리고 뉴에이지 세계관이 무신론적 세계관에는 인본주의 세계관,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 그리고 포스트모던 세계관이 있다. 기독교 세계관과 경쟁하는 다른 세계관들의 진정한 차이를 이해한다면 성경과 창조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고 실천하고 변론하는 일을 탁월하게 준비하게 될 것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어떤 신의 존재를 전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유신론적 세계관은 크게 ..

과정의 미덕에 충실합시다! (2023.1.30, 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4-15).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짧다는 단골 멘트가 있지만 인생은 깁니다. 조선시대에는 평균 수명이 45세이기도 했으나 요즘에는 결혼생활을 그보다 더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과지향적인 문화가 보편화된 고질적 문제가 있습니다. 결과만을 중시하기에 과정을 무시하고 수단의 정당함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긴 인생의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일에서도 과정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성취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

이청준 '눈길' / '우리 부모님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사랑은 진심입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소설가 이청준 님의 단편소설 《눈길》을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부모님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사랑은 진심입니다.”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소설가 이청준 님의 홀어머니는 가난에 치여 집을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타향 살이를 하며 공부하던 아들에겐 이 사실을 숨겼습니다. 아들이 고향에 다니러 오자, 어머니는 주인에게 애틋한 부탁을 합니다. “하루만 이 집을 내집처럼 사용하면 안될까요?” 허락을 얻어낸 어머니는 내 집인 양 아들을 밥해 먹이고 하룻밤 재워 보냅니다. 그리곤 새벽 눈 쌓인 산길을 걸어 아들을 읍내까지 배웅하고 돌아옵니다. 눈길엔 모자가 걸어온 발자국만 오롯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온기가 밴 발자국을 밟고 집으..

죽음의 무도

죽음의 무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건 동서고금의 보편 명제지만 특히 페스트가 막 휩쓸고 지나간 중세 말기 유럽에서는 강박관념과도 같았던것이다. 그 때 〈죽음의 춤〉이라는 연극이 상연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해골 모습을 한 죽음이 다양한 신분과 직업의 사람들― 왕과 왕비, 성직자, 기사, 귀부인, 상인,농노 등―을 하나씩 불러내 춤을 추고 그들이 갖은 이유를 대며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무덤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곧 〈죽음의 춤〉은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지게 되었다.” 문소영 저(著) 《명화독서》 (은행나무, 23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4세기 유럽은 페스트의 영향으로 ‘죽음의 무도(La Danse Macabre)’라는 죽음을 주제로 한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죽음의 무도를 주..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 글쓴이/봉민근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분! 오직 하나의 믿음! 오직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만 왕으로 삼고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천국은 두 마음을 품고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결단코 들어갈 수가 없다. 너와 내가 하나 되고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계시니 우리는 주의 것! 주님과 나는 하나다. 믿음은 좋은 것! 믿음은 오늘도 천국을 호출한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 중독되어 사는 것 생명이 예수 안에 있으니 그분을 떠나서는 살아갈 자 아무도 없다.☆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합당한 삶 (마 6:1-18)

마 6:1-18 묵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코람데오‘) 진솔한 삶. 종교적 열심이 아닌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합당한 삶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구제와 금식은 위선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이요 자기 기만입니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약1:27)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함이며 그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믿음의 다짐입니다. 용서는 용서받은 자의 특권이요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나의 허물과 죄와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그분의 긍휼하심만이 나의 소망이 됩니다.

주여, 나의 위선을 회개합니다.(마 6:1-18)

마 6:1-18 묵상입니다. 참된 의와 참된 구제와 참된 기도와 참된 금식의 바로미터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쁜 짓을 해서 죄인이 아니라 그냥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 죄인을 의식하면 거룩한 쇼만 행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고요한 중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진실한 삶을 삽니다. 주여, 나의 위선을 회개합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누가복음6:46) 기도를 하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다급하게 "주여, 주여"하고 "주님, 주님"하고 부릅니다. 심한 통증을 앓는 환자가 다급하게 약을 찾고, 배고픈 아이가 "밥, 밥, 밥"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기도도 이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증이 가라앉은 후에, 배가 부른 후에는 모든 것을 다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가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주여, 주여"하고 부를 때의 간절함으로 살아가십니까? "주여, 주여"하고 부를 때의 뭐라도 다 내놓을 것 같고, 뭐라도 다 포기할 것 같은 겸손함으로 살아가십니까? "주여, 주여"하고 부를 때의 내려놓음으로 살아가십..

하늘땅사람이야기44 -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평안하신지요? 무정하고 무심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더니 어느덧 상강霜降 절기를 맞게 되었네요. 옛 사람은 이맘 때를 가리켜 "만산滿山 풍엽楓葉은 연지臙脂를 물들이고, 울 밑의 황국화黃菊花는 추광秋光을 자랑한다"고 노래했습니다. 단풍을 보며 여인의 볼에 찍는 연지를 떠올리는 것이 참 정겹습니다. 국화의 노란빛이 사뭇 부드러워진 가을빛이 깃든 것이라 하는 상상력이 참 여유롭습니다. 이런 여유는 멈춰설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일 텐데, 달구치듯 우리를 몰아가는 어떤 강박관념 때문에 가을을 만끽하지 못하고 삽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해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아련한 그리움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자옥한 미세먼지 때문에 해돋이의 장관을 보지 못하고 푸른 바다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