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5 14

하얀 비둘기

하얀 비둘기 1997년 중국 허난성, 폐지를 주워다 팔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50세의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목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합니다. 생후 4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기였습니다. 남자는 자신도 고아로 자라 가족 없는 서러움과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차가운 바닥에 아기를 그냥 버려두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결국 아기의 아빠가 되기로 마음먹고 '하얀 비둘기'라는 뜻의 백기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친부모가 아기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재산의 절반을 털어 증명사진도 찍어두었지만 친부모는 백기를 찾지 않았고 그렇게 남자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환경에서의 양육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끼니도 줄여가며 아이를 돌봤지만 늘 부..

이 재앙(출8:16-19)

이 재앙(출8:16-19) 본문은 이 재앙이다. 개구리 재앙으로 다소 마음이 부드러워졌던 바로는 개구리 재앙의 기운이 조금 잦아들자 다시 강퍅해졌다. 이에 모세가 지팡이로 땅의 먼지들을 치자 모두 이로 변했다. 기독교 신학에서 이 재앙은 대지를 지배하는 신 ‘게브’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응징을 상징한다고 본다. 이 이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하찮은 티끌을 통해서도 충분히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기독교 사상과 은밀하게 뒤섞인 얼룩진 세계관 탈색해야"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한국성과학연구협회는 15일 오후 6시부터 구의동 은혜와 사랑의 교회에서 류현모 서울대 치과대학 교수를 초청해 ‘충돌하는 세계관’이란 제목의 강연을 개최했다. 2013년에 발간된 「충돌하는 세계관」(데이빗 A. 노에벨 저)을 딸과 함께 번역한 그는 먼저 세계관을 정의했다. 그는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선글라스와 같다”며 “우리 생각의 입·출력을 지배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선글라스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기에,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로 삶의 행동과 열매 또한 편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세계관은 거대한 서사”라고 밝히며, “특히 성경적 세계관은 창조-타락-구속-완성의 서사 구조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성경의 이야기 끝은 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베드로후서3:13-14)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와 거류민과 같아서 고난과 불시험을 피할 수 없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에게 약속하신,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우리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이 명령을 기쁘게 받고 주님 앞에서 죄와 허물과 같은 부끄러움이 없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와 허물과 부끄러운 모습이 없지 않습니다..

가버나움 사람 (마 4:12~23)

주현 후 셋째 주일, 2023년 1월 22일 마태복음 4:12, 13절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관한 간략한 보도입니다. 그 보도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 요한의 체포 이후에 예수께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즈음에 예수께서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서 가버나움으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여행을 온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살려고 왔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미 앞에서 예수 가족이 애굽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유대로 돌아왔으나 헤롯의 뒤를 이은 아켈라오 왕이 두려워서 멀리 떨어진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살았다고 짚었습니다.(마 2:23) 나사렛에서 ‘살았다.’라는 헬라어 ‘카토케센’(κατῴκησεν)은 영어로 ‘..

마음이 둔하여 질 때(3)(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성서해석이 하나님 경험에 이르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게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길의 하나라는 말은 곧 언어가 담지하고 있는 존재론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서라는 언어의 세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사실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결코 완벽한 해석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뿐이지요. 오늘 신자들이 성서를 대할 때 벌어지는 가장 결정적인 한계는 성서가 말하게 하지 않고 성서를 이용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저는 언젠가 ‘성서 도구주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위..

마음이 둔하여 질 때(2)(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진 이유는 오병이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의 표징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온갖 걱정거리로 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둔해진 마음은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시나브로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경험을 망각하지 않고, 더 나아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길은,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여기에는 왕도가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의 영혼을 예민하..

마음이 둔하여 질 때(1)(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예수님이 물위를 걸은 이 사건 앞에서 보인 제자들이 모습에 대해서 마가복음 기자는 비판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앞서 일어났던 오병이어 사건에 나타난 예수님의 메시아적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고, 결국 마음이 둔해진 것이라도 말입니다. 이런 보도를 읽는 오늘 우리는 제자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오병이어를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호수에서의 사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의 묵상에도 암시되었지만, 이런 사건들은 시간이 상당히 흐른 다음에 제자들의 기억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오병이..

성령 충만으로 광채 나는 얼굴 (2023.1.25, 수)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출애굽기 34:29). 유전적 요인으로 제 얼굴에는 검버섯이 많았는데 아는 분의 “세수를 좀 하라”는 지적을 듣고는 세수하는 심정으로 검버섯을 제거했습니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환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문득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고 내려올 때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모세의 얼굴이 너무 광채가 나서 대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습니다(33절). 얼마나 얼굴에 광채가 났으면 얼굴을 가릴 정도였을까 생각하다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