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말씀묵상 1602

신앙적 이름(대상2:1-2) / 리민수 목사

신앙적 이름(대상2:1-2)  본문은 언약 백성의 정통 계보에 오르게 된 야곱 곧 이스라엘의 12아들을 소개한다. 본문에 언급되는 이스라엘의 12아들의 이름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이 되는 12지파의 조상이 된다.  이에 본문은 야곱의 아내와 첩이었던 레아, 빌하, 라헬, 실바에게서 각각 태어난 자들끼리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서 야곱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신앙이 변화되기 전의 야곱이라는 불신앙적 이름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후에 얻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앙적 이름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앙의 전형(대상1:35-54) / 리민수 목사

불신앙의 전형(대상1:35-54)  본문은 언약 백성의 주류에서 제외된 에서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 곧 창36장에 근거하여 이삭의 장자 에서의 계보를 에서의 후손들(35-37절), 세일의 후손들(38-42절), 에돔의 왕들(43-54절)로 소개하고 있다.   에서는 육신적으로 장자의 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언약 백성의 정통 족보에 오를 수 있었지만, 영적인 축복을 현세적 만족과 바꾸어 버림으로써, 구속사적 흐름의 본류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에서와 그 후손 에돔 족속은 이후로 하나님이 언약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과 대조되어 불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대상1:28-34) / 리민수 목사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대상1:28-34) 본문은 아브라함에서 야곱까지의 선민 족보로, 아브라함의 다양한 후손들이 소개함으로써,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 곧 많은 자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창17:6)이 성취된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자들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온 땅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은, 이스마엘과 에서가 제외되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태어난 야곱에게로만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언약은 주권적으로 선택된 자들에게 주어지며, 이 선택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 속에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언약의 성취를 보여 주는 것(대상1:24-27) / 리민수 목사

언약의 성취를 보여 주는 것(대상1:24-27)  본문은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선민 족보로,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로 구성된 것처럼, 셈에서 아브라함까지도 10대로 구성되고 있다.  셈의 후손을 다시 반복해서 소개하는 이유는 앞단락에서 언급되었듯이, 노아의 세 아들 중 오직 셈의 후손만이,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선택받은 백성(창9:26)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본문은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조상들 중 중심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셈에서부터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선민의 계승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창3:15의 언약의 성취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임을 잊지 말라(대상1:5-23) / 리민수 목사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임을 잊지 말라(대상1:5-23)  본문은 노아의 세 아들 곧, 야벳의 계보, 함의 계보, 셈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역사적 반역 사건들 곧 니므롯(10절)과 바벨탑 사건(19절)을 다룬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하나님의 창조 명령(창1:28)과 노아에게 주신 은혜 언약의 성취로 인류는 계속 번성하였지만, 바벨탑 사건으로 반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셈의 계보를 맨 뒤에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로서 노아와 실제적인 선민의 시조 아브라함을 연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셈의 후손이 축복을 받은 것은, 바벨탑 사건을 볼 때 그 후손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임을 ..

아리우나 타작 마당이 구속사적 의미(삼하24:18-25) / 리민수 목사

아리우나 타작 마당이 구속사적 의미(삼하24:18-25)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를 좇아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장면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이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며, 훗날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된 곳이다(대하3:1).  장차 이곳은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인간과 다시 화해하시고 긍휼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이 베풀어진 곳이다.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다윗에게 피 흘림의 제사를 요구한 것 또한 그 속죄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을 그치기 위한 것이었다(십자가의 예표).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삼하24:10-17) / 리민수 목사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삼하24:10-17) 본문은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 장면이다. 즉 다윗은 인구 조사를 마친 후, 즉시 회개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심으로서 3일 동안 무려 7만 명이 죽었다.  주목을 끄는 것은 자신의 죄악을 깨달은 다윗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즉 다윗은 자신이 범죄 한 일로 인해 사람의 손에 빠지기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했던 것이다(14절). 본문은 우리에게 비록 죄 용서함을 받을 수는 있어도 누구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시71:1-2) / 이금환 목사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시편71:1-2) 사람은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거나, 또 그런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질병에 묶이기도 하고, 몸이 갇혀서 묶이기도 하고, 돈 때문에 묶이기도 하고, 불의한 힘에 묶이기도 합니다. 도저히 스스로 풀고 나올 수 없을만큼 꽁꽁 묶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누구도 들은 척도 안하고,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도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를 위험과 위기와 모든 딜레마에서 건져 주시며, 어떤 묶임에서라..

한 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삼하24:1-9) / 리민수 목사

한 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삼하24:1-9) 본문은 다윗이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구 조사를 실시한 데 대한 것이다. 즉 다윗이 이처럼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은 유사시 군사력으로 전환 될 수 있는 백성이 수를 헤아려 보는 가운데 군사력을 확인해 보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적과 약한 군사들만으로도 능히 주변 열강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는 다윗이 한 순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망각한 채 교만해진 결과였다.  본문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결국 불완전하여 언제든 죄악 중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줌으로써, 우리가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다윗의 용사들(삼하23:8-39) / 리민수 목사

다윗의 용사들(삼하23:8-39)    본문은 지금까지 자신의 왕국의 군사적 근간이 되어 온 다윗의 용사들에 대하여 소개한다.  첫째,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 3인의 활약상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8-12절). 이 중 요셉밧세벳은 군장의 두목으로 한때 블레셋 사람 800명을 단번에 쳐 죽였던 인물이다. 둘째,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익명의 한 용사의 활약상을 보여 준다(13-23절). 이들은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충성함으로써 개국하는데 큰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셋째, 다윗 군대의 핵심 요원들이었던 30인의 용사들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다(24-39절).  이들은 항상 다윗의 주변에 있으면서 다윗을 호위하고 보좌하던 자들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그들이 큰 업적을 세울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