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산상수훈 20

새로봄: 산상수훈(20)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일하는 사람의 그림 노동자 시인 백무산은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이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렸지만 자신은 주춧돌부터 그렸다 한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집은 밑에서부터 짓는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어느 평자의 표현대로 '인프라적 시각'이 돋보인다. 으로 널리 알려진 신영복 선생은 논리나 사상은 추상적 관념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발로 설 때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감옥에서 만난 목수 할아버지의 예를 들고 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

새로봄: 산상수훈(19)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가을이 흰 안개를 흩뜨린다 늘 여름일 수는 없으니! 밤은 등불 빛으로 나를 유혹하며 추위를 피해 어서 귀가하라고 한다. 머지 않아 나무는 헐벗고 정원은 텅 비겠지. 그저 야생의 포도송이만 집 주위에서 빛을 발하겠지. 그리고 머지않아 그 역시 지고 말겠지. 늘 여름일 수는 없으니! ―헤르만 헤세, 부분 헤세의 시를 읽다가 '늘 여름일 수는 없으니!' 하는 구절에 그만 사로잡히고 말았다. 내가 지금 인생의 계절 중 늦여름을 지나고 있는지 초가을을 지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헤세의 시구를 타고 찾아온 적요함은 쉬 물러갈 줄을 모른다. 겨울산을 좋아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머지 않아 나무는 헐벗고 정원은 텅 비겠지' 하는 구절이 자아내는 쓸쓸함만은 어..

새로봄: 산상수훈(18)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어야 가까운 선배가 안부 전화를 해왔다. 별일 없느냐는 안부가 오간 후에 나는 마치 옆구리에 칼을 들이대듯 느닷없는 요구를 했다. "나 이번에 황금률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하는데 뭐 하나 선물로 줄 이야기 없수?" 대뜸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너는 너 자신이나 잘 대접하고 살아." "정말 그렇지?" 잦아드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꾸하고 나니 가슴이 허해진다. 다른 이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꼭 이 모양이구나 생각하니 참 속상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잘 대접하며 살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무언가로 늘 분주했지만,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살맛을 안겨 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벌레처럼 내 마음속을 기어다닌다. 갑자기 그..

새로봄: 산상수훈(17)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샴쌍둥이처럼 우리는 얼마 전 이란의 샴쌍둥이 자매 랄레와 라단이 분리 수술 도중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송 진행자가 되고 싶었던 랄레와 변호사로 성공하고 싶었던 레단, 이들 자매의 꿈은 이제 세월의 강물에 잠기고 말았다. 머리가 붙은 채로 태어나 둘인 하나로, 하나인 둘로 살아왔던 그 서럽고 고단한 생의 여정이 끝난 것이다. "신의 뜻은 더 나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흐느끼는 아버지의 오열을 뒤로 한 채 그들은 평소의 소망대로 각자 다른 곳에 묻혔다. 그들은 행복할까? 속된 질문이 아픔 속에서 떠오른다. 엉덩이가 붙어있던 한국의 샴 쌍둥이 자매 사랑이와 지혜는 다행히도 분리 수술에 성공해서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

새로봄:산상수훈(16)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걱정도 팔자 '걱정도 팔자'라는 말은 생각할수록 절묘하다. 우리 사는 꼴이 꼭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일을 걱정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산다. 느긋하고 한가로워 보이는 사람을 보면 어디 한 군데쯤 풀린 사람처럼 취급하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주위 사람의 낙천적 인생관조차 재빨리 자기의 걱정거리로 삼는 타고난(?) 걱정꾼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행복한가? 희랍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본래의 질료인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본래의 주인인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살아있는 동안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염려'란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염려'의 지배권을 확인해준 것은 '시간'이다. 태어남과 성장, 노쇠와 소..

새로봄:산상수훈(15)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막 13:14). 읽는 자는 깨달으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무식한 성경 읽기를 해본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이고, 서지 못할 곳은 또 어디인가? '돈'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없지는 않다. 지금의 세계는 '돈'을 축으로 해서 서에서 동으로 회전하고 있다. 이념도 사상도 돈을 중심으로 기우뚱거리며 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시 85:10) 세상은 어쩌면 유토피아, 즉 세상에는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서글프다. 하지만 돈의 파워는 싫든 좋든 우리가..

새로봄:산상수훈(14)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희망은 죽지 않는다 미국이 이라크를 대상으로 벌인 물리적인 전쟁은 끝나가기만, 더 야비하고 위험하고 지속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전후 복구사업에 동참하여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선점하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이해관계가, 그 땅의 고통과 눈물을 삼키고 있다. 이 더러운 전쟁으로부터 비켜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이다. 우리는 이성과 신앙의 이름으로 결박해놓았던 사람의 야수적 본질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어떤 이들은 절박하게, 또 어떤 이들은 막연한 아픔과 분노로. 전쟁을 기획하고 명령하고 수행한 자들은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새로봄:산상수훈(13)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5:39)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 5:39) 봄은 남녘에서 들려오는 화신과, 고비사막을 거쳐 온 황사바람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스크를 준비하고 봄을 기다린다. 달이 바뀌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감기 증세처럼, 사람들은 기분 나쁜 미열에 시달리며 이 봄을 앓고 있다. 중동에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 때문일 것이다. 버들눈에 내려앉는 햇살조차 싱그럽지 않다. 햇살이야 예년과 다르겠는가만 미국의 패권주의를 의구심으로 바라보는 우리 마음에는 봄 신명이 지필 여유가 없다. 계곡을 가득 채우는 물소리의 리듬을 따라 우듬지 끝으로 우줄우줄 봄이 오르고 있지만, 인간 세상에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매섭기만 하다. 구름 걷힌 맑은 하늘 아래 서고 싶다..

새로봄: 산상수훈 (12)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예수는 말의 경제학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던 것 같다. 그의 가르침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현학도 없고, 도저한 변설도 없다. 비유를 사용한 것도 말을 모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실상을 우리 심상에 그리듯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때때로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카롭다. 거짓과 위선을 도려낼 때이다. 그의 말이 꿈을 꾸듯 아름다울 때도 있다. 생의 풍요로움을 드러낼 때이다. 이때 그의 말은 여항의 삶에 지친 이들의 울울한 가슴에 생명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봄바람이 된다. 천박한 호기심을 보이는 무리들에게는 말없음을 통해 천둥보다 더 큰 울림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의 선포는 일종의 파종행위이다. 땅에..

새로봄: 산상수훈(11)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5:20)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 5:20) 정신의 보습 겨울바람에 실려온 옛 기억들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아련하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한숨이 있고, 눈물이 있다. 낮이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담배 내기 화투를 치고, 밤이면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가마니를 치던 아버지들. 그도 저도 시들해지면, 꽁꽁 언 논배미 옆의 물웅덩이를 뒤져 숨어있던 미꾸라지며 붕어·물방개 따위를 잡아한 솥 끓여 푸지게 먹거나, 눈 덮인 앞산 뒷산을 위에서 아래로 누비면서 꿩이나 토끼를 몰아 대곤 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운동선수들의 동계훈련과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겨울 한복판에 봄이 우뚝 서는 것처럼(立春), 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