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채영삼교수 27

교회와 청년의 미래 / 채영삼교수

오늘날 지구환경 문제는 청년들의 삶에 직결된 이슈이다. 대입 시험 특별 기도회로 청년들을 붙잡아 둘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경쟁을 기반으로 한 시대적 세계관 안에서 하는 신앙행위이다. 지금 세상에서 정신이 올바로 박힌 선도적인 청년들은, 환경문제가 얼마나 결정적인 자기 세대의 문제인지 자각하고 있다. 교회가 청년세대를 구시대에 가두어두려 하지 말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여러모로 공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도, 올바른 성경적 가르침으로 붙들어 주고 응원해 줄 필요가 있다. 지금 깨어있는 세상의 젊은이들은, 산과 바다에 놀러가도 쓰레기를 수거하며 놀고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이 시대 이 사회 속에서 교회가 대안일 수 있다고 느끼게 되면 좋을 것이다. 오래 전 우리 사회에 문화적 ..

야고보서 1:21, ‘심긴 말씀’의 개념도

전문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야고보서'를 가르치는데, 논문 발표 시간에 한 학생이 자신이 그린 그림(아래 사진)을 보여주었다. 무슨 그림 같은가? 이 학생은 권유민 전도사님인데, 야고보서 1:21, "너희 안에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을 그 신학적 의미를 담아, 그림으로 그려서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 강의 시간에, 그 주제에 관해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다가, 자신이 그린 그림 이야기를 해서,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야고보서 1:21절, '능히 너희를 구원할 너희 안에 심긴 말씀'의 배경은 무엇인가? '새 언약'이다. 즉,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가 성취된 ..

‘베네딕트 옵션’, 성(性) 혁명 그리고 한국교회

“누구도 대홍수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지 못했다”(23쪽). ‘베네딕트 옵션’이라는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에서 온 책이다. 이미 대홍수가 휩쓸고 간 미국, 서구의 교회의 잔재들을 바라보며, 황량하고 낯선 벌판에서 서서 쓴 책이다. 이제 서구 교회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다고 믿는 저자가 느끼는 당혹감은 다음의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성적(性的) 사안들에 대해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기독교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은 이제 참을 수 없는 편견의 증거로 간주된다.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완패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살게 되었다.”(18쪽).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이다. 서구는 ‘크리스텐뎀’(Chr..

학사 경고를 받은 그대에게 "자기 공부를 하라"

‘교육 참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학사경고를 받고 휴학을 결정한 K와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적성이 맞지 않니? 무엇을 하고 싶으니?’ 전공을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물었던 질문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지금 배우는 학과가 적성에 맞습니다. 다만, 강의마다 일방적으로,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무조건 암기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사실, 뜻밖의 대답도 아니다. 수십 년 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대학교 아니 신학교에서도 항상 그랬었기 때문이다. 일방적 가르침, 암기, 그리고 시험, 시험, 시험. 놀라운 것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치처럼, 교육도 전혀 바뀌지 않는 채 그대로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기야, 국민을 ‘개, 돼지’처럼 생각하고 교육을 무슨 축산업처럼 ..

이것을 무시하지 말라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상식이나 정당한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 특권은 없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나는 성경을 아는 사람이고,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니까, 나는 좀 특별하니까, 세상의 법이나 규칙 따위는 예외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단지 세상의 정당한 법을 어기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주'되신 하나님, 그분의 창조질서와 공의에 합당한 인간적 질서 그 위에서 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불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특권은 없다. 신자들은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오만한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종종 세상 법질서에 어긋나서, 세상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세상의 재판관들이 잘잘못을 가려주어야 가려지는 현실은, 과연 신앙적 ..

‘온전한 사랑’- 퀴어 집회와 교회

우리는 자주, 사랑의 문제에서 어긋난다. 어긋나기 쉽다. 사랑처럼 강렬하고 중대한 문제가 없고, 또 이 세상은 그 '사랑이신 하나님'을 완연히 떠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어그러진 세상이다. 바른 사랑도 쉽게 뒤틀리고, 처음부터 어그러진 길로 내달리는 사랑도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은,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는데, 사랑은 그치지 않아서, 불처럼 타오른다. 가장 뚜렷하고 결정적인, 그리고 뒤집어진 사랑은 우상숭배다. 성경은 그것을 '탐욕'(lust)이라 부른다. 돈이 왕좌에 앉은 사회 속에서 탐욕은 얼마든지 칭송받는 덕목이다. 옛적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우리는 날마다 탐욕에 희생된, 약자(弱者)들의 주검을 목격한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탐욕에서 자유로운가. 교회는 진정 무엇을 사랑하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과 공동서신의 하모니

초기 교회에 있어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나 '오직 은혜'의 복음을 '오해'했던 자들이 분명 있었다. 바울 자신도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런 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후에 '거짓교사들'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특징은 대체로 '반율법주의'인데, 더러는 '영적 신비주의적 경향'과 결합해서 나타나기도 한다(베드로후서, 유다서). 즉,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요구와는 상관없는 교훈과 삶을 가르치면서, 더러는 자신들이 신비한 영적 경험이나 별도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현혹하던 자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약성경에서도 그렇거니와,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오해했던 이러한 경향에 대해 당시 신약시대의 초기 교회가 대응했던 방식이다. 그들은, '바울의 서신을 억지로 풀려는' 태도를 지양했다(벧후 3:..

당신이 무당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가 되어서 무당 노릇을 하면 안 된다. 창조주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 세상이 가장 절실하게 찾는 것이 오히려 '생명'이다.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을 찾아야 끝나는 갈증인데도, 그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니, 눈앞에 있는 생명만 갈구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 없는 제한된 생명인데도 거기에 목을 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 곧 생명의 결핍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 셈이다. '잘 먹고 잘 살아보세'보다 더 강력한 국가이념도 없다. 경제가 종교다. 먹고 사는 것이 최상의 가치이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그런데 교회도 여기에 장단을 맞추고 '예수 믿으면 더 잘 먹고 더 잘 산다'를 복음으로 팔아먹는 무당 같은 짓을 ..

주보에 헌금자 명단, 옳은가

주보에 헌금을 한 성도들의 명단이 오르는 교회들이 많다. 매주 올라온다. 항목도 다양하다.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절기헌금, 건축헌금, 등등. 낸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이 항상 갈린다. 주보를 보았을 때, 거기부터 확인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낸 사람들일 것이다. 당당하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 당당할까, 목사님이나 다른 성도들 앞에 당당할까. 내지 않은 사람들도 볼까. 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까. '나는 이류신자야.'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그 리스트를 확인한 다른 성도들은, 그 리스트에 없는 그 성도를 어찌 볼까. 성도의 교제가 될까. 왜, '각자 믿음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풍성하고, 기쁘게 하라'는 그 헌금을, 이토록 '의의 기준'으로 변질시켰을까. 언제부터일까. 성경적일까. 교회전통에..

구원에 관한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라

Q. 안녕 하세요 교수님.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 드려요. 예수님의 대속사역으로 거듭났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천국은 보장되어 있는 것인데 왜 회개하며 내세를 소망해야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도 복음을 앎으로서 천국은 보장되어 있는거죠? 복음을 안다는 그 자격만으로 천국은 확정된 거죠? 또 어떤 분이 말씀해주기를 예수님의 그런 '대속사역에 대한 사실을 앎 = 곧 회개'이다 라는데 맞나요? A. 그런 생각은 이단적인 가르침에 가깝습니다. 죄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이, 복음을 아는 참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죄에 대한 회개가 없으면서 복음을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요일 2:4). '예수님의 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