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1024

길 잃은 욕망 (막 10:41-45) / 김영봉 목사

해설:야고보와 요한이 선수를 친 것을 알고 다른 열 제자가 “분개하였다”(41절). 그들에게도 같은 욕망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곁으로 부르시고는, 하나님 나라와 땅의 나라를 대조시켜 보이신다. “너희가 아는 대로”(42절)는 세상의 질서를 말한다. “이방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세상의 질서를 두 개의 단어로 정의하신다. 하나는 “내리누르다”인데, 이것은 “위에서 다스리다”(‘카타크리누오’)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세도를 부리다”로서, 이것은 “위에서 권세를 휘두르다”(‘카텍수시아조’)는 의미다. 다른 사람보다 높아져서 군림하고 부리려는 욕망이 세상 돌아가는 기본 원리라는 뜻이다.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세상 질서와 동일..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 (막 10:35-40) / 김영봉 목사

해설:야고보와 요한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필시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이유는 메시아로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바짝 다가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달라고 청한다(36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중에서 자신들을 특별 대우해 주셨다고 믿고 이렇게 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37절)라고 답한다. “영광을 받으실 때”는 메시아 왕국을 세우시고 그 나라의 왕으로 등극할 때를 의미한다. “오른쪽”과 “왼쪽”은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를 의미한다. 제자..

맡기고 기다린다는 것 (막 10:32-34) / 김영봉 목사

해설: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어느 지점에서부터 갑자기 예수님은 비장한 표정과 태도로 걸음을 재촉하신다. 뒤에서 따라가면서 그분의 뒷모습을 본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 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32절). 로마 군대와 결전을 벌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옛날 마카비 형제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황제를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이 벌이실 전쟁에 투신해야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알려 주신다(33-34절). 마가복음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은 세번째 예고다(8:31; 9:31). 실제로는 더 많이, 더 자주 말씀해 주셨..

나와 복음을 위하여 (막 10:23-31) / 김영봉 목사

해설: 그 사람이 떠나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23절)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적잖이 놀란다(24절).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25절)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과장법을 섞은 비유로서,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말씀에 제자들은 더욱 놀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26절) 하고 묻는다. 당시 유대교 가르침에 의하면, 부는 의로운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따라서 부자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 없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는 그렇지 ..

복이 화가 되지 않도록 (막 10:17-22) / 김영봉 목사

해설: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17절). “달려왔다”는 표현에서 그의 절박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다.  그는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17절)이라고 부른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18절)고 답하신다. 그 사람이 생각한 선함과 예수님이 생각한 선함이 달랐다. 인간적인 수준에서 “선하다” 할 만한 사람은 많다. 그 사람은 그 정도의 수준에서 예수님을  선하다고 불렀다. 예수님은 온전한 의미에서 선함을 생각하셨다. 절대적 의미에서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한껏 높인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직 그분이 누구이신지 제대로 ..

차별의식이라는 죄 (막 10:13-16) / 김영봉 목사

해설:그 때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복해 주시기를 청한다. “쓰다듬어 주기”(13절)는 손을 얹어 축복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것을 보고는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는다. “꾸짖다”로 번역된 ‘에피티마오’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을 때 사용된 단어로서(8:33) 호되게 질책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존중하라고 하셨는데(9:36-37),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가는 “예수께서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14절) 라고 적는다. “노하다”로 번역된 ‘아가낙테오’는 심한 분노의 감정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격분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린아이들처럼..

관계를 대하는 방식 (막 10:1-12) / 김영봉 목사

해설:예수께서는 가버나움을 떠나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가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신다(1절). 그곳에서 가르칠 때 바리새파 사람들이 찾아와 다시금 그분을 걸어 넘길 구실을 찾기 위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2절)라고 묻는다. 당시는 남성 중심 사회였기에 이혼은 주로 남편이 아내를 내보내는 형식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들의 속셈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율법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물으신다(3절). 그들은 “이혼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4절).  그것은 신명기 24장 1절 즉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

죄 가운데 허비된 인생 (막 9:42-50) / 김영봉 목사

해설:이어서 예수님은 “죄짓게 하는 것”(42절)에 대해 경고하신다. “작은 사람들”(42절)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존재감이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절대값으로 동등하게 대접받는 곳이다. 그 나라의 원리와 기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대하든 진심과 성심으로 대해야 한다. 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죄짓게”(원어의 의미는 “넘어지게”) 하는 것은 무겁고 무서운 죄다.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42절)는 말은 그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그런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죄짓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것은 손도, 발도, 눈도 아니다. 마음의 죄성이 손과 발과 눈을 조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

편 가르는 세상에서 (막 9:38‑41) / 김영봉 목사

해설:가버나움에 머무르는 동안 요한은, 그들 중에 속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못하게 했다고 보고한다(38절). 그는, 예수님께서 잘 했다고 칭찬하실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두라고 하신다(39절). 정말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면 자신을 믿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다고 하신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스게와의 아들들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11-20절). 에베소에서 그들은 축사자로 활동 했는데,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방법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에 마술적인 힘이 있는 줄 알고,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

뒤집어진 나라 (막 9:33-37) / 김영봉 목사

해설:예수님과 일행은 가버나움에 이르러 잠시 머무신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는 길에서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물으신다(33절).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34절)를 두고 다투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아시고 물으시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일로 다투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이 누누히 가르치셨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이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 때 누가 일등공신으로 인정 받을 것인가를 두고 다투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 놓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