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권력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펴시는 도구입니다.(에 2:1-18) / 방광덕 목사 에 2:1-18 묵상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 권력의 횡포는 하나님 백성을 살리시는 증거입니다. 세상 권력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펴시는 도구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은 하나님 백성이 죽지 않고 산다는 역설적 증거입니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05:18:41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을 누군가의 선을 위해 사용하십니다.(에 1:1-22) / 방광덕 목사 에 1:1-22 묵상입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 배경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성취됩니다. 왕과 왕비의 더럽고 추한 삶은 있다 없어지는 일상이 아니라 하나님 역사의 단초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을 누군가의 선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악을 행한 자는 자멸할 뿐입니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12
그리스도인은 기도와 찬송의 내용이 일치한다.(시 161-176) / 방광덕 목사 시 161-176 묵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미움의 근거가 확실하다. 그 근거가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와 찬송의 내용이 일치한다. 모두 말씀의 인도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각성의 통로가 유일하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11
순종 없는 말씀 묵상은 슬픈 일이다.(시 119:146-160) / 방광덕 목사 시 119:146-160 묵상입니다. 부르짖음과 읊조림은 말씀 묵상의 양면이다. 말씀 묵상은 역동적이고 심오하다. 말씀 묵상은 진리에 부합한 순종을 위함이다. 진리와 먼 순종은 악이다. 순종 없는 말씀 묵상은 슬픈 일이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10
말씀에 굳게 선 사람은 흔들림이 없다.(시 119:129-144) / 방광덕 목사 시 119:129-144 묵상입니다. 말씀의 빛은 빛나는 사람을 만든다. 예수의 빛을 받아 예수를 비춘다. 말씀에 굳게 선 사람은 흔들림이 없다. 흔들림이 없으니 흔드는 것도 없다. 말씀은 의롭고 성실하고 순수한데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09
말씀은 두 마음을 미워합니다.(시 119:113-128) / 방광덕 목사 시 119:113-128 묵상입니다. 말씀은 미워할 것과 사랑할 것을 명백히 구분합니다. 말씀은 사랑과 미움이 혼재된 마음, 즉 두 마음을 미워합니다. 말씀에서 공의와 정의를 빼면 수양과 명상만 남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변질입니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08
혼란이란 말씀 부재이다.(시 119:97-112) / 방광덕 목사 시 119:97-112 묵상입니다.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읊조림이다. 읖조림을 가르치는 곳이 교회이다. 읊조림에서 명철과 온유가 나온다. 말씀으로 삶의 중심을 잡은 사람은 혼란이 없다. 혼란이란 말씀 부재이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07
어떤 극심한 고난 중에도 말씀을 따르겠다는 절규가 찬송이다.(시 119:81-96) / 방광덕 목사 시 119:81-96 묵상입니다. 어떤 극심한 고난 중에도 말씀을 따르겠다는 절규가 찬송이다. 그래서 말씀과 찬송은 구분되지 않는다. 오늘의 본문 전체가 찬송이다. 말씀 때문에 고난받을 기회가 전혀 없는 이 시대는 절규 찬송을 열광 찬송으로 바꿔 부른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06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고난을 자초함이다. (시 119:65-80) / 방광덕 목사 시 119:65-80 묵상입니다.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고난을 자초함이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울고 있어도 웃는 역설적이고 신비한 고난이다. 말씀 묵상을 하는 자들은 모여 '영원한 우리'가 된다. 교만한 자들은 모여 '잠간 우리'가 된다.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05
말씀만이 고난의 참된 의미를 가르칩니다.(시 119:49-64) / 방광덕 목사 시 119:49-64 묵상입니다. 말씀은 어떻게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하고 살리는가? 말씀만이 고난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말씀은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이라도 고난으로 완전하게 하셨다고 한다(히 2:10).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2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