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165

부활의 찬미 / 신권인목사

부활의 찬미(1) 온 우주 만물이 생기를 얻고 새 생명의 옷을 입었도다. 웅대하고 화려한 부활의 축제 만국에 선포되었도다. 가난한 영혼 부요케 하시고 사망의 질곡에서 참 자유 주시려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소망의 빛으로 진리의 충만으로 이 땅에 임하셨도다. 하늘 통치 몰고 오사 선물이 되셨도다. 영원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예수님 부활하셨다. 사망 권세 이기셨다. 만세 만세 만만세로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부활하셨도다. 부활의 찬미(2)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로 이 땅위에 어떤 실패한 삶도 더 이상의 실패로 남아있지 않게 하시고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선포하셨다. 죄와 저주와 사망과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활의 길을 내시고 영원한 샬롬의 나라 그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을 자가 되게 ..

고린도교회의 patron

고린도교회의 patron 먼저 고린도전서는 들은 말과 쓴 것, 곧 편지에 대하여 바울이 응답한 것이다. 1:11에서 글로에의 집으로부터 들은 것은 역대 지도자들 중심으로 파벌이 생긴 것(1:12),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건(5:1), 교인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6:1), 창녀와의 성관계(6:11-20), 성찬에 대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11:18)이다. 고린도로부터 온 편지에 기록된 문제들은 부부문제(7:1), 처녀결혼문제(7:25), 우상제물문제(8:1; 10:14),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제(11:3), 각각 다른 은사 받은 자들 사이의 갈등문제(12:1), 예언과 방언문제(14:1-2),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15:12, 15:1)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에 근거한 노아 행동의 이해(창9:18-27)

성경에 근거한 노아 행동의 이해(창9:18-27) 우리는 노아에 대한 두 가지 선입견에 대해서 성경적 시각을 따라 교정해야 한다. 하나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창6:9) 라는 표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와는 정반대의 사건이라 여기는 본문의 포도주 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 중, 본문과 관련하여 노아가 한 행동을 너무 쉽게 단지 "술 취한 늙은이의 추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먼저 포도주에 관해 생각해 보자. 성경에는 포도주를 먹고 취하는 것을 경고하는 구절이 간혹 등장하지만, 성경의 대부분에서 포도주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진 음료다. 포도주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 음료다." 혹은 "안식의 실현과 관련된 음료다."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히12:2). 믿음은 내 이성의 소산물이 아니다. 합리적이거나 경험적인 산물도 아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닌 "믿음의 창시자(시여 자)이시며, 믿음을 지속하게 하시며, 믿음의 완성자(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히3:1) 우리는 예수를 믿자고 하면 기계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말에는 생경하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fix your thoughts on Jesus) NIV consider Jesus(NASB) 예수님께 네 생각을 고정시키고 예수님을 상고(詳考)하라는 말씀이다. Andrew Murrey는 이 구절이 히브리..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4)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4) 그동안 우리가 배워온 당대 한국교회의 보편적 신앙의 요구는 확신과 모범의 길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주된 설교는 신앙의 유용성, 곧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율법주의적이고 윤리적인 설교가 주류를 이루었다.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식의 공로주의적 신앙생활이 만연했다. 그 당시는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이 전도나 선교, 도덕적 규범, 봉사 같은 것으로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으로 확대되어 사회로 나가기도 했고, 당연히 이러한 시대적 한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적 유산으로 축적된 영적 자산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복음주의는 개인 구원의 확신과 체험과 감격, 간증, 헌신, 등 성경공부와 온갖 프로..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3)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3) 과거 한국 교회는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다.'는 분위기였고, 또 '예수천당'과 '구원의 확신' '구원에 대한 확신과 감격'으로 나아갔고, 그런 신자의 생애를 '하나님 앞에 바친다.'는 데까지 이르는 복음주의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의 양태였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어느 한 두 가지 폭 좁은 선택만 하는 것이 순종이요, 헌신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순교는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한 번에 올인 해서 순교의 신앙을 가졌으나 신앙의 과정을 다루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결사각오의 신앙을 계승하려 했지만, 현실은 더 이상 순교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각오는 돼있는데 죽을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죽는 문제가 아니라 사는 문제입니다. 참된 개혁주의적 기독교는..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2)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2)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실패할 때가 더 많은데, 그 실패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인가?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이 무엇인가? 그 은혜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를 깊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위 신앙의 우등생들이라든가 율법주의자들 앞에서는 개인에 따라 평생 하나님의 부재(不在)로 시달려 심연의 고독을 앓아오는 자들이 퍼 올리는 영혼의 소리를 외면 받기 쉽상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하게 자신이 경험한 부재가 곧 임재(臨在)였음을 역설적으로 발견하고 이러한 자가 경험한 부재(不在)는 시간 속에서 단지 연기된 임재에 불과한 것이라는 시각이 저들에겐 들어설 공간이 없습니다. 고민하고, 거부하고 의심하는 것 역시 ..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1)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1) ''때가 차 매''(갈4:4)라는 말씀의 표현이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루하루 일하셔서 결국 차고 넘침이 공간적 개념을 넘어 시간 속에 누적되고 쌓이는 결과를 갖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 이해는 우리의 신앙의 토대가 되고,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각 개인의 신앙의 균형이나 종합은 신앙의 시작 순간부터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더불어 축적되고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게 믿음을 주셨을지라도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종합이나 균형이 없으니 울부짖기도 하고, 몸부림도 쳐야하고 다듬기도 해야 하고, 채워도..

우리는 영원히 사는 자

우리는 영원히 사는 자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감기나 암이나 어떤 질병이라도 더 심각하거나 더 경중이 없다. 인간은 감기는 달고 살아도 각종 바이러스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러나 암이라도 걸리면 곧 그 질병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종착에 이르렀고 곧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만이 주관자시다. 그 어떤 피조물이 눈곱만큼도 관여할 수 없다. 대개는 그런 사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아무래도 많다 보니 믿는 신자들마저도 암 때문에 혹은 다른 어떤 질병이 그 사람을 좌지우지한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것은 죽음을 통하여 영원히 사는 우리는 암이나 어떤 질병에 걸린 채로 부활의..

갈등 가운데 피는 꽃 /신권인 목사(주은총교회)

오늘도 살충제가 아닌, 인자와 진리가 함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고 싶다 ‘갈등’(葛藤)이란 서로의 다른 주장과 견해와 이해 등이 뒤엉킨 복잡한 관계, 또는 내면의 욕구가 서로 충돌되는 상태를 말한다. 사실 단어 자체로만 보면 ‘칡(葛) 갈’자와 ‘등(藤)나무 등’자로서 칡 나무와 등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본뜻은 칡과 등나무가 엉킨 모양으로 이 두 세력이 만나고 충돌할 때, 이른바 갈등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읊었던 이방원의 ‘하여가’에도 나오는 만수산(萬壽山) 드렁 칡은 7-8월이면 온 산을 점령할 만큼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칡이 유난히 많다. 번식력도 대단하여 이 나무 저 나무 모든 식물들을 닥치는 대로 휘감고는 그 세(勢)를 과시한다. 꽃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