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171

하나님 나라의 주도권 (누가복음 24:5)

하나님 나라의 주도권 (누가복음 24:5) 죽음이 다스리던 질서가 끝나고, 이제 하나님 나라의 주도권이 시작되었도다. 절망은 기쁨으로, 침묵은 증언으로 바뀌었으며, 하나님의 통치는 무덤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임하셨도다. 죄와 저주, 사망의 권세는 무너졌고, 이전의 질서는 전복되었으며 새 창조의 아침이 밝아왔도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이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부활 신앙은 과거의 무덤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은혜의 여정. 하나님 나라의 주도권은 지금 여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일상 속에 드러난다. 믿음은 현실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생명을 품고 '오늘'을 살아내는 용기이다.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여, 영광과 존..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고난 주간 다섯째 날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창조주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마침표 하나 "다 이루었다." 그것은 고통의 종지부가 아니라 사랑의 절정이었다. "다 이루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심연 깊은 진리의 선언이었다. 의미 없이 세상에 뒹구는 죽음의 언어들 그러나 하나의 목소리만이 생명을 잉태한다. "다 이루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진동하며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찢긴 자리였다. 사랑의 극치가 담겨 있는 높은 음자리표였다. "다 이루었다." 그것은 율법의 완성, 예언의 성취, 죄의 속량, 죽음의 정복이었다. “다 이루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문장이 아닌,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의 애가였다. ..

완성을 기다리는 고요한 정지

완성을 기다리는 고요한 정지 기독교 신앙의 고요한 심장부 새 창조를 위한 깊은 숨고르기 가장 근원적인 구속의 신비가 무덤 속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었다. 십자가는 옛 창조를 종결지었고 무덤은 새 창조의 태동이었다. 이 고요함은 죽음의 정적이 아닌, 옛 창조의 끝이자, 새 창조의 시작을 알리는 고요한 전환점이었다.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영광 사이에 놓인 거룩한 틈 그 시간 속에 영원을 잉태하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도 함께 살아났다. 그분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 신뢰와 순종의 절정 절규의 거리감은 친밀함과 신뢰의 언어로 위탁된다. 십자가상에서 드려진 그 마지막 기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내 생애 끝자락을 붙잡고 나를 안으신다. 부활은 침묵을 뚫고 오는 거룩한 생..

'예수님의 세족식'(요13:1-15)

(고난 주간 넷째 날)예수님의 세족식(요13:1-15)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1. 예수님의 언약 성취로서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시점인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을 발을 씻어주신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보내신 새 언약의 중보자요 최종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목전에 두고 베푸시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예언적인 죽음이라기보다는 언약의 성취자로서의 언약적 죽음이 치러지는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그 피로 자기백성들의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

향유사건(마26:1-13, 막14:3-9, 눅7:36-50)

향유사건(마26:1-13, 막14:3-9, 눅7:36-50) 마리아와 마르다의 향유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7장에서는 유일하게 '죄인인 한 여자'로서 또 다른 독립된 본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동일한 본문에 대한 기록이다. 1.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여 향유를 붓는 사건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사건 후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한 유대 지도자들의 음모 사건과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사건 사이에 마리아의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적인 행위를 기록함으로 한 영혼의 아름다움과 사악함을 의도적으로 대조하고 있는 샌드위치 본문이다. 가롯 유다가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에게 돈을 받고 팔기로 결심한 것은 분명히 마리아의 향유 부은 사건과 긴밀히 연결되..

고난 주간 셋째 날(마21장, 눅20-21)

고난 주간 셋째 날(마21장, 눅20-21) 햇살이 예루살렘 성을 꿰뚫듯 내리쬘 때, 성전의 흰 돌들은 마치 불에 달궈진 쇳덩이처럼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위에 내려앉은 정적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기 직전의 숨죽임이었다. 사람들의 속삭임은 낮게 깔렸고, 성전 안으로 말없이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흔들림이 없었고, 눈빛은 마치 사람들의 심연을 꿰뚫고 하늘까지 닿았다. 그의 눈빛은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을 꿰뚫는 듯했지만, 발걸음은 성전의 중심을 정확히 향하고 있었다. 그가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파문처럼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그를 선지자라 했고, 어떤 이는 메시아라 속삭였다. 그러나 그의 발 앞에는 늘 그렇듯이 권세 자들이 서..

부활의 찬미 / 신권인목사

부활의 찬미(1) 온 우주 만물이 생기를 얻고 새 생명의 옷을 입었도다. 웅대하고 화려한 부활의 축제 만국에 선포되었도다. 가난한 영혼 부요케 하시고 사망의 질곡에서 참 자유 주시려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소망의 빛으로 진리의 충만으로 이 땅에 임하셨도다. 하늘 통치 몰고 오사 선물이 되셨도다. 영원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예수님 부활하셨다. 사망 권세 이기셨다. 만세 만세 만만세로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부활하셨도다. 부활의 찬미(2)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로 이 땅위에 어떤 실패한 삶도 더 이상의 실패로 남아있지 않게 하시고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선포하셨다. 죄와 저주와 사망과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활의 길을 내시고 영원한 샬롬의 나라 그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을 자가 되게 ..

고린도교회의 patron

고린도교회의 patron 먼저 고린도전서는 들은 말과 쓴 것, 곧 편지에 대하여 바울이 응답한 것이다. 1:11에서 글로에의 집으로부터 들은 것은 역대 지도자들 중심으로 파벌이 생긴 것(1:12),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건(5:1), 교인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6:1), 창녀와의 성관계(6:11-20), 성찬에 대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11:18)이다. 고린도로부터 온 편지에 기록된 문제들은 부부문제(7:1), 처녀결혼문제(7:25), 우상제물문제(8:1; 10:14),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제(11:3), 각각 다른 은사 받은 자들 사이의 갈등문제(12:1), 예언과 방언문제(14:1-2),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15:12, 15:1)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에 근거한 노아 행동의 이해(창9:18-27)

성경에 근거한 노아 행동의 이해(창9:18-27) 우리는 노아에 대한 두 가지 선입견에 대해서 성경적 시각을 따라 교정해야 한다. 하나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창6:9) 라는 표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와는 정반대의 사건이라 여기는 본문의 포도주 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 중, 본문과 관련하여 노아가 한 행동을 너무 쉽게 단지 "술 취한 늙은이의 추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먼저 포도주에 관해 생각해 보자. 성경에는 포도주를 먹고 취하는 것을 경고하는 구절이 간혹 등장하지만, 성경의 대부분에서 포도주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진 음료다. 포도주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 음료다." 혹은 "안식의 실현과 관련된 음료다."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히12:2). 믿음은 내 이성의 소산물이 아니다. 합리적이거나 경험적인 산물도 아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닌 "믿음의 창시자(시여 자)이시며, 믿음을 지속하게 하시며, 믿음의 완성자(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히3:1) 우리는 예수를 믿자고 하면 기계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말에는 생경하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fix your thoughts on Jesus) NIV consider Jesus(NASB) 예수님께 네 생각을 고정시키고 예수님을 상고(詳考)하라는 말씀이다. Andrew Murrey는 이 구절이 히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