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고린도교회의 patron

새벽지기1 2023. 12. 21. 06:47

고린도교회의 patron

 

먼저 고린도전서는 들은 말과 쓴 것, 곧 편지에 대하여 바울이 응답한 것이다. 1:11에서 글로에의 집으로부터 들은 것은 역대 지도자들 중심으로 파벌이 생긴 것(1:12),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건(5:1), 교인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6:1), 창녀와의 성관계(6:11-20), 성찬에 대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11:18)이다. 고린도로부터 온 편지에 기록된 문제들은 부부문제(7:1), 처녀결혼문제(7:25), 우상제물문제(8:1; 10:14),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제(11:3), 각각 다른 은사 받은 자들 사이의 갈등문제(12:1), 예언과 방언문제(14:1-2),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15:12, 15:1)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1.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자(5:1) - 내어 쫓아내라(5:2;13).

Endogamy(동족결혼) - 부를 잃지 않는 수단.

음행하는 자, 탐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와 먹지도 말라(5:10~11)

 

2. 세상법정에 호소하지 마라(6:1)

불의를 행하고 속임 αποστερεισθε fraud(사기행위, 사기꾼)(6:7~8)

 

3. 창녀와 관계(6:13~20).

 

4. 우상 신전/황제숭배에 참여하지마라(8:1)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권리 있는 자(8:9).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10:1, 14)

그러나 시장에서 파는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은 먹을 수 있다(10:27).

 

5. 이들은 또한 방언 예언을 행하는 귀부인들이 아닌가?(11:5; 14:34~35).

이들의 주장 자유(6:12; 10:23)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킴.

 

바울은 egalitarianism(인류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patrons(후원자)에게 도전 (10:27~33; 12:12~27)

 

성만찬에서 도전(11:17~34). 사랑 장(13) -약자 보호.

 

고전4:18-21("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16:10-11("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를 보면 고린도교인들과 바울의 관계가 갈등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가 있다. 특별히 두 번째 성경구절 16:10-11은 바울 대신 고린도로 보냄을 받은 디모데를 잘 받으라고 한 것 역시 고린도교인들이 바울과 관계가 나빴던 것을 상정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이 의도적으로 사례를 안 받은 것으로 말하지만, 한편으로 관계의 악화로 못 받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울과 고린도교인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부자들 곧 후원자(patrons)들을 가차 없이 공격을 하였다. 고린도교회에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근친상간 사건이 있었다(고전5:1). 이러한 근친상간한 자에 대하여 바울은 출교를 명하고 있다(고전5:13). 아마도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의 후처로 들어온 젊은 여자하고 살다가 이젠 아버지가 죽고 나서 아들이 살았던 모양인데 성욕을 이기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처가 그의 아버지의 엄청난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기 때문에 재산을 지키고자 한 것으로 사료된다. , 이 결혼을 당시 elite들의 족내혼(endogamy)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사람은 부자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6:1-11 세상법정에 선 것을 볼 때, 성적으로 문란했던 고린도에서 사안은 성범죄라기보다 금전적인 문제로 보인다. 고리대금업과 관련하여 법정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상정할 수 있으며, 역시 부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도전적인 이야기를 하였던 것 같다.

 

고린도전서 8장에 우상 제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황제숭배를 의미하며 황제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특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8:9("그런즉 너희의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에 나타난 "자유"는 헬라어로는 "권리"(ἡ ἐξουσα)이다. 따라서 황제숭배에 참여했던 자는 황제숭배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과 권리를 가진 사회의 엘리트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바울이 교회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했을 때(고전14:34-35), 이 여자들은 아마도 엘리트인 남편의 후광을 업고 교회에서 좌지우지했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고린도교회와 사회의 엘리트였던 부자들을 공격한 바울은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바울은 평등주의적 입장에서 약한 자와 가난한 자들을 옹호하였지만 가난한 자들은 바울에게 심정적으로 동감하였지만 물질적으로 후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5:26:한글 개역은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다"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좋게 생각하였다는 정도이지 구제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 고후9:2: 고린도교회가 구제를 시작하였을지라도 결국 유대지도자들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Patrons의 배척을 받는 바울은 고린도교인의 문제를 가지고 온 이들 글로에 집사람들(고전1:11)과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고전16:17)에 대하여 내심 기뻐했을 것이다.

 

J.K. Chow바울이 고린도교회의 patron들과 불화하여 갈라디아서 2:10에서 야고보가 부탁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운동에 실패하였다고 보고 있다.

 

Mark T. Finney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세상 지혜는 당시 로마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the patron and client model로 보고 있다. 즉 후원자와 그의 예속 자(고객)의 모델을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으로 보고 있다. the patron and client model(후원자와 고객)은 또한 the honour and shame model(명예와 수치, 부끄러움)이다. 이런 모델에 지탱하고 있는 사회에서 patron은 물질적인 것을 공급하고 client는 대신에 그에게 honour를 주고 social ratings(사회적 등급)에서 자신에게는 shame을 갖는다. 이런 주고받는 교환(reciprocity 상호관계)의 지배가 불가능한 경우 관계가 끝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고린도전서 11:20-22the patron and client model에 입각한 관계가 파선된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린도전서가 기록될 당시 식사와 성찬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에는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과 식사와 성찬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로부터 분리를 추구하였다. 이와 같이 계급(class)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음으로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급투쟁(class struggle)한다고 하지만, 먼저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짐승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자기들의 계층과 class를 이루며 하층민과 교제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러한 사회적 차별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서 과감하게 대응하였다.

 

바울이 고전11:23-25의 말씀인 성만찬에 사용하는 단락을 갑자기 여기에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the patron and client model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따라 사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로마사회는 honour를 주는 자만을 돕기에 아무나 돕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는 차별이 없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하는 것은, 무슨 유형적 혹은 무형적 가치의 보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본받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비량으로 고린도교회를 선교한 것은 무엇을 얻을까하는 보상을 바래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였기 때문이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고전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 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바울이 가난하건 부자건 사람들로부터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예수님을 본받아 무차별적으로 도왔다.

 

고린도전서 성찬식에서 "나를 기념하라"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다. 이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무상으로 피를 흘린 것을 기념하여 공동체와 사람관계에서 예수님을 본받으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복음적인 자세를 사람 차별하는 고린도교인들이 배우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4: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그러나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차별하고, 은사 받은 자들은 은사 받지 못한 자들을 멸시하였다. Honour를 구하는 신령한 자들은 실은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요, 세상 육신에 속한 자요 젖 먹는 어린아이이다(고전3:1-3).

 

한편 고린도교회의 엘리트들은 사람을 차별하였을 뿐 아니라 성적으로 문란하였다. 방언과 예언을 잘하는 자들 곧 신령한 자들(πνευματικοί)은 하나님의 형상 곧 로고스가 회복되었으므로 즉, 창세기 2:7 남녀 구별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남녀 구별은 창세기 2:7에서나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은사 자들은 성령으로 살기에 남녀구별 없다는 주장을 하므로 자신들의 호모행각을 정당화하였다(고전11:2-16). 두건으로서 여자들을 구별함으로서 고린도교회는 호모문제를 잘 잘 극복하였다(고전11:2). 육은 죽어 없어질 것이기에 금욕주의가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육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방종주의가 고린도교회에 만연하였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성적인 것도 창녀와의 관계로 채워도 된다는 식의 생각으로 그들은 문란한 행동을 하였다(고전6:12-13, 15).

 

이에 대하여 바울은 몸은 부활할 몸이라는 사실과(14). 주님이 값을 주고 산 성전임을(15-20) 밝힘으로서 신령한 자들에게 도전하였다. 고린도교인들 본인들은 성령을 받은 자로서 신령한 자라(πνευματικοί, 고전3:1) 믿었지만 시기, 질투, 차별로 서로 싸우며 음란하고 호모행각을 하므로 "신령한 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책망하였다. 아볼로로 유입된 필로의 철학이 결국은 부활을 부인하게 되고, 호모와 방종주의를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어짐을 파악한 바울은 아볼로의 사역은 타 없어질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전3:12-15). 이러한 바울의 호된 질책으로 아볼로를 지지하는 patrons의 후원을 받을 수 없었다. 공동체의 하나 됨보다도 자신들을 높이는 신령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처럼 섬기기 위해서 낮아진 바울 자신을 제시하며 그들을 질타했다.

 

이후에 "고전4:7-14"을 통하여 바울이 하는 말을 경청해 보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 건데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그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4:7-14).

 

고린도교인들은 자신의 영광만 취하기에 급급하였다. 바울은 그들이 참된 왕 노릇을 원하지만(4:8), 진정한 왕 노릇은 그리스도를 뒤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에 있음을 가르쳤다. 바울은 세속적 가치관 즉 the patron and client model 혹은 the honour and shame model으로 사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사역할 때, 처음부터 세속적 가치와 반대되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고린도교회를 섬겼다. 다음의 바울의 말이 이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1-4).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패턴은 그의 사역의 중심으로 삼았고 고린도 공동체도 이 패턴에 입각하여 살기를 원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또한 부활하신 영광의 주이시다(고전15:3-4, cf. 2:8). 예수는 만물이 말미암은 창조주이시다(고전8:6, "그러나 우리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patron중의 patron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patron들이 따라야할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특별히 고린도전서 15:45는 예수를 살려주는 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기록된바 첫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원문은 아담을 살아있는 ψυχή()라 했고, 마지막 아담을 πνευμα()라 하여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이 구절을 쓸 때에 칠십인 역 창세기 2:7을 염두에 둔 것으로 사료된다. 창세기 2:7의 살아있는 혼(ψυχν ζωσαν)은 고린도전서 15:45에서와 꼭 같다. The patron and client model에 익숙한 1세기 로마제국 인간형은 진흙과 같은 하찮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지도 않았고 그들로부터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살리는 영 그리스도는 진흙같이 사회적으로 멸시 천대받는 자라할지라도 그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주셨다. 고린도전서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니라."

 

고린도전서 8장의 약한 자는 11장의 가난한 자와 같다. 그리스도께서 사회적으로 바닥에 있는 honour rating society에서 완전히 연약한 이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처럼 고린도교회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진흙같이 하찮은 인간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고린도교인들은 그들을 돌아봐야 한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한 죄인으로 죽어 마땅하지만 자신을 살려 사역까지 허락하시고, 복음 때문에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 못지않게 고생하고 취급당하는 자신을 돌보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주의 자비하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고전7:25). 주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가 바울의 사역의 기초였고, 고린도 공동체간의 지배적인 윤리가 되기를 원했다.

 

로마는 관료 행정 조직이 없었다. 로마 사회를 이끌었던 것은 후견인과 피후견인 정책, 패이트론, 클라이언트(Patron-Client System) 관계였고. 최고의 패이트론, 최고의 아버지는 곧 황제였다. 네로는 최고의 패이트론으로서, 가족 국가를 이끄는 최고의 아버지라고 자기를 높였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1:7, 8:15, 15:6을 통해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고, 그 아버지의 맏아들은 예수님이시며(8:29), 우리는 모두 이 맏아들의 형제자매라고 선언한다.
로마의 경우에는 왕의 존재감이 점차적으로 희미해지게 되었다. 유력 귀족에 의한 과두정을 거쳐 시민들이 투표로 정치 현안을 결정하는 민주정이 나타났고 결국 기원전 500년쯤엔 왕정이 붕괴되고 만다.

그리스에서는 왕정이 붕괴되고 귀족정을 형성했다가 귀족들도 권력을 잃게 되고 시민들이 주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로마는 귀족들이 계속 영향력을 유지하였는데 로마 특유의 파트로누스(영어 patron(후원자)의 어원), 클리엔테스(영어 client(고객)의 어원)의 씨족 연맹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트로누스, 클리엔테스의 관계는 유력 귀족 집안이 그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평민들의 뒤를 봐주면 그 평민들은 이러한 귀족 집안에 충성을 바치는 방식이었다. 이 귀족을 파트로누스, 평민을 클리엔테스라고 부른다. 이 파트로누스는 최대한 많은 평민을 클리엔테스로 삼고자 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곧 그들의 영향력과 비례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평민들은 최대한 강력한 힘을 가진 귀족을 파트로누스로 삼고자 하였는데 이는 다른 평민들과의 분쟁에서 어떤 파트로누스가 개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에선 거의 모든 평민들은 뒤를 봐주는 파트로누스 집안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비록 공화정으로 바뀌어도 이 파트로누스 노릇을 하는 귀족 가문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이는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했던 그리스와는 구별되는 특징이었다. 이런 면에서도 지역적 특성이 반드시 정치 체제를 결정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러한 강력한 귀족의 존재 때문에 로마에서는 공화정이 수립된 이후에도 강력한 귀족 집단이 존재하였고 때문에 귀족과 평민의 반목이 끊임없이 있었다. 그러한 반목 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전리품과 획득한 영토의 배분 문제였는데 귀족들은 그들의 특권을 사용하여 전리품 가운데 가장 값나가는 것과 기름진 땅은 자신들이 갖고 평민들에겐 나머지만 분배할 뿐이었다. 또한 귀족은 평민들에게 고이자로 돈을 꿔주어 그들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황폐해진 농토를 복구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쓰게 하고 돈을 못 갚으면 그들의 영토를 몰수한 뒤 노예로 삼는 짓도 하였다.

이러한 귀족의 횡포에 맞서 로마 평민들은 전쟁 수행을 거부하는 파업을 벌이는 방법을 써서 그들의 권리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끝까지 로마의 문제가 되어 로마멸망에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평민이 빠진 로마 군대는 켈트족에게 성이 함락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 후에는 평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호민관이라는 직책과 평민 집회가 생겼으며, 이후 법적으로 평민 귀족의 차이점을 없애버렸다. 평민도 호민관을 역임하면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평민은 들어갈 수 없었다여성이나 외국인의 법적 지위는 낮았고 노예제가 있었으므로 평등 국가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민과 귀족 사이의 계급 장벽이 일단 법적으로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노예
는 상당히 많이 존재했고, 극히 일부의 경우는 해방 노예라는 신분을 거쳐서 시민이 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가내 여노예의 자식이 대부분이고,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 등은 전혀 해당 없다. 귀족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오로지 명예로운 가문의 일원이라는 뜻일 뿐 직접적인 특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권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특권 및 로마의 계속되는 정복 전쟁으로 인한 전리품, 그리고 정치적 유력자로서 주변에 모이는 사람 등을 활용해서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일문의 정치 집단이 된다. 이후 일부 평민 계층이 호민관 - 원로원 - 집정관 - 군단 사령관 테크를 타서 유력 가문이 돼버리는 이른바 평민 귀족이라는 것까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