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4)

새벽지기1 2021. 1. 23. 21:07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4)


그동안 우리가 배워온 당대 한국교회의 보편적 신앙의 요구는 확신과 모범의 길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주된 설교는 신앙의 유용성, 곧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율법주의적이고 윤리적인 설교가 주류를 이루었다.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식의 공로주의적 신앙생활이 만연했다. 그 당시는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이 전도나 선교, 도덕적 규범, 봉사 같은 것으로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으로 확대되어 사회로 나가기도 했고, 당연히 이러한 시대적 한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적 유산으로 축적된 영적 자산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복음주의는 개인 구원의 확신과 체험과 감격, 간증, 헌신, 등 성경공부와 온갖 프로그램 중심의 사역을 이루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번영신학과 삼박자 구원론에 입각한 기복신앙의 병폐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 개혁주의는 우주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갖추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삶의 전 영역에서 삶의 체계로서의 예수를 믿는 한 신앙인이 되는 것과 공동체로의 중요성에 본질을 두었다. 그럴 때, 거기에는 감격만 있고, 헌신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다양한 것들을 망라한 부요함과 지식과 충만함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찬송''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크게 일하신다. 각자의 역할을 다 묶어도 그보다 더 넓게 일하신다.


이쯤에서 우리는 건강한 신앙의 삶을 위한 3가지 중요한 핵심을 짚고 싶다. 그것은 바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삶이다. 믿음이란 신학을 갖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기 관심과 자기 특성 때문에 누구나 전체를 못 가진다. 그래서 학문으로 그리고 역사로 누적된 경험, 즉 교회사에 빚을 져야 한다. 이 말은 교회 역사 속에 검증되고 축적된 건강하고 경건한 신앙 전통과 진리인 것으로 누적된 신학의 유산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신학이라고 하면 형식과 격식을 갖춘 무슨 이성적 사치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몽주의 이래로 불거진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기독교의 권위와 질서에 대해 가졌던 반감과 왜곡이라는 게 먼저 떠오를 수 있기에 신학에도 그런 결점이 있을 수 있어서 반발을 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학 무용론은 무지의 소치다. 신학의 뿌리가 없으면 신앙의 열매와 꽃을 도무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존재의 가벼움이고, 경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