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44

부족함 없는 삶, 가능한가?(시 23:1-6)

부활절 4주, 2024년 4월 21일 히브리어 성경 시 23편은 ‘다윗의 시편’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우리말 성경도 라는 표제를 달았습니다. 시 23편을 노랫말로 하는 찬양곡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는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노랫말이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은혜롭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로 끝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생을 산다면 대만족이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한평생..

생명의 로고스 (요일 1:1-10)

부활절 2주, 2024년 4월 7일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대개 인사말로 시작해서 본론을 다룬 다음에 인사말로 끝내는데 요한1서는 그런 인사말 없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합니다. 인사말을 주고받을 수 없을 정도로 뭔가 다급한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요일 1: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생명의 말씀’이라고 할 때 그 ‘말씀’은 그리스어 로고스의 번역입니다. 로고스는 말, 단어, 이야기, 그리고 이성, 이치, 합리성 등등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입니다.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뜻입니다. ‘저 사람은 로고스가 없어.’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세상과 삶을 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

예수 부활의 첫 증인들 (막 16:1-8)

부활 주일, 2024년 3월31일 우리에게 음력으로 계산하는 추석과 설날이 양력으로는 매해 날짜가 달라지듯이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도 유대력으로 지키기에 매해 날짜가 달라집니다. 보통 3월 말이나 4월 초입니다. 따라서 유월절과 연동된 그리스도교의 부활절도 매해 날짜가 변합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성지 순례차 예루살렘에 오셨다가 체포당하고 심문과 재판을 받은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셨습니다. 단순하게 날짜별로 계산하면 목요일에 체포당하고 밤중에 산헤드린 종교 법정에서 신성 모독죄로 고발당하신 뒤, 금요일 오전에 로마 총독 빌라도의 로마 법정에서 사회 소요죄로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일 오전 9시에 십자가형이 집행되었고, 오후 3시에 숨이 끊어지셨으며, 곧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

향유를 손에 든 여자 (막 14:1-11) / 정용섭목사

종려 주일, 2024년 3월 24일 고난주간 오늘은 세계 교회가 종려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다음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한 주간에 걸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서 여러 일을 겪으시다가 체포와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이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께는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한 겁니다. 그 마녀사냥의 출발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시작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 첫 구절인 막 14:1절이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

새 언약의 날 (렘 31:31-34)

사순절 5주, 2024년 3월 17일 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영적 깊이에서 큰 위로를 받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짠한 심정이 됩니다. 그가 겪었던 실존적인 고뇌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격동기였습니다. 유대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지기 얼마 전 유대를 개혁해보려 했던 요시야 왕은 전쟁에 나갔다가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전사합니다. 그 뒤로 유대는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요시야가 그렇게 졸지에 죽지만 않았다면 예레미야와 더불어서 유대를 새로운 나라로 만들어냈을지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 다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왕궁 귀족들에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혔습니다. 인민재판을 받아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렘 26장에 나옵니다. 당시 지도급..

죽임에서 살림으로!(엡 2:1-10)

사순절 4주, 2024년 3월 10일 그리스도교를 구원 종교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 구원 지향적이지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예술, 문학, 과학, 정치에 이르는 인간 문명 활동도 인간 구원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도교를 구원 종교라는 특징으로 이름 붙이는 이유는 교회가 구원 문제를 그 어떤 종교나 인간 문명과 달리 더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는 말에 교회의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일까요?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 서로 대답이 다르기도 할 겁니다. 죽임에서 이 문제를 오늘 설교 본문인 엡 2:1-10절은 가장 간명하게 설명합니다. 1절과 5절에 보듯이 하나님께서 ..

십자가의 길과 하나님의 능력 (고전 1:18-25) / 정용섭목사

사순절 3주, 2024년 3월 3일 오늘 설교 본문인 고전 1:18-25절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1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라고 할 때 도는 그리스어 λόγος의 번역입니다. 이 로고스는 그리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 또는 노장사상의 도(道)나 하이데거의 존재(Sein)처럼 만물의 근원이자 원리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은 1:1절에서 로고스를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말 성경은 이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와 달리 ..

예수 승천과 하나님 우편 (벧전 3:18-22)

사순절 1주, 2024년 2월 18일 베드로전서는 1:1절에서 수신인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거론된 지명은 모두 지금의 튀르키예에 해당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시기는 네로가 그리스도인을 유별하게 박해하던 60년대이거나 도미티안 황제가 박해하던 90년대라고 합니다. 집필 연대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박해받던 시기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는 특히 ‘고난’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2:19절에서는 부당한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라고 했고, 4:13절에서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오히려..

여호와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 (사 40:21-31)

주현절 후 5주, 2024년 2월 4일 고대 유대인들에게 기원전 587년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연도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무너진 해이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의 집은 물론이고 왕궁과 성전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난민이 되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문화, 상업, 예술 등등, 모든 사회 체제가 해체되었습니다. 지도급 인사들은 상당수가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신세 한탄을 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오십 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제국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의 재일교포나 재미교포들처럼 거기서 돈을 번 사람도 생겼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도 나왔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과 ..

예수의 배타적 권위 (막 1:21-28)

주현절 후 4주, 2024년 1월 28일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은 공생애 초창기에 주로 갈릴리 호수 북쪽 어촌인 가버나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막 1:21-28절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이 되어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성경을 읽고 그 성경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남자 성인이라면 그 성경 본문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 21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설교하신 겁니다. 그걸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22절에 나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