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6주, 2025년 5월 25일
우리는 오늘 대략 2천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장소는 에게해(海)를 사이에 둔 지금의 튀르키예와 그리스입니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기원전 12-13세기) 이야기가 바로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서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는 고대 도시 트로이 왕자가 그리스 스파르타 왕의 아내를 빼앗은 일이 빌미가 되어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대략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대문호 호메로스는 그 전쟁을 배경으로 「일리아스」와「오디세이아」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일리아스」는 전쟁 10년 중에서 마지막 50일에 벌어진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자기 나라로 귀환하면서 겪은 파노라마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 서양 문학과 철학과 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드로나에서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오는 드로아라는 지명이 이 이야기와 관련됩니다. 드로아는 튀르키예 북서쪽 차나칼레 지역에 위치하는 트로이 유적지에서 대략 16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트로이와 드로아는 발음에서도 비슷하고 위치에서도 비슷합니다. 우여곡절을 거쳐서 드로아에 도착한 바울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오디세이아」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유대교 율법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서를 비롯한 그가 쓴 여러 편의 신약 문헌에서 보듯이 고급 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학자였으니까요. 먼저 바울은 무슨 연유로 드로아에 왔는지를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지금의 튀르키예 동편 끝 지역인 안디옥 교회를 전초기지로 3차에 걸친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1차에는 바나바와 함께했습니다. 2차 전도 활동을 시작하면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의견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바나바는 1차 때 동행했던 (그의 조카로 추정되는) 마가를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바울은 마가가 성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그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각각 다른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후로 사도행전은 바울의 행적만 보도합니다. 바울 일행은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갔다가 더베와 루스드라를 거쳤습니다. 바울이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는 중에 행 16:6절에 갑자기 이상한 보도가 나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바울 일행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서 무시아 앞에 와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할 때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7절이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성령이 못하게 했다거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은 바울이 그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쫓기다시피 서쪽 끝자락인 드로아까지 온 겁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바울이 그 지역에서 더는 선교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이유는 크게 봐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울에 대한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의 적개심입니다. 사도행전 후반부에(행 20:3 이하) 자세하게 나오지만,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은 바울을 배신자로 여기고 제거할 기회를 찾았습니다. 그럴만합니다. 바울은 유대교 정통주의자로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불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흥종교인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으니까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같은 복음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상당한 정도로 배척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사도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로 옥신각신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예수 생전에 예수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예수로부터 제자로 임명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활의 예수를 만났기에 사도라 불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후 1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변호합니다.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 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유대 그리스도교는 율법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바울은 부정했다는 신학적 차이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에 대표자를 파송해서 바울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는 갈 2장과 고린도후서 등등에 나옵니다. 어쩌면 2차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가를 동행시킬 거냐, 하는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다가 결국 갈라진 실질적인 이유도 이런 더 근본적인 갈등에 놓였을지 모릅니다. 어쨌든지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주류라 할 예루살렘 교회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쫓기고 쫓기다가 드로아에 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을 본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마게도냐 사람
이제 바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 되는 일도 아니고 명예를 높이는 일도 아닌데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 미움과 배척을 받으면서까지 복음 전하는 일을 이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래도 참고 견뎌야 할까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까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을 겁니다. 바로 그 순간에 바울은 이상한 환상을 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9절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런 표현은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칭 22:2)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모세는 호렙산에서 “네 선 곳을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라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소리와 환상은 어떤 사건에 대한 사실 보도가 아니라 문학적 메타포입니다.
앞에서 저는 바울이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중에 어느 날 마게도냐에 사는 어떤 사람이 바울을 찾아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람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성지 순례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성지 순례를 마치고 다시 마게도냐로 돌아갔습니다. 마게도냐에는 아직 교회다운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 바울에 관한 소식을 알게 되어 바울을 자기 지역으로 초청하려고 어느날 밤에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일본에 있는 한인 교포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에 있는 목사를 찾아가서 일본으로 와서 교회를 맡아주기를 청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고심 끝에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를 10절이 이렇게 보도합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는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마게도냐로 건너가려는 이 결단이 바로 유럽 선교에 불을 당긴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만약 당시에 바울이 마게도냐로 건너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교 역사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지 모르니까요.
빌립보 교회
본문 11절 이하를 따르면 바울 일행은 이제 드로아에서 배를 탔습니다. 드로아와 마게도냐 중간 지중해 북쪽 지역에 있는 사모드라게 섬에 들렸다가 다음날 네압볼리 항구에 닿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긴 항해입니다. 지금의 이스탄불로 우회했다면 배 타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겠지요. 바울 일행은 걸어서 빌립보에 들어갑니다. 빌립보에서 어떻게 교회 공동체가 시작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안식일이 되어 강가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기도회로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거기 모인 여자들에게 바울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남자들은 그 모임에 없었나 봅니다. 말씀을 듣던 여자 중에서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가장 고급 제품이라 할 자색 옷감을 거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바울의 설교에 은혜를 받았나 봅니다. 루디아와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간곡한 어투로 자기 집에 바울 일행이 머물기를 청했습니다. 당연히 예배 처소로도 사용되었겠지요. 그녀의 말을 본문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이렇게 빌립보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다른 지역에 갔을 때도 계속해서 바울의 유럽 선교를 도왔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아주 오랫동안 돈독했던 모양입니다. 그 내용이 신약성경 빌립보서에 나옵니다. 빌 4:15-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우리는 오늘도 이 구절만이 아니라 빌립보서 전체를 통해서 많은 신앙적인 깨우침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경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갈 비전을 품었기에 역사에 등장한 겁니다. 이렇게 역사는 신비롭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결단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마게도냐 사람들이 와 달란다고 해서 바다를 건너서 그쪽으로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속된 표현으로 ‘쪽팔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류로부터 밀려난 신세라는 게 확인되는 행동이니까요. 그런데도 그는 그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 비전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런 거룩한 비전에 사로잡힐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그리스도교 역사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었을까요?
사나 죽으나
우리가 지금 그에게서 직접 답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쓴 각종 글에서 간접적으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의 답을 롬 14:8절에서 들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정말 엄청난 고백이고 외침이자 절규이며 찬송입니다. 앞에서 반복해서 짚었듯이 바울은 드로아에서 난처한 상황에 떨어졌습니다. 이것으로 자신의 선교 활동은 끝났다고 생각할 만합니다. 그런데도 그가 마게도냐로 건너올 결단을 내린 이유는 삶과 죽음을 초월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니까 자기의 선교 활동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그걸 누가 알아주는지, 자기가 위대한 신학자와 선교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등등, 이런 문제가 아주 소소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거룩한 비전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거룩한 비전은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와 직결됩니다. 그 주제를 가리키는 구절은 행 1:8절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의 선교 비전에 영향을 받아서 이 구절을 쓴 게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구절은 땅끝까지 예수의 증인으로 실제로 살았던 대표적 인물이 바울이고,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것 외에 다른 삶의 목표는 없습니다. 이런 말이 뜻밖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딘가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땅끝까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라고 하니, 불편하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나 선교사처럼 그런 일을 전업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속 직업을 가진 사람도 궁극에서는 모두 땅끝까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자기 염려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참된 자유와 참된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것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된다 한들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는 그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땅끝’을 여러분의 인격 전체, 인생 전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과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죽기 전에 여러분의 인격 전체가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는 열망이, 즉 은혜와 진리를 향한 열망이 분명하다면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가 선명하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 열망과 깨우침이 또렷해질 때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바울처럼 여러분도 거룩한 비전을 경험한 사람으로 일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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