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208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렘50: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예레미야50:4-5) "그 날 그 때"는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의 초대 왕인고레스에 의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에서 풀려나 고국 땅으로 돌아오던 그 날, 그 때입니다. 지금 우리는 2400여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 그 날, 그 때를 성경에서 보지만, 예레미야가 예레미야를 기록할 때의 시점에서는 아직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도 않은 미래의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감격의 눈물을..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대상29:1-9) / 리민수 목사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대상29:1-9) 다윗은 임종을 눈 앞에 둔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것은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의 준비로 이어졌다. 다윗 자신이 모든 헌물을 솔선 수범하여 바침으로써 백성들도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헌납하도록 하였다. 이런 다윗의 모범적인 헌금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에서 나온 것이다. 다윗은 모든 성도들이 삶의 본이 되어 주신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헌신적이고 성숙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예표한다.

목사공부(146)- 교회개척(4) / 정용섭 목사

교회개척(4) 나는 현풍교회를 1997년 말에 그만두고, 1998년부터 2년 동안 영천 성결교회 담임 목사로 지냈다. 소위 말하는 미자립교회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있는 개신교회의 30% 정도가 미자립이라고 한다. 그 교회 신자들의 헌금으로 목사 사례비와 교회 운영비를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충당할 수 없는 교회를 가리킨다. 사회의 기준으로 말하면 절대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을 가리킨다. 나는 영천에서도 교회 형편이 어렵고 교인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목사활동을 했다. 2000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는 독일 베를린에서 안식년으로 보냈다. 그곳에서는 백림성결교회 협동목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지냈다. 말 그대로 목사로서의 활동은 없이 목사직만 유지하는 것이었다...

목사공부(145)- 교회개척(3) / 정용섭 목사

교회개척(3) 삼십대 초반부터 사십대 중반까지 나름 진정성을 갖고 시골교회에서 목회에 전념했다. 몇 년 동안은 아주 느리지만 신자들의 숫자가 꾸준히 늘었지만 일정한 수준이 되자 그 뒤로는 현상 유지에 머물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그 지역 자체의 한계다. 시골인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은 다 고향을 떠났다. 인근에 논공 공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현풍 면의 인구가 대폭 늘어나지는 않았다. 지역적으로 대구에 가깝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에 민감한 젊은 부부들은 대구로 떠나고 싶어 했다. 시골 교회의 목회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지금은 내가 현풍에서 목회하던 시절보다 상황이 더 열악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원당에서 가장 젊은 ..

목사공부(144)- 교회개척(2) / 정용섭 목사

교회 개척(2) 나의 경우에도 목회 방식은 일반 교회와 다를 게 없었다.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심방 다니고, 청년과 학생들 지도하고, 주일 예배드리고, 절기에 따라서 교회 행사를 하고, 수련회도 다녀오고, 이모저모 사회봉사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청소도 했다. 청소라 해봐야 대단한 거는 아니다. 예배 후 국수를 먹은 다음 신자들과 함께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교회가 있는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쓰레기를 걷어오는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네 사람들에게 조금씩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일도 목회의 한 부분이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두문불출 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분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쨌든지 면소재지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다른 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목회를 감당했다. 그렇지만 ..

목사공부(143)- 교회개척(1) / 정용섭 목사

교회 개척(1) 신대원을 졸업하고 일정한 기간 목회 현장에서 실습을 거친 후 각종 시험에 합격하여 목사 안수를 받은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본격적인 목회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옛날에는 소위 ‘개척’이라고 해서 신학생이나 전도사 신분에 교회를 시작한 이들도 꽤나 된다. 그들은 이미 한 교회의 담임 교역자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받으면 곧 담임 목사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제는 그런 개척의 시절은 갔다. 개척 자체가 드믄 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척도 이미 부목사 같은 자리에서 오랜 세월 훈련을 거친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 나에게는 두 번의 교회 개척의 경험이 있다. 한번은 서른 세 살이던 1986년이고, 다른 한번은 쉰 살이던 2..

목사공부(142)- 교회의 사도성(3) / 정용섭 목사

사도성(3)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의 사도성을 바르게 지켜내고 있을까? 다른 건 접어두고 사도의 선교 사명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하자. 한국교회는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는 구호를 제1 계명으로 삼을 정도로 전도나 선교에 진력하고 있다. 해외 선교사 파송이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라고 한다. 이런 전도와 선교 열기로 한국교회가 지금과 같은 정도로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오늘 한국교회의 전도와 선교가 지나치게 협소한 차원으로 떨어졌다는 데에 있다.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만을 선교로 여긴다. 선교가 교회 확장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예수 부활의 우주론적 해방에 착상된 사도의 선교 사명을 따라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