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79

긴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 (1) / 신동식 목사

긴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 (1)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더구나 의미없이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가수 심수봉이 부른 노래 가운데 “백만송이 장미 ”라는 노래는 이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교회의 흥망성쇠 / 신동식 목사

교회의 흥망성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일하십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부름받은 성도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경륜을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멈추게 됩니다. 교회의 건강함은 신앙고백에 기반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건강한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신앙이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는 병들게 되고 마침내 사라지게 됩니다. 교회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주는 역사가 바로 1-4세기입니다. 교회는 1세기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태동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신약 교회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벌어진 회심은 유대인의 핍박을 ..

성경의 지배를 받는가? 성경을 지배하는가? / 신동식 목사

성경의 지배를 받는가? 성경을 지배하는가? ‘성경의 지배를 받는가? 성경을 지배하는가?’ 말 장난처럼 들리는 이 말이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게합니다. 모든 신앙인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말이 성경 중심의 신앙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말은 없습니다. 성경 중심의 신앙은 본래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교회가 부패하였을 때 나타난 것이 의식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모습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래적 교회를 다시 회복하고자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러 개혁자들을 보내서 왜곡되고 거짓된 교회에서 참되고 본래의 교회를 회복하셨습니다. 본래 교회의 특징은 말씀 중심입니다. 성경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성경없이 신앙과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본래..

신앙인입니까? 종교인입니까? / 신동식 목사

신앙인입니까? 종교인입니까?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불신자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종교인이 신앙인이고, 신앙인이 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전혀 다릅니다. 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 살지 종교인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신학적으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라고 말합니다. 이 역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고백이 됩니다.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신앙과 종교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과 종교를 구분할 수 있어야 구원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교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신앙만이 구원에 이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상식을 잃어버렸을까? / 신동식 목사

우리는 어떻게 상식을 잃어버렸을까? 국어사전은 상식을 정의하기를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지식과 판단력이 한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상식이 없으면 한 사회나 공동체가 혼돈에 빠집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한 인권위원의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몰상식하다고 느꼈습니다. 국회의원이 지나가면서 막지 말고 비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상황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나는 막은 것이 아니라 비키지 않은 것이라고 답하였습니다. 막은 것과 비키지 않은 것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일국의 인권위원인데 이러한 말을 온 국민이 보는 데서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 정말 의아스러웠습니다. 상식에 맞는 대답일까요? ..

균형잡힌 기독교가 필요하다. / 신동식 목사

균형잡힌 기독교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대한민국이 향후 10년 안에 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통일이다. 통일이 없는 대한민국은 해가 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 말은 더 이상 세계의 투자자들이 대한민국을 중요한 나라로 인식하지 않고 투자를 접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운 대한민국은 경제와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일안에 이룩한 나라였다. 얼마나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모델로 삼았는지 모른다. 가장 역동성이 있는 나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불꽃을 피우는데 한국교회의 영향도 무시 못하였다. 6.25전쟁과 60년대의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성장하였던 한국교회는 90년대에 들어서 화려한 열매를 맺었다. 이시기 한국 사..

왜 그럴까요? / 신동식 목사

왜 그럴까요? 사람이 살면서 겪는 경험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데 왜 싸울까요? 또 함께 교회를 세웠던 성도들이 교회를 두고 싸우는 일입니다. 왜 싸울까요? 부모와 자식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미얀마에서 군부의 쿠테타로 상상을 초월하는 국민이 죽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여러번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일어났습니다. 감사하게도 유혈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럴까요?권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을 ..

사랑과 정직으로 세상을 변혁합시다. / 신동식목사

사랑과 정직으로 세상을 변혁합시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저립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하여 선교사와 성도들의 순교의 피가 이 땅을 적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시고 선교사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평양으로부터 부흥의 놀라운 소식이 한반도를 휘감았습니다. 당시는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1905년의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불의하고 불합리한 조약으로 인하여 조선은 나라의 근간이 흔들렸습니다. 이때 믿음을 가진 주의 청년들은 이 땅을 구하고자 만주에서 러시아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던 시기에 세계 만국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델란드의 헤이그로 갔..

교회를 세우는 눈물 / 신동식목사

교회를 세우는 눈물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많은 눈물이 필요합니다. 눈물 없이 교회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이 눈물은 단지 고난의 눈물만이 아닙니다. 기쁨의 눈물, 감사의 눈물, 행복의 눈물, 기대의 눈물이 있습니다. 눈물이 모여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웃 나라 청초지교회 임직식에서 보았던 눈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집사직이 너무 흔하여 눈물이 적습니다. 그런데 청초지교회 집사들의 눈물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힘들지만 교회를 지키는 것도 힘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집사를 세우기까지 20여년의 시간을 보냈던 박선교사님 부부를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빛과소금교회도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흘린 눈물이 생각이 납니다. 많은 이들의 눈물이 오늘 빛과소금교회..

507주년 교회개혁 기념주일과 한국교회의 변곡점 / 신동식목사

507주년 교회개혁 기념주일과 한국교회의 변곡점 지난 20년 동안 교회를 세우면서 종교개혁 (교회개혁)기념 주일은 지켰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교회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종교개혁은 비 성경과 사제주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싸움은 사제주의였습니다. 사제주의는 성경 독점권을 가지고 구원을 난발하였습니다. 사람은 사제와 평신도로 구분하였습니다. 사제만이 성경을 읽고, 사죄의 권한이 있으며 구원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 무서운 죄악에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평신도는 듣기만 하는 존재입니다. 감히 성경을 읽고 질문하거나 가르칠 수 없습니다. 영적 노예자가 바로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