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직으로 세상을 변혁합시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저립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하여 선교사와 성도들의 순교의 피가 이 땅을 적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시고 선교사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평양으로부터 부흥의 놀라운 소식이 한반도를 휘감았습니다. 당시는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1905년의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불의하고 불합리한 조약으로 인하여 조선은 나라의 근간이 흔들렸습니다.
이때 믿음을 가진 주의 청년들은 이 땅을 구하고자 만주에서 러시아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던 시기에 세계 만국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델란드의 헤이그로 갔습니다. 이때 아브라함 카이퍼는 수상식을 끝내고 고문으로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준, 이휘종, 이상설등은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로 가서 일본의 불의한 행위에 대하여 제제를 가하고 조선을 지켜달라는 말을 하고자 떠났습니다. 지금도 네델란드를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1907년은 오직 배와 기차로만 가야 했습니다. 길고도 먼 여정입니다. 오직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그들은 고난을 감당하였습니다.
당시의 최고 지식인이었고 기독교인이었던 이준과 이위종 그리고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이상설등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후손으로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3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위종이 헤이그의 언론과의 인터뷰 그리고 연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윌리엄 스테드와 이위종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1907년 7월 5일 이날 이위종은 매우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국제 정치의 핵심을 꿰뚫는 거침없는 발언을 보여줍니다.
“스테드: 여기서 뭘 하십니까? 왜 이 평화 회의에 파문을 던지려 하십니까?
이위종: 저는 아주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법과 정의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각국 대표단들은 무엇을 하는 겁니까.
스테드: 그들은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위종: 조약이라구요? 그렇다면 소위 1905년 조약(을사조약)은 조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황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체결된 하나의 협약일 뿐입니다. 한국의 이 조약은 무효입니다.
스테드: 하지만 일본은 힘이 있다는 걸 잊으셨군요.
이위종: 그렇다면 당신들의 정의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며 기독교 신앙은 위선일 뿐입니다. 왜 한국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일본이 힘이 있기 때문인가요?
이곳에서 정의와 법과 권리에 대해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차라리 솔직하게 총, 칼이 당신들의 유일한 법전이며 강한 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겁니까?”
“세상에 부자와 빈자가 있듯이 강한 나라가 있으면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모두 먹어치우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정의의 신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믿는 정의의 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의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예수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하지만 문명국가의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여러분은 지금 일본의 침탈과 압제로 고통받는 우리 대한제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아직 잘 조직되어 있지는 않으나 독립과 자유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인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인 침략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에 처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쳐서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이준, 이위종 이상설은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열매로 오늘 우리가 존재합니다. 세 사람을 소개하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약 20%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신뢰도는 더 추락할 것입니다. 사이비 기독교인들의 날뜀도 문제이지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보여주고 있는 삶이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젊은 세대부터 정립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정직으로 세상을 대항하는 일입니다. 세속화된 사회를 이기는 길은 힘과 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정직으로 됩니다. 저는 이것이 최전방의 영적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정직을 살아내는 것이 세속화된 세상을 이기는 길입니다.
성경은 정직한 자의 후대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시112:1-4). 또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3:1-2). 한국교회가 살아야 대한민국이 삽니다. 한국교회가 사랑과 정직할 때 세상이 존경합니다. 함부로 말을 못합니다. 두려움은 힘과 세력이 아니라 경건함입니다. 그 시작은 바로 사랑과 정직입니다. 이 땅이 위기일 때 목숨을 걸고 구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봅니다. 안창호, 이준, 이위종, 김구, 전덕기, 안중근등을 기억합니다. 오늘 위기의 대한민국과 한국사회를 살릴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일이 변방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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