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현실과 한국교회
오늘의 한국 사회는 큰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여기에 남북의 관계는 참으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군사력을 파견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휴전선에 남북을 잇는 도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에서 보여주는 끔찍한 모습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상황 가운데 오늘날 한국사회는 또 다른 갈등이 있습니다. 현대주의 핵심인 동성애에 대한 갈등입니다. 이번에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갈등의 한 복판에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 되었습니다. 이에 상당수 한국교회가 격분하여 광화문에 모여서 시위하자고 합니다. 한 목회자 모임에서 행하는 발언에서 섬뜻 함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조용히 말하니까 언론이 다뤄주지 않으니 이번에 우리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자고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으로 밀어부쳐서 점령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이슬람식 성전을 선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투쟁을 통해서 쟁취할 수 있을까요? 안타갑게도 지난 30년 동안 이러한 시대가 오고 있으니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존중하고 두려워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신뢰를 잃고 오직 자기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선지자들이 전해준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상황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염려하는 차별금지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1대 국회에 있었던 차별금지법 4개는 22대 국회가 되어 자동 폐지되었다. 아직 국회에 입안된 것은 없습니다. 물론 언제든지 입안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이 판결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동성커플의 피부양자 등록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를근거로 친동성애 진영이 동성혼 법제화 소송은 물론 낙태 합법화 주장, 학생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까지 요구하며 집회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동성애 진영이 동성혼 법제화 반대와 학생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해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집단으로 참여하기로 하였다. 현재 동성혼 법제화 찬성율은 40%입니다. 2001년 17%에서 2023년 40%가 되었습니다. 반면 반대는 2001년 67%에서 2023년 51%가 되었습니다. 현격한 변화를 보입니다.
반대 51%
찬성 40%
이것이 현실입니다. 더구나 학생인권조례의 강력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서울시 교육감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가 반대하였는데 실제로는 신앙인이고 반 학생인권조례를 강조하였던 교욱감이 탈락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더구나 지난 20년동안 동성혼 봅제회에 대한 세대별 인식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20대는 26%-64%, 30대 17%-53%,40대 16%-45%, 50대 12%-38%로 상승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한국갤럽) 그러는 동안 한국교회 신뢰도는 20%에 머물러있습니다. 20여년 동안 한국교회의 신뢰는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한국 사회입니다. 무서울 정도의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진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처방이 나옵니다.
법과 정치는 사회 여론을 따라갑니다. 정치와 법은 사람 따라 움직입니다. 이 추세를 막는 일이 물리적 힘으로 될까? 참으로 무서운 현실이 되었음을 봅니다.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한다고 이겨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양심의 자유를 말하면서 양심의 자유를 파괴하면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냉혹하고 암담한 현실 앞에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고 그러나 유일한 길은 사람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은 십자가의 능력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암담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무너짐은 외부 박해가 아닙니다. 내부의 우상숭배와 권력을 의지할 때 촛대가 옮겨집니다. 우리의 내부는 순결한가? 촛대가 옮겨지지 않는 길은 복음으로 세워지는 순결성과 선명성입니다. 안락사가 법으로 인정되는 나라가 종교개혁의 나라인 스위스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스위스에는 쯔빙글리의 교회와 존 칼빈의 교회가 존재하고 성도들이 거룩하게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 수는 작아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대형교회가 작아지는 것이 교회의 무너짐이 아닙니다. 교회는 항상 외부의 핍박이 아니라 내부의 죄로 무너집니다.
더구나 종교개혁은 중세 교황이 주도한 7차례의 십자군 전쟁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신앙고백서에 총회는 정치적 결정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20장,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1장).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 고백을 받으면서 위반했습니다. 참으로 참혹한 현실입니다. 교회가 상황윤리의 노예가 되면 무너집니다. 그때 누가 위로하겠습니까?
이제 거대한 변화 앞에 교회가 사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살길입니다. 다시금 시작하고 거룩함을 회복할 때 가능성이 있다. 다원성의 사회에 교회가 갈 길을 정확하게 처방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세상 권세자입니다. 이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신동식 목사(문설연 대표/빛과소금교회)
'좋은 말씀 >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7주년 교회개혁 기념주일과 한국교회의 변곡점 / 신동식목사 (0) | 2024.11.05 |
---|---|
한국교회의 50년 후를 위하여 기도한다./ 신동식목사 (0) | 2024.11.01 |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 신동식목사 (2) | 2024.10.07 |
지금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 신동식목사 (1) | 2024.10.07 |
하나님의 일하심은 기가막히다. / 신동식목사 (3) | 2024.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