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5 13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9:9-10) / 이금환 목사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편9:9-10) 압박해 오는 적이 없는 것 같으면 어떤 요새도 필요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환난은 자신의 삶에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되면 굳이 피할 일도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자를 숨겨주시고, 보호하시는 요새이시며, 환난을 피하고, 환난을 통과할 수 있게 해주시는 완전한 요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압제 앞에서 환난 앞에서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하고, 그 품 안에 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들을 결코..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8)-라오디게아 교회 (계3:14~22) / 이재훈 목사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 모든 교회가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입니다. 평가 기준의 공통점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교회의 제도나 규모, 조직 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하는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는가?’, ‘어떤 핍박 속에서도 인내하는가?’, ‘예수님에 대해 왜곡되거나 거짓된 가르침을 얼마나 단호하게 근절시키는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얼마나 사모하는가?’를 평가합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과의 관계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믿음과 인내와 충성을 다한 교회는 칭찬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

미래에 대한 불안 / 정용섭 목사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대개가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한다.직장을 구하지 못할까,결혼하지 못할까,집을 장만하지 못할까,자식들이 말썽이나 피우지 않을까 등등.끝이 없다.늙어가면서는자식들도 다 떠나고 외롭지 않을까,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걸리면 어쩌나,궁극적으로는 죽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한다. 심리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은아마 더 작은 문제로도 심각하게 걱정할 것이다.남편이나 아내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까,반찬은 무얼 먹어야 하나,옆집에 이사 온 사람들이 까다로운 것 같은데,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왕따 당하지 않을까 등등,이것도 끝이 없다.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을까,복을 주시지 않으며 어쩌나,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나,심지어..

나비의 짝짓기 / 정용섭 목사

나비의 짝짓기 오늘 오후 3시쯤 창문을 통해펄럭이는 나비의 날갯짓이 흘깃 눈에 들어왔다.처음에는 늘 보던 장면이라또 한 마리의 나비가뭔가를 찾아서 저렇게 날고 있구나, 하고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다.근데 그 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 다시 보니똑같이 생긴 두 마리 나비였다.한 마리가 방향을 밑으로 잡으면다른 한 마리가 거의 순간적으로 그대로 따라 했다.일정한 방향도, 높낮이도 없었다.어느 쪽이 먼저 가고어느 쪽이 따라가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거의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변화라면 두 마리의 간격이가까웠다 멀어졌다 할 뿐이었다.가까워졌을 때는 한 마리처럼 보이는데,멀어져 봤자 10센티 미만이었다.도대체 저 녀석들이 뭐하는 걸까 생각했다.형제들끼리 노는 건가?노는 거 치고는 너무 격렬했고,너무 오래 갔다...

빌라도에 대한 기억 / 정용섭 목사

빌라도에 대한 기억 사도신경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돌리는 대목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유대교 지도자들과 빌라도 총독 모두에게 묻는다. 복음서의 문맥으로 보면 유대교 지도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 총독 빌라도에게는 비교적 우호적이다. 이에 반해서 사도신경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아예 묻지도 않는다. 실체적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사도신경과 초기 기독교 전반적인 전통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없다. 만약 유대교가 예수님의 죽음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면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와 처음부터 단절했을 것이다. 더구나 구약성경도 배척했어만..

뒤돌아보듯이 살아가기 / 정용섭 목사

뒤돌아보듯이 살아가기 인류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그걸 아는 사람은 없다.어림짐작으로 말할 수도 없다.인류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언젠가 온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그 순간이 빠를 수도 있고,생각보다 늦을 수도 있긴 하지만분명히 오긴 온다.우리는 그걸 알긴 하지만평소에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그 순간이 당대에는 오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그게 위로가 된다면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는 아니다.지금 살아가기도 팍팍하기에인류의 종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그걸 억지로 생각할 수도 없다.생각하라고 하면 오히려 부담이 될 뿐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그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요구한다.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놓여 있다.부활의 예수가 다시 오는 때가 바로 세상의 끝이다.이 세상의 ..

신앙의 위험성 / 정용섭 목사

신앙의 위험성 오늘 설교 본문인 눅 13:10-17절에는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던 여자가예수님에 의해서 고침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회당장은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하필이면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느냐,다른 날로도 넉넉하다는 것이다.꽤나 합리적인 생각이다.아무도 그의 말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여기에 신앙의 함정이 있다.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그래서 본인 스스로 옳은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하지만,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옳다고 확신하지만그것 자체가 위선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예수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즉 위선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앙과 위선은 종이 한 장 차이다.아예 한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좋은 쪽으로 나타나면생명을 풍요롭게 하지만다른 쪽으로 나타나면오히려 생명을 파괴한다.더군다나 ..

환난날에 과연 나의 믿음은? / 봉민근

환난날에 과연 나의 믿음은?       글쓴이/봉민근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다.믿음으로 살려고 해도 방해하는 세력은 늘 있기 마련이다.우리는 일터에서, 세상에서 수많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이를 잘 참아내는 이유는 살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그런 우리가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는 그런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는 일에 늘 비겁하게 피하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주님도 매 맞고 침 뱉음을 당하셨은즉 우리가 받는 박해는 당연한 것이지만우리에게 그것을 감당할 믿음이 없다.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살았던 선조들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나약해졌다.어쩌면 우리가 박해를 받지 않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고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요세상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있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의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 / 봉민근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        글쓴이/봉민근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을 꿈꾸는 사람들이다.하나님을 꿈꾸면 하나님의 꿈이 내 삶 속에 현실이 된다.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되면하나님이 내 인생에 버팀목이 되어 주실 것이다.하나님과 언제나 함께하는 인생이 되면내 인생에 하나님과 함께 춤추며 기뻐할 날이 이를 것이다.인생의 성공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내 안에 주님이 있고 없고는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다.내 안에 말씀이 있고 없고는 참 그리스도인인지를 말해주는 기준이 된다.순종이냐 불순종이냐가 인생을 좌우한다.믿음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다.그리스도인의 삶에 기준은 오직 믿음이다.세상을 방황하는 이유는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제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믿음..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 (막 10:35-40) / 김영봉 목사

해설:야고보와 요한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필시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이유는 메시아로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바짝 다가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달라고 청한다(36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중에서 자신들을 특별 대우해 주셨다고 믿고 이렇게 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37절)라고 답한다. “영광을 받으실 때”는 메시아 왕국을 세우시고 그 나라의 왕으로 등극할 때를 의미한다. “오른쪽”과 “왼쪽”은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를 의미한다.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