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2 15

한 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삼하24:1-9) / 리민수 목사

한 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삼하24:1-9) 본문은 다윗이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구 조사를 실시한 데 대한 것이다. 즉 다윗이 이처럼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은 유사시 군사력으로 전환 될 수 있는 백성이 수를 헤아려 보는 가운데 군사력을 확인해 보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적과 약한 군사들만으로도 능히 주변 열강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는 다윗이 한 순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망각한 채 교만해진 결과였다.  본문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결국 불완전하여 언제든 죄악 중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줌으로써, 우리가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32) / 이금환 목사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8:31-3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다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는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위하시는 사람이라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위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

구원의 방편을 넘어 하나님나라의 참여로 / 정병선목사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성 삼위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라는데 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의 계시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암시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과 세상의 현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구원이 필요할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그것도 도덕, 정치, 철학, 교육, 종교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창조주께서 나서지 않으면 결코 회생될 수 없을 만큼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 그렇다.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구원이다. 사람들이 다들 풍부한 소비를 위한 생산 경쟁,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한 경제 전쟁에 몰두하고 있지만 사실상 모든 시대의 중심 문제는 언제나 구원이었다. 아담 이래로 지금까지 온 세상은..

삶(14) / 정용섭 목사

삶(14) ‘예수 우리의 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무슨 뜻인가?원칙적으로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1) 예수 믿으면 죽어 천당에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2) 지금 살아 있을 때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은 천당, 혹은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만 보자.이것보다 먼저 왜 예수를 믿어야 그게 가능한지도 대답해야 하는데,이미 앞에서 비슷한 대답을 했으니까 여기서는 그만두고천당, 천국, 하나님 나라에 얽힌 이야기만 하자.죽음 이후의 어떤 생명에 대해서 말하기는 하지만그게 무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기독교인들도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믿다가생각이 깊어지면 그것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다.그래서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장례 모임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려고고인이 하..

모세의 율법 / 정용섭 목사

모세의 율법 오늘 수요성경공부는 요 9장이었다.그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선천성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서 보게 되었다.바리새인들은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예수님을 단죄하려고 했다.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전통에 서 있기 때문에세상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예수님은 영적 권위를 인정해줄만한아무런 근거가 없는 인물이라고 보았다.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고 세상에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바리새인들은 자신도 맹인인가 하고 따져 물었다.예수님의 대답이다.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바리새인이 맹인인 이유는그들이 모세의 율법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율법은 구약의 요체다.당연히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율법 실천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삶(13) / 정용섭 목사

삶(13) 우리는 보통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가장 기초적인 대답을 한다면가치가 있는 삶을 가리킨다.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려면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를 것이다.부자, 사회적 지위, 명예, 학문적 업적, 정치적 야망...또는 봉사, 구제, 인간애...이런 일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그런 걸 성취함으로써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것으로 여긴다. 그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냉정하게 살펴보면 해결되지 않는다.냉정하게 살필 것까지도 없다.그냥 직관해보면 안다.직관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이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저절로 느껴진다.이런 문제를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이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고모르는 사람은 말해도 귀..

지옥 불구덩이 / 정용섭 목사

지옥 불구덩이 어제 설교 본문은 눅 16:19-31로소위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다.설교하는 순간에는 한 주제에만 집중하기에본문과 연관된 다른 것들을 설명할 수 없다.그게 설교자의 고민이다.본문을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로 끌고 갈 것인지를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욕심을 내서 너무 길게 끌고 가면 설교가 처지고모든 걸 생략하다보다 비약되기 쉽다.어제 설교 본문에서 생략한 부분을 오늘 잠시 짚겠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부자는 음부의 불구덩이에 떨어졌다.사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어른인 나사로를 아브라함이 품에 안을 수는 없다.나사로가 천국에 갔다는 의미다.그건 그렇고 부자가 떨어진 음부의 불구덩이는 무엇인가?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그걸 두려워한다.어떤 목사는 ..

부자와 거지 나사로 / 정용섭 목사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눅 16:19-31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여러 가지 면에서 오해받기 쉽다.이걸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그건 착각이다.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비유다.비유는 비유로 이해해야지 사실로 보면 안 된다.비유는 한 가지 가르침만 지시한다.여기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찾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죽음 이후의 운명에 대한 가르침을 찾으려고 한다.죽으면 곧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말이다.이 비유는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간단히 짚어야겠다.인간이 죽으면 그 운명이 당장 결정되는지아니면 최후 심판 때까지 유보되는지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성경도 그걸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성경도 서로 다르게 말한다.이 문제는 영혼불멸설..

세계관-역사학1. 예수의 부활은 역사다./ 류현모 교수

오늘날 이 땅에서 기독교는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무신론인 인본주의, 공산주의 및 포스트모던주의는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을 믿는다고 비웃는다. 기독교의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낡아빠진 도덕률을 이 시대에도 그대로 지켜나가려 한다고 비웃는다. 특히 성-생명-결혼-가정이라는 하나님의 생육/문화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압하는 나쁜 도덕률로 규정한다. 젠더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이들의 성혁명 이념은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려는 시도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창세기 3장의 뱀의 유혹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편 유신론의 세계관을 가진 다른 종교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기독교의 ..

네 대답이 옳도다.(눅 10:25-42) / 신동식 목사

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질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율법이 무엇이라 말하는지 묻습니다. 율법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 대답이 옳다"고 하시면서 이를 행하면 살 것이라 말씀합니다.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을 얻은 율법사입니다. 이제 정직한 답으로 살면 됩니다. 답을 알고도 살지 못함이 아쉬움이고 우리의 연약함입니다.율법사는 묻습니다. 누가 내 이웃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준 사마리아 사람을 비유합니다. 제사장, 레위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입니다. 혈통적으로 정치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율법사의 입에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