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9 14

직무의 새로운 분담(대상16:37-43) / 리민수 목사

직무의 새로운 분담(대상16:37-43)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고 찬양 경배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까지 불분명했던 하나님께 대한 제사 제도를 회복시키기 위해 율법에 따라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직무를 맡기고 있다. 레위인의 직무는 아삽이 맡은 언약궤 앞에서의 찬양의 직무, 성막 문지기직, 사독이 맡은 제사장직, 헤만과 여두둔이 맡은 찬양의 직무로 구분되었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다윗이 후에 보다 체계적인 제사장과 레위인 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교회란 무엇인가?(겔 47:7~12) / 김재홍 목사

내가 돌아올 때에는, 보니, 이미 강의 양쪽 언덕에 많은 나무가 있었다. 그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 때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강가에 늘 늘어설 것이다.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물을 칠 것이다. 물고기의 종류도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와 똑같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그러..

예수 '따름'이 답이다! (요 21:15-19) / 정용섭 목사

부활절 3주, 2025년 5월 4일 교황 이야기 지난 2025년 4월21일에 세상을 뜬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가톨릭교회의 266대 교황입니다. 로마가톨릭은 베드로를 제1대 교황이라고 내세웁니다. 베드로가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교황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으니까 1대 교황 운운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석한다는 뜻이겠지요. 역사적으로 본다면 베드로보다는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가 최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어쨌든지 제가 보기에 베드로가 1대 교황이라는 로마가톨릭의 해석은 두 군데 성경 구절에 근거합니다. 하나는 마 16:16절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

"...너희는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쓸지니"(겔45:9-10) / 이금환 목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쓸지니"(에스겔45:9-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 만족하신다는 것은 잘했다는 칭찬이 아닙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너 지금까지 놀만큼 놀았고, 나의 속을 썩힐 만큼 썩였고, 네 멋대로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제발 마음 좀 잡으렴"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포악과 겁탈과 속여 빼앗는 못된 짓, 나쁜 짓, 악한 짓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그치고, 지금부터라도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공정한..

목사공부(27) / 정용섭 목사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이 각인된 돌판을 받은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첫 번 돌판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서 모세가 성질을 내다가 던져서 깨뜨렸다. 그 후에 하나님은 다시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신다. 이 두 돌판 사건 사이에 특별한 이야기가 나온다. 금송아지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는 이스라엘 민중을 이끌고 광야횡단과 가나안 입성을 시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좀더 확실한 보장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뜻이다. 모세는 그게 제 죽을 일인 줄 몰랐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모세의 심정을 헤아리신 하나님은 결국 모세를 ..

목사공부(26)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 / 정용섭 목사

고후 4:6절은 다음과 같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문장에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현이다. 이걸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은 2천 년 전 유대 지역에 살았던 삼십대 초반의 유대인 한 남자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예수님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얼굴은 예수님이라는 인격체와 그의 운명을 가리킨다. 바울이 저 구절을 통해서 말하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영광..

목사공부(25) 예배와 설교 / 정용섭 목사

목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예배와 설교다. 설교가 예배의 한 단위에 속하니까 예배와 설교를 나누지 말고 예배라고만 해도 된다. 그러나 성찬 중심의 미사를 드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달리 설교 중심이라는 개신교의 특징을 근거로 해서 예배와 설교를 구분해서 봐도 좋다. 신학대학교 커리큘럼에도 예배와 설교는 구분된다. 예배학 전공 교수와 설교학 전공 교수도 구분된다. 일단 예배로부터 시작하자. 목사가 예배를 예배답게 인도하려면 예배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학대학 커리큘럼에 예배와 관계된 것들이 제법 된다. 예배학, 예배와 설교, 예배와 찬송, 성례전, 예배 실습 등등이다. 그런 과목을 통해서 신학생들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교수에 따라서 학생들이 정확하게 배울 수도 있고, 또는 배..

순금보다 더 사랑하는 말씀 (시119:113-128) / 신동식 목사

시119:113-128 순금보다 더 사랑하는 말씀다윗은 자신 앞에 있는 행악자들과 다르게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았고,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았고 공의와 진리를 행하였습니다. 범사에 주의 법을 따랐습니다.다윗은 하나님을 은신처와 방패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줄 것을 기도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다윗은 주의 율례를 떠난 자는 하나님이 멸하시고 세상에서 찌꺼기와 같이 여겨짐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심판을 두려워합니다.이렇듯 하나님이 베푸시는 심판의 무서움을 알았던 다윗은 공의와 정의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 교만한 자들에게 넘기지 말고 오히려 복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다윗은 주의 말씀을 늘 ..

때려죽여도 출근하기 싫은 날은 어떻게? / 원용일 목사

때려죽여도 출근하기 싫은 날은 어떻게?어느 교회 청년부에서 강의를 마친 후에 한 형제가 돌발질문을 했다. “열심히 살아야 하고 주께 하듯 일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정말 일하기 싫을 때, 때려죽여도 출근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폭소가 터졌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생각하고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그만둬야지요. 한번 쉬어봐야지요.”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되고, 우리는 모두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공감했다. 엉겁결에 자기가 한 질문보다 짧은 대답을 들은 그 형제는 나에게 ‘엄지 척’을 날렸다. 나는 ‘손가락 하트’로 답하며 가장 짧은 질문과 대답을 마무리했다.일하는 사람이라면 ‘때려죽여도 출근하기 싫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직장생활 경력..

내가 의지하는 막대기와 지팡이 / 봉민근

내가 의지하는 막대기와 지팡이 글쓴이/봉민근사람이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들이 갑자기 몰려올 때가 있다.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보면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내 손에 막대기와 지팡이를 방패와 무기로 삼고 들고 다니지만 그것을 놓는 순간 그것이 뱀이 되어 나를 물려고 달려든다.인간 스스로는 행복을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이다.주께서 줄로 재어주신 구역 안에서 사는 복을 알지 못하면 인생은 늘 고달플 뿐이다.인생의 행복에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우리는 늘 잠시 착각을 하며 산다.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하나님이 나를 모시고 사는 것처럼하나님을 나의 삶에 도우미로 생각할 때가 있다.인생은 끝이 있고 한계가 있고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