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87

미래의 통치자 (미 5:2-5a) / 정용섭 목사

대림절 4주, 2024년 12월 22일  미가 선지자의 신탁 미가 선지자는 기원전 750-690년에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부터 2천 7백 년 전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먼저 기원전 721년에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노예가 되었으며,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훗날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기원전 587년에,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뒤 140년쯤 지나서 망했습니다. 그사이에 수많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 우리..

성령과 불 세례 (눅 3:7-18) / 정용섭 목사

대림절 3주, 2024년 12월 15일  세례 요한은 예수님 운명에서 가장 독특한 역할을 감당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직계제자가 아닌데도 네 복음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복음서가 일관되게 말하는 핵심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자세하게 보도하는 신약성경은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출생을 세례 요한의 출생과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각각의 출생 전승에서 천사가 등장해서 새로 태어날 아들에 관한 소식을 알립니다. 훗날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직전 이야기인 오늘 설교 본문에는 세례 요한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는 단호하면서도 충격적인 어조로 설교했습니다. 세례받으러 온 이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

충만한 ‘의로움의 열매' (’빌 1:3-11) / 정용섭 목사

주현절 후 2주, 2024년 12월 8일  바울은 예수님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신비에 속합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교회도 등장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과장은 아닙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10권 내외가 바울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사도들의 행적을 다루는 사도행전은 거의 바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유럽 지역에서 최초로 세운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그 이야기가 행 16장에 나옵니다. 빌립보는 그리스 북쪽 지역 데살로니가에서 오른편으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습니다. 행 16:12절에 따르면 바울 일행이 지금의 튀르키예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빌립보로 갑니다. 거기서 가장 먼저..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 25:1-10) / 정용섭 목사

대림절 1주, 2024년 12월 1일  시 25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새번역> 성경은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여호와 당신께 내 영혼을 들어 올리나이다.’입니다. 이 문장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영혼입니다. 이 문장만이 아니라 성경 곳곳에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마 10: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몸은 손에 잡히나 영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이나 마..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 18:33-38) / 정용섭목사

창조절 13주(왕국 주일), 2024년 11월 24일  예수께서는 생애 마지막에 두 번의 재판을 연달아 받으셨습니다. 먼저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받은 종교재판이고, 다음은 빌라도 법정에서 받은 사법재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대법원이라 할 산헤드린은 이 문제를 자신들이 처리하기 힘들다고 보고 빌라도 총독부에 넘깁니다. 빌라도 총독은 고발인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산헤드린 대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죄명으로 나사렛 출신 예수를 우리 로마 제국법에 고발하시는가?’ 그들은 ‘이 사람은 악을 행한 사람이라서 끌고 온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법으로 처리하시라.’ 이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에게는 사형을 시킬 권한이 없습니다.’ 이 ..

성소에 들어갈 담력 (히 10:11-14, 19-25) / 정용섭목사

창조절 12주(추수감사절), 2024년 11월 17일  성소 히 10:19절에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이 나옵니다. 들어보십시오. 본문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ἁγίων)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성소는 거룩한 곳(holy place)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핫 플레이스(hot place)’라는 말이 쓰이는 것처럼 성소는 종교적인 핫 플레이스인 셈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지성소는 NIV 영어 성경이 영역한 Most Holy Place를 가리킵니다. 성소는, 또는 지성소는 어디를 가리킬까요?고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전에는 지성소가 따로 구분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무도 들어..

영혼이 갈급한 사람 (막 12:38-44) / 정용섭목사

창조절 11주, 2024년 11월 10일  서기관들의 위선 세계 성서일과(lectionary)에 따라서 주어진 오늘의 ‘셋째 말씀’인 막 12:38-44절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이야기인 38-40절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상류 계급이라 할 서기관(율법 학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부러움을 샀습니다. 실제로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의 판사나 대학교수, 또는 대형교회 목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당시의 일반적인 여론과는 다르게 판단하셨습니다. 본문 38-40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

전심전력 귀 기울임 (신 6:1-9) / 정용섭목사

창조절 10주, 2024년 11월 3일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마지막 수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프랑스 어느 마을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에서 진 프랑스는 앞으로 프랑스어로 수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어로 진행된 그 날의 마지막 수업이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신명기는 모세가 행한 마지막 수업과 비슷합니다. 모세는 출애굽과 광야 40년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고두고 명심해야 할 가르침을 남기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죽습니다.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시각 장애인 바디매오 이야기 (막 10:46-52) / 정용섭목사

창조절 9주(종교개혁 507주년), 2024년 10월 27일  여리고 성문 앞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예수께서는 생애 마지막 해에 성지 순례차 예루살렘에 왔다가 체포당하고 심문과 재판을 받은 후 결국에는 신성모독과 사회 소요죄로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님의 운명을 가르는 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짐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갔다면 예수님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바로 직전에 벌어진 어떤 특별한 한 사건을 보도합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설교의 본문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왔다면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에 여리고를 거쳐야 합니다. 대구에서 서울에 가..

세계의 비밀이신 하나님(욥 38:1-7) / 정용섭목사

창조절 8주, 2024년 10월 20일  욥 이야기 혹시 신정론(神正論)이라는 신학 용어를 들어보셨는지요. 신정론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인간의 극심한 고통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의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도 선천적으로 큰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고, 길을 가다가 ‘묻지 마’ 폭행에 희생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각종 사고로 중도 장애인이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군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희생시킵니다. 참척의 고통도 일상적입니다. 이런 마당에 하나님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정의롭고 사랑이 충만하며 전능하신 존재일까요?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 배경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놓여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