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87

생명의 양식 (요 6:24-35)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11주, 2024년 8월 4일 예수는 누군가?오늘 설교 본문에 따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에 갔다가, 다시 호수 건너편으로 가서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언제 이곳으로 오셨냐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6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듣는 사람들을 무안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당신들이 찾아온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리니까요. 이렇게 찾아오다니 반갑다거나 수고가 많았다든지, 무슨 급한 ..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충만하심 (엡 3:14-21)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후 10주, 2024년 7월 28일  서양 철학의 발생지는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한 그리스의 아테네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만물의 본질이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와 그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 등등이 활동한 소아시아의 밀레투스입니다. 밀레투스 학파가 아테네 학파보다 역사적으로 1백 년이나 더 앞섭니다. 지금은 아테네와 밀레투스가 각각 다른 나라에 속하나 고대에는 모두 그리스 문명권에 속한 폴리스(도시국가)였습니다. 그리스와 소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 사이의 바다가 에게해입니다. 에게해를 배경으로 그리스 신화가 전개됩니다. 바울은 당시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오가면서 복음을 전했기에 당연히 배를 타고 에게해를 수없이 여행했을 겁니다. 3차 선교여행을 보도하는 행 20장의 설..

메시아 대망 (렘 23:1-6)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9주, 2024년 7월 21일 유대라는 나라가 기원전 587년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기 전 몇십 년 동안 그 지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선지자는 예레미야입니다. 당시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북쪽 지역의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아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기원전 721년에 무너지고 1백 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을 때입니다. 남쪽 지역의 유대는 앗수르와 평화 조약을 맺어서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말이 평화 조약이지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된 겁니다. 앗수르 제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이끄는 바벨론(바빌로니아) 신흥 제국이 맹위를 떨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팽창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바벨론 제국 앞에서 약소국 유대의 선택지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요구를 ..

선지자 ‘너머’ (막 6:14-29)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8주, 2024년 7월 14일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걸음은 세례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세례받는 사람은 회중 앞에서 다섯 항목의 질문을 받습니다. 둘째 항목은 이렇습니다. “(아무개)님은 악의 세력과 관계를 끊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자유를 누리길 원하십니까?” 세례는 악을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겠다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악과 관계가 없는 분이시고 그리스도 자신이니까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네 복음서 모두 예수께서 세례받았다고 보도합니다. 예수께 세례를 베푼 이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운명에 상당하게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례로 교회의 세례 의식은 세례자 요..

공평한 세상을 향하여!(고후 8:7-15)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6주, 2024년 6월 30일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판> 고후 8장에는 ‘풍성한 연보’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연보(捐補)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려운 이를 돕는 구호금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헌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헌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겁니다. 그게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긴 합니다. 헌금을 드릴 때는 어려운 이들을 향한 마음도 포함되어 있고, 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이 그런 쪽으로 쓰이니까요. 어쨌든지 고후 8장과 9장에 걸쳐서 나오는 연보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헌금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어떤 교회를 위한 구호금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어려움을 당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당시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라 할 예루살..

그는 누군가?(막 4:35-41)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5주, 2024년 6월 23일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께서 출가 이후 아주 짧았던 공생애를 보내면서 주로 활동한 지역은 갈릴리 호수의 어촌 마을인 가버나움과 사해 인근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까지 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옵니다. 구글 지도에서 확인해보면, 두 곳의 거리는 대략 160여 킬로미터로 천천히 걸으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던 몇몇 청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제자만 해도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입니다. 막 4:1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배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

사람의 외모와 중심 (삼상 16:1-13)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4주, 2024년 6월 16일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다윗 왕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다윗 왕은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삼상 16장부터 마지막 31장까지와 삼하 1장부터 마지막 24장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왕상 1장과 2장에 그의 죽음이 다뤄집니다. 구약이 많은 분량으로 다윗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시편은 다윗 이름으로 전승된 것이 많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습니다. 재위 기간 역시 깁니다. 메시야가 다윗 후손에게서 온다는 믿음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었을 정도니까 다윗의 위상이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유명하게 만든 이야기는 왕이 되기 전 목동이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고후 4:13-5:1)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3주, 2024년 6월 9일  세계 삼대 운하 중의 하나가 코린토스 운하입니다. 그리스 코린토스 지협을 관통하는 운하입니다. 코린토스가 우리말 성경에는 고린도로 표기되었습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반도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지협에 자리한 도시로 고대부터 아테네(아덴)와 더불어 번창했습니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인 기원후 50년경 아덴을 떠나 왼편 90㎞ 정도 떨어진 고린도에 와서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교회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행 18장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게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입니다. 거기서 벌어진 가장 껄끄러운 소식은 고린도 신자들이 바울을 배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

안식일 문제 (막 2:23-3:6)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2주, 2024년 6월 2일  정통 교회는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안식교회는 주일 전날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토요일 휴일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안식교회 신자들이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토요일에 교회에 오려면 결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식교회의 정식 명칭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입니다.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크게 틀린 건 아닙니다. 본래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유대교 전통에 따라서 토요일을 거룩한 날로 지켰습니다. 교회가 주일에 예배드리게 된 건 로마 문명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역사적 계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로마가 유대인의 안식일..

이사야의 ‘충만’ 경험 (사 6:1-8) / 정용섭목사

삼위일체 주일, 2024년 5월 26일 구약 사 6:1절 이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적으로가 아니라 극단적인 은유의 방식으로 서술되어서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인 기원전 739년 어느 날 환상을 봅니다. 당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분열되어 있을 때입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주(아도나이, Lord)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요한계시록(4:2)에도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의 존엄을 임금이 앉은 보좌로 표현한 겁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주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걸 보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옷을 입었다거나 옷자락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