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47

예수는 빛이다 (마 17:1~8)

예수 변모 주일, 2023년 2월 19일 예수께서 수제자로 알려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거기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의 모습이 ‘변형’되었습니다.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당시로부터 각각 1천2백 년 전과 8백 년 전 사람들이니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예수와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초막 세 채를 만들고 싶다고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가타부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순간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양자택일 (신 30:15~20)

주현 후 여섯째 주일, 2023년 2월12일 모압 설교 오늘 설교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부터 3천4백 년이나 3천2백 년 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소수민족으로 살던 애굽을 떠나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유목 생활을 하다가 이제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까지 왔습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후 40년간의 여정을 이끈 사람은 로 유명한 모세입니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생존 자체가 힘 버거웠습니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생떼를 부리는 이들도 나왔고, 모세의 권위를 아예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폭탄선언을 합니다.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

천국 윤리 (마 5:13~20)

주현 후 5주, 2023년 2월 5일 교회를 시원치 않게 여기고 성경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마 5~7장에 나오는 내용만은 높이 평가합니다. ‘산상수훈’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대목에서 매우 수준 높은 윤리 강령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장에서 한 대목씩만 발췌하면 이렇습니다. 5:21절 이하는 실제로 살인한 사람만 심판을 받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경고합니다. 6:2절 이하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7:12절은 황금률로 알려진 경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세상이 이런 말씀대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천국이라 부를만합니다. 세상은 오히려 거꾸로 돌아..

삶의 무게 (미 6:1~8)

주현 후 넷째 주일, 2023년 1월 29일 ‘미가’는 기원전 750~690년 어간에 유대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압박을 강하게 받던 시대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구분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주관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에서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과 설교하는 사람이 똑같이 목사나 신부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 역할이 구분되었습니다. 제사장의 활동 무대는 예루살렘 성전이지만 선지자의 활동 무대는 거리입니다. 제사장은 보수적이고 선지자는 진보적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변혁되기를 갈망하던 사람들이어서 현실 유지에 급급했던 권력자들을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에 유명..

가버나움 사람 (마 4:12~23)

주현 후 셋째 주일, 2023년 1월 22일 마태복음 4:12, 13절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관한 간략한 보도입니다. 그 보도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 요한의 체포 이후에 예수께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즈음에 예수께서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서 가버나움으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여행을 온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살려고 왔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미 앞에서 예수 가족이 애굽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유대로 돌아왔으나 헤롯의 뒤를 이은 아켈라오 왕이 두려워서 멀리 떨어진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살았다고 짚었습니다.(마 2:23) 나사렛에서 ‘살았다.’라는 헬라어 ‘카토케센’(κατῴκησεν)은 영어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고전 1:1~9)

주현 후 둘째 주일, 2023년 1월 15일 아포칼립시스 오늘 저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까다로운 성경 구절 중의 하나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이 그 유명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 나옵니다. 고전 1:7절입니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바울이 말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보셨습니까? 신약성경과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습니다. 사도신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때가 되면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

'여호와께 예배하라!'(시 29:1~11)

주현 후 첫째 주일, 2023년 1월 8일 “여호와께 예배하라!”라는 오늘 설교 제목을 접했을 때 너무 당연해서 뻔한 제목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본래 ‘예배 공동체’라고 제가 종종 말씀드렸습니다. 예배를 예배답게 드릴 때 교회가 교회다워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들도 예배를 예배답게 드릴 때 그리스도교 영성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배는 일정한 시간에 함께 드리는 예배 행위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적인 태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찬양, 기도, 성찬식, 설교 등등, 예배의 모든 순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직결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요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시 29:1~2절이 이를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너희 권..

나사렛 사람 (마 2:13~23)

성탄 후 첫째 주일, 2023년 1월 1일 신약의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똑같이 다룹니다. 그중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동화처럼 전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점성술사였던 동방박사 이야기가 나오고 누가복음에는 목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에는 좀 더 특이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 가족이 애굽으로 피난을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들은 일종의 난민입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떠난 이유는 헤롯 왕이 아기 예수를 제거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먼 이국땅에서 얼마간 살다가 헤롯이 죽자 아들 예수와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만감이 교차했을 겁니다. 고대 유대인들이 크게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이주했다가 수백 년 만에 애굽을 ..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1~14)

성탄절, 2022년 12월25일 목자들의 천사 경험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인 눅 2:1~14절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갈릴리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아내 마리아가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서 호적을 신고하려고 사흘 길인 베들레헴에 갔다가 그곳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첫아들이었습니다.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여관에 딸린 마구간에 머물렀나 봅니다. 아기를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 아이가 훗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불리게 될 줄 몰랐을 겁니다. 위르겐 몰트만의 어느 글에 따르면 모든 아이는 잠재적 메시아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탄생 소식을 목자들이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 출산도 그렇지만, 뒤의 목자 이야기도 너무 평범해서 눈여겨볼 사람이 없을 정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롬 1:1~7)

대림절 넷째 주일, 2022년 12월18일 종과 부르심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Παῦλος, δοῦ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여기서 명백하게 규정했습니다. ‘종’이라고요. 그냥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요. ‘종’이라는 단어가 일단 어감상 좋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주체성을 강조하는 현대인들에게 그 단어는 치명적입니다. 종은 무슨 종이냐고, 종으로 살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보다 더 심하다고, 자기 정체성은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이나 조직에 종속적으로 살면 안 됩니다. 삶을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재미있는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