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87

파라클레토스 (요 16:4-15)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주일, 2024년 5월 19일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어는 서기관이나 제사장 등, 일부 사람들만 구약성경 연구 활동할 때 사용했습니다. 예수께서도 물론 아람어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아람어가 아니라 당시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어 중에서도 고전 그리스어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던 코이네 그리스어입니다. 복음서에는 아주 부분적으로만 예수님의 아람어가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충실하게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그리스어를 잘 아는 게 좋겠지요. 노자의 도덕경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한자를 잘 알아야 하듯이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  오늘 설교 본문에는 알아듣기..

믿음과 영생 (요 3:1-15)

부활절 7주, 2024년 5월 12일 거듭남에 대해서 니고데모라는 이름의 바리새인이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엘리트 중에서 최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서 유대교 신학자 계급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밤에 찾아온 이유는 자기 방문을 숨기고 싶었다기보다는 예수님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낮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어울려야 했으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예수 당신은 보통 평범한 랍비가 아니라 수준이 높은 랍비라는 뜻입니다. 불교식으로 ‘고승’이라는 뜻이겠지요. 그가 예수님을 이렇게 높이 평가한 이유는 ‘표적’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표적’은 ..

믿음과 사랑 (요일 5:1-6) / 정용섭목사

믿음과 사랑요일 5:1-6, 부활절 6주, 2024년 5월 5일 지난 두 달 넘게 의대생 증원 문제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정부는 2천 명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의사를 대표하는 쪽 사람들은 모든 걸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논의하자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중차대한 일을 졸속으로 강행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 때문일까요. 제가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에 어느 쪽의 책임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가 어떤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합의를 만들어가는 데에 대단히 서툴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도 여럿이겠지요. 협상해야 할 주체들 사이에서 주장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면 상대방을 굴복시켜야겠다는 감정까지 끼어듭니다...

상호내주의 신비 (요 15:1-8)

https://youtu.be/v6Kx3MgycV4?si=vboPyYUqWa5B49tD  부활절 5주, 2024년 4월 28일 우리 가족이 시골로 거처를 옮기고 텃밭을 돌보면서 살기 시작한 게 올해로 12년째입니다. 지난 4월23일(화)에 봄 작물 모종을 텃밭에 심었습니다. 가시오이 외 11종의 채소와 방풍나물 외 5종의 나물입니다. 이미 두 주일 전에 두 종류의 호박은 씨를 뿌려서 싹이 나오기 시작했고, 감자도 집에서 먹던 감자에 싹을 틔워서 열 조각을 심었더니 여섯 조각에서 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애플 수박과 참외 모종을 심을 예정입니다. 나무 종류는 사과나무만 한 그루 남기고 나머지는 작년 겨울에 베어버렸습니다. 농약으로 방제하지 않으니까 온갖 병충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30..

부족함 없는 삶, 가능한가?(시 23:1-6)

부활절 4주, 2024년 4월 21일 히브리어 성경 시 23편은 ‘다윗의 시편’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우리말 성경도 라는 표제를 달았습니다. 시 23편을 노랫말로 하는 찬양곡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는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노랫말이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은혜롭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로 끝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생을 산다면 대만족이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한평생..

생명의 로고스 (요일 1:1-10)

부활절 2주, 2024년 4월 7일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대개 인사말로 시작해서 본론을 다룬 다음에 인사말로 끝내는데 요한1서는 그런 인사말 없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합니다. 인사말을 주고받을 수 없을 정도로 뭔가 다급한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요일 1: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생명의 말씀’이라고 할 때 그 ‘말씀’은 그리스어 로고스의 번역입니다. 로고스는 말, 단어, 이야기, 그리고 이성, 이치, 합리성 등등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입니다.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뜻입니다. ‘저 사람은 로고스가 없어.’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세상과 삶을 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

예수 부활의 첫 증인들 (막 16:1-8)

부활 주일, 2024년 3월31일 우리에게 음력으로 계산하는 추석과 설날이 양력으로는 매해 날짜가 달라지듯이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도 유대력으로 지키기에 매해 날짜가 달라집니다. 보통 3월 말이나 4월 초입니다. 따라서 유월절과 연동된 그리스도교의 부활절도 매해 날짜가 변합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성지 순례차 예루살렘에 오셨다가 체포당하고 심문과 재판을 받은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셨습니다. 단순하게 날짜별로 계산하면 목요일에 체포당하고 밤중에 산헤드린 종교 법정에서 신성 모독죄로 고발당하신 뒤, 금요일 오전에 로마 총독 빌라도의 로마 법정에서 사회 소요죄로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일 오전 9시에 십자가형이 집행되었고, 오후 3시에 숨이 끊어지셨으며, 곧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

향유를 손에 든 여자 (막 14:1-11) / 정용섭목사

종려 주일, 2024년 3월 24일 고난주간 오늘은 세계 교회가 종려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다음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한 주간에 걸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서 여러 일을 겪으시다가 체포와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이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께는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한 겁니다. 그 마녀사냥의 출발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시작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 첫 구절인 막 14:1절이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

새 언약의 날 (렘 31:31-34)

사순절 5주, 2024년 3월 17일 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영적 깊이에서 큰 위로를 받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짠한 심정이 됩니다. 그가 겪었던 실존적인 고뇌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격동기였습니다. 유대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지기 얼마 전 유대를 개혁해보려 했던 요시야 왕은 전쟁에 나갔다가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전사합니다. 그 뒤로 유대는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요시야가 그렇게 졸지에 죽지만 않았다면 예레미야와 더불어서 유대를 새로운 나라로 만들어냈을지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 다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왕궁 귀족들에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혔습니다. 인민재판을 받아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렘 26장에 나옵니다. 당시 지도급..

죽임에서 살림으로!(엡 2:1-10)

사순절 4주, 2024년 3월 10일 그리스도교를 구원 종교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 구원 지향적이지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예술, 문학, 과학, 정치에 이르는 인간 문명 활동도 인간 구원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도교를 구원 종교라는 특징으로 이름 붙이는 이유는 교회가 구원 문제를 그 어떤 종교나 인간 문명과 달리 더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는 말에 교회의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일까요?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 서로 대답이 다르기도 할 겁니다. 죽임에서 이 문제를 오늘 설교 본문인 엡 2:1-10절은 가장 간명하게 설명합니다. 1절과 5절에 보듯이 하나님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