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47

영혼의 안식 (마 11:16~19, 25~30)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 2023년 7월 9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는 경구는 복음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장입니다. 예수께로 가면 실제 삶과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다는 약속처럼 들립니다. 29절에서는 그 내용이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이렇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비그리스도인이 이런 문장을 본다면 예수께서는 일종의 심령 치료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유명한 힐링 캠프 운영자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십 년 전 법명 혜민이라는 승려가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은 최단시기에 밀리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가르..

인신 제사의 유혹 (창 22:1~14)

성령강림 후 5주, 2023년 7월 2일 본문 설명 오늘 설교 성경 본문인 창 22:1~14절에는 일반 사람들이 읽기에는 상당히 불편하거나 위험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선 저는 그 이야기의 전모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불렀다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누가 듣더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가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입니다. 번제는 짐승의 내장과 가죽을 벗겨내고 불살라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 종류의 하나였습니다. 보통 양이나 비둘기를 번제로 드립니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나님께서 내렸다는 사실은 ..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4~33)

성령강림 후 4주, 2023년 6월 25일 십자가 공동체의 숙명 마태복음 10장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제자로서의 삶에 관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 내용에서 비장미가 느껴집니다. 오늘 설교 본문의 첫 단락인 마 10:24~33절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당시 제자들에게 놓인 상황이 몹시 심각했다는 뜻입니다. 28절을 읽어봅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여기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의 적대자들이고 제자들의 적대자들이며, 더 크게는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반그리스도교 행위에 대한 설명이 마 10:17절..

성령과 하나님 사랑 (롬 5:1~8)

성령강림후 셋째 주일, 2023년 6월18일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성경 본문을 읽을 때마다 특별한 느낌을 경험합니다. 마치 중학생이 하이데거의 책을 읽는 느낌, 또는 아마추어 산악인이 5천 미터 이상 높은 산에 올라간 느낌, 또는 동네 테니스 동호회원이 프랑스오픈 테니스 결승전을 현장에서 직관하는 느낌입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는 놀라움과 당혹스러움과 낯섦과 신비로움이 혼재된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오늘 설교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음 롬 5:1~8절은 분량으로 볼 때 짧지만 그 내용은 따라가기 숨 가쁠 정도로 엄청납니다. 첫 문장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이고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

아브라함의 소명 경험 (창 12:1~9)

성령강림후 둘째 주일, 2023년 6월 11일 하나님의 부르심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족장 시대를 연 아브라함은 유일신 종교라 일컬어지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신앙인의 표상으로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75세에 하란에서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았고 175세에 가나안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소명 이야기가 오늘 설교 본문인 창 12:1절 이하에 나옵니다. 첫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름을 바꾸기 이전이라서 아직은 ‘아브람’으로 불리지만, 우리는 편의상 그냥 아브라함으로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아브라함은 이미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지명)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마 28:16~20)

성령강림후 첫째 주일, 2023년 6월 4일 의심하는 사람들 마태복음을 쓴 사람은 예수 출생부터 시작하여 출가와 하나님 나라 선포와 여러 가르침과 치병과 치유, 그리고 여러 유형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긴 여정을 28장에 이르는 분량으로 정리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마 28:16~20절은 승천 직전의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런 대목에서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끝내는 게 글쓰기의 순리입니다. 17절에 예상외의 진술이 나옵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마태가 복음서를 쓴 기원후 80년 어간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신앙이 흔들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진술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오늘 설교 본문 바로 앞 ..

평화-파송-성령-사죄 (요 20:19~23)

성령강림절 주일, 2023년 5월28일 요 20장과 21장은 예수님의 부활 현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 오늘 설교 본문은 요 20:19~23절입니다. 이 대목은 공관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때 제자들이 모인 방에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그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문을 닫았고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도 예수께서 그 자리에 함께하셨다고 하니까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21절에서도 다시 ‘평화’의 인사를 반복합니다. 이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에서는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23절에서 죄의 용서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자의 하나님 (시 68:1~10)

부활절 일곱째 주일, 2023년 5월 21일 하나님의 승리 설교 준비할 때 제가 종종 참고하는 (Die Gute Nachricht, DIE BIBEL in heutigem Deutsch)은 오늘 설교 성경 본문인 시 68편에 “하나님의 승리”(Gottes Sieg)라는 소제목을 달았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원수들과 ‘주를 미워하는 자들’(1절)과 ‘여러 군대의 왕들’(12절)을 완벽하게 제압한다는 내용입니다. 2절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연기가 불려 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망하게 해달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기는 합니다. 이런 비슷한 표현들이 68편 전체에, 그리고 전체 150편에 이르는 시편에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적을 완벽..

“살아있음” (요 14:15~21)

부활절 6주, 2023년 5월 14일 요한복음이 기록된 시기는 1세기 후반 10년 어간입니다. 그 시기에 교회가 처한 상황은 두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 회당에서 축출되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지주의가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사실은 교회의 생존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사실은 교회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6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초기 교회의 출중한 지도자였던 (예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와 바울이 죽은 지 3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90년대의 교회는 역사에 살아남을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유대교의 아류로 떨어질지, 또는 혼합주의 색채를 띤 소종파로 전락할지가 결정될,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

어둠에서 빛으로! (벧전 2:2~10)

부활절 다섯째 주일, 2023년 5월 7일 프뉴마티코스 오늘 설교 성경 본문의 첫 구절인 벧전 2:2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듣는 구절이라 생각하면서 들어보십시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위 구절이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나 그 의미는 아주 깊고 오묘합니다. 여기서 세 대목만 짚어보겠습니다. 1) 일단 ‘순전하고 신령한 젖’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를 그대로 짚겠습니다. ‘λογικὸς, ἄδολος, γάλα’ 여기에 해당하는 영어는 각각 reasonable, pure, milk입니다. 헬라어 ‘로기코스’는 ‘합리적’(rational)이라는 뜻과 ‘영적’(spiritual)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로기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