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87

십자가의 길과 하나님의 능력 (고전 1:18-25) / 정용섭목사

사순절 3주, 2024년 3월 3일 오늘 설교 본문인 고전 1:18-25절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1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라고 할 때 도는 그리스어 λόγος의 번역입니다. 이 로고스는 그리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 또는 노장사상의 도(道)나 하이데거의 존재(Sein)처럼 만물의 근원이자 원리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은 1:1절에서 로고스를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말 성경은 이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와 달리 ..

예수 승천과 하나님 우편 (벧전 3:18-22)

사순절 1주, 2024년 2월 18일 베드로전서는 1:1절에서 수신인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거론된 지명은 모두 지금의 튀르키예에 해당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시기는 네로가 그리스도인을 유별하게 박해하던 60년대이거나 도미티안 황제가 박해하던 90년대라고 합니다. 집필 연대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박해받던 시기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는 특히 ‘고난’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2:19절에서는 부당한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라고 했고, 4:13절에서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오히려..

여호와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 (사 40:21-31)

주현절 후 5주, 2024년 2월 4일 고대 유대인들에게 기원전 587년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연도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무너진 해이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의 집은 물론이고 왕궁과 성전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난민이 되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문화, 상업, 예술 등등, 모든 사회 체제가 해체되었습니다. 지도급 인사들은 상당수가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신세 한탄을 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오십 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제국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의 재일교포나 재미교포들처럼 거기서 돈을 번 사람도 생겼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도 나왔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과 ..

예수의 배타적 권위 (막 1:21-28)

주현절 후 4주, 2024년 1월 28일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은 공생애 초창기에 주로 갈릴리 호수 북쪽 어촌인 가버나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막 1:21-28절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이 되어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성경을 읽고 그 성경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남자 성인이라면 그 성경 본문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 21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설교하신 겁니다. 그걸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22절에 나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

부름-버림-따름 (막 1:14-20)

주현절 후 3주, 2024년 1월 21일 줄탁동시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고 광야에서 사십일을 머문 뒤에, 갈릴리 가버나움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뒤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 선택입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 호숫가를 지나가다가 배에서 그물을 던지고 끌어올리던 어부 시몬과 안드레 형제를 보시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시몬(베드로)과 안드레는 그물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조금 더 길을 가다가 고기잡이하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자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이..

사무엘의 하나님 경험 (삼상 3:1-10) / 정용섭목사

주현절 후 2주, 2024년 1월 14일 사무엘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종교와 정치 두 권력을 손에 잡았던 인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부족사회인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그는 초대 왕 사울을 선정해서 세웠다가 사울이 왕 노릇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자 그를 폐위시키다시피 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울 정도로 막강한 리더십을 행사했습니다. 사무엘의 출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불임으로 고생하다가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바치겠다고 서원 기도를 바쳤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뗄 나이가 되었을 때 실로에서 제사장으로 있는 엘리의 손에 위탁되었습니다. 그는 불교의 동자승처럼 ..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행 19:1-7)

주현절 후 1주, 2024년 1월 7일 에베소 교회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성지는 예루살렘과 갈릴리입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님의 3년간 공생애가 주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바울이 왕성하게 선교 활동을 펼친 소아시아, 그러니까 지금의 투르키예 중서부와 그리스 지역에도 성지라 일컬어질 만한 장소는 많습니다. 교부 시대로 넓히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과 이스탄불이 중요하겠지요. 저는 요한계시록에 거론된 소아시아 일곱교회가 있었던 튀르키예를 가보고 싶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의 배경인 에베소(에페소스)는 튀르키예의 남서쪽에 자리합니다. 에베소 왼편으로는 지중해가 있고, 아래로는 밀레도가 있습니다. 밀레도(밀레토스)는 고대 서양 철학의 발생지입니다. 탈레스..

만물의 찬양 (시 148:1-14)

성탄 후 1주, 2023년 12월 31일 시편 148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시편 마지막 묶음인 146편부터 150편까지 다섯 편이 똑같은 형식입니다. 구약 원전인 히브리어 성경의 문장 구성도 똑같습니다. 할렐루야는 ‘찬양하라.’라는 뜻의 히브리어 ‘할렐루’와 여호와를 가리키는 ‘야’의 합성어입니다. ‘할렐’은 찬양이라는 명사형 단어입니다. 어떤 복음 찬송가에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야’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는 ‘찬양하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할렐루’라는 단어가 어미 변형으로 1-14절에 반복됩니다. 이를 우리말 성경은 뜻풀이해서 ‘찬양하라.’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148편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인 1-6절는 우주론적 차원에서 ‘찬양..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눅 1:26-38)

대림절 4주, 2023년 12월 24일 우리 개신교회와 로마가톨릭 사이에서 마리아는 일종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개신교회는 마리아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나 로마가톨릭교회는 거의 여신급의 대우를 받습니다. 가톨릭교회에는 성모 승천 축일도 있고, 성모송(聖母誦) 형식의 기도문도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 성모상이 있고, 개별 신자들 집안에도 대개는 성모상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연관된 각종 신화가 그들의 신앙 현장에 자리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을 때만이 아니라 영원한 처녀였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형제들은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 형제라고 둘러댑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우리 눈에는 마리아를 거의 우상 숭배하듯이 섬기기는 하나, 가톨릭 신학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리아를 신..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 (사 61:1-4, 8-11)

대림절 3주, 2023년 12월 17일 이사야의 소명 저는 구약 선지자들의 설교를 읽을 때마다 그 강력한 메시지에 놀라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유대교의 율법을 다루는 모세오경이나 역사를 다루는 전기 예언서, 또는 그들의 신앙을 문학적으로 다루는 시편이나 전도서 말씀도 은혜롭기는 하나, 선지자들의 설교인 후기 예언서 말씀이 더 강렬하게 들리는 이유는 각각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설교 본문으로 선택한 이사야 61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 61:1, 2절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바벨론 포로기 어간에 실제로 활동했던 한 선지자의 설교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