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47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벧전 2:18~25)

부활절 넷째 주일, 2023년 4월 30일 저는 설교 준비를 위해서 해당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종종 짠한 마음이 듭니다. 그 본문을 쓴 사람과 독자들이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이 저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노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권면이 오늘 설교 본문(벧전 2:18~15)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벧전 2:18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들아’로 번역된 헬라어 οἰκέται(οἰκέτης의 복수 호격)를 영어 성경은 servant라고 번역했고, 우리말 과 은 ‘하인’으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절의 느낌을 확실하게 살리려면 종이나 노예라고 번역하는 게 낫습니다. 당시에 집안..

눈이 밝아진 두 제자 (눅 24:28~35)

부활절 셋째 주일, 2023년 4월 23일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입니다. 하나는 무덤이 비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도 두 유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눅 24:1~12절은 일단의 여성 제자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무덤에 묻힌 지 이틀 후, 그러니까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시간에 무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 대신 천사 둘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이 여성들이 무덤에서 본 이상한 현상을 사도들에게 전했으나 사도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엠마오 두 제자 이어지는 눅 24:13~35절은 다른 복음서에 없는 누가복음만의 부활 전승입니다. 이른바 ‘엠..

믿음의 깊이 (요 20:24~31)

부활절 둘째 주일, 2023년 4월 16일 부활 신앙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증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복음 선포도 헛것이고 믿음도 헛것이라고(고전 15:14, 17, 19 참조) 단정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에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를 잡게 되는 정치적 배경이 있기는 하나 근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일에 일어났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 출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경험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안타깝게도 일종의 신앙적 구호로만 남아있습니다. 부활절도 그럴듯한..

감추어짐과 나타남 (골 3:1~4)

부활주일, 2023년 4월 9일 감추어짐 오늘 설교 본문에는 손에 딱 잡히지 않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생명이 감추어졌다는 표현이 가장 그렇습니다. 우선 골 3:3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이 문장에서 ‘너희가 죽었고’라는 말은 세례를 통해서 발생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존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서 자기를 이미 죽은 자로 여깁니다. 물론 실제로 죽지는 않습니다. 죽을 수는 없고 죽어도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사건이기에 삶의 모든 부분이 위축되어서도 안 됩니다. 가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금욕주의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서 죽었다는 말은 세례받기 전의 자기와 받은 후의 ..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사 50:4~9a)

사순절 여섯째 주일, 2023년 4월2일 종의 노래 오늘 설교 본문 사 50:4~9a은 기원전 6세기에 벌어진 유대의 바벨론 포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유대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겪는 고초와 수모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사 50:6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표현은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사실 묘사에 가깝습니다. 패전 국가 백성들이 종종 당하는 일들입니다. 2년 가까이 계속된 바벨론 제국의 공격으로 예루살렘 성이 기원전 587년에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 안의 모든 것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귀한 기물들을 약탈..

하나님의 영 (롬 8:6~11)

사순절 다섯째 주일, 2023년 3월 26일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입니다. 우선은 그의 영적인 내공을 제가 따라가기 벅차다는 느낌이 그것입니다. 기껏해야 1천 미터 높이의 산만 올라가 본 사람이 전 세계에서 고봉으로 알려진 8천 미터 이상 14개 산을 모두 등반한 산악전문가 앞에 선 심정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세계가 너무 신비롭고 강력해서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겠다는 궁금증, 또는 호기심이 계속 이어집니다. 로마서를 읽을 때 그런 감정이 더 강렬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롬 8:6~11)에 나오는 단어를 몇 개만 일단 짚어볼 테니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살펴보십시오.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 하나님과 원수, 하나님의 ..

바리새인의 ‘죄’ 문제 (요 9:35~41)

사순절 셋째 주일, 2023년 3월 19일 복음서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고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식한 사람들도 있고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있고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난치병을 앓는 이들이나 장애인들도 있었고 건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께 가장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이들은 바리새인(바리새파)입니다. 바리새파의 원래 뜻은 ‘구별된 자’입니다. 좋은 뜻입니다. 바리새파 운동은 기원전 167~142년에 유대인들과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서 벌어진 마카베오 전쟁 이후부터 큰 세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종교적 엘리트 집단인 그들의 특징은 율법 수호에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정권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혁을 꿈꾸었습니다. 이들과 경쟁 관계에 ..

‘르비딤’ 광야에서 (출 17:1~7)

사순절 셋째 주일, 2023년 3월 12일 지금도 몽골, 시베리아, 아프리카 등등, 세계 여러 곳에서 유목민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첨단 문명사회에 깊숙이 들어간 사람들의 눈에 그들의 삶은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물을 펑펑 쓰지만, 그들은 씻을 물은 물론이고 마실 물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축에게 먹일 풀과 물을 찾아서 수시로 이동합니다. 자연생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살기에 문명사회가 제공하는 안전망이 크게 부실합니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이들도 간혹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습니다. 이렇다 할 연봉이나 연금이 없고, 병원이나 사우나나 편의점이나 맛집이나 영화관도 없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쏟아붓습니다. 그들의 삶은 불행할까..

믿음과 영생 (요 3:1~17)

사순절 둘째 주일, 2023년 3월 5일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 동시에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다고 합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 식민 통치를 받던 당시 유대를 공적으로 대표하는 기구입니다. 오늘날의 국회와 대법원을 합한 정도의 조직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개인 자격으로 왔는지 공회를 대표하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밤에 왔다고 합니다. 낮에 오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는 요 3:2절에서 예수께 이렇게 말문을 엽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당시에 예수께서는 유대교 권력자들에게 이미 경계의 대상이었습니..

생명 왕권 (롬 5:12~19)

사순절 첫째 주일, 2023년 2월 26일 오늘 우리는 신구약 성경 본문 중에서 이해하기 가장 까다로운 것 중의 한 대목을 설교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첫 구절인 롬 5:12부터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구절을 네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서 죄(ἁμαρτία)가 시작되었다. 죄로 인해 죽게(θάνατος) 되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의 운명에 떨어졌다.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