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1085

심증을 물증으로!(히 11:1-3) / 김영봉 목사

해설: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10장에서 모든 박해와 환난과 유혹을 견디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확신과 담대함과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 "생명을 얻을 사람들"(10:39절)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저자는 그렇게 믿음을 지킨 사람들의 예를 모델로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1절)이다. ‘휘포스타시스’를 “확신”으로 번역하면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 오해할 수 있다. 개역개정처럼 “실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바라는 것”은 “소망하는 것”을 가리킨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소망하는 것--그분의 언약과 약속--을 현재적 실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같은 생각을 다르..

확신, 담대함 그리고 인내 (히 10:32-39) / 김영봉 목사

해설:배교의 위험성과 그 결과의 참혹성에 대해 경고한 다음, 저자는 그들이 이미 “고난의 싸움”(32절)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당시에 그들은 “모욕과 환란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33절) 했다. “구경거리가 되다”라는 말은 믿는 이들에 대한 박해가 공공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런 처지에 놓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다”는 말은 공동체로 모여서 박해 받는 이들의 고난에 참여하고 기도했다는 뜻이다(34절). 그들은 “그런 일을 기쁘게” 당했는데, 이 땅의 소유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35절)에서 “확신”으로 번역된 ‘파레시아’는 “담대함”으로 번역하는 것이..

떠날 수 없는 사랑 (히 10:26-31) / 김영봉 목사

해설:앞에서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25절)에 대해 언급한 후, 저자는 믿음을 배반한 사람의 구원 문제를 다룬다.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은 뒤"(26절)라는 말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를 뜻한다. "짐짓"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시쿠시오스’는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을 가리킨다. 율법 규정에 의하면, 실수 혹은 무지로 인해 범한 죄만 제사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고, 고의적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민 15:30; 신 17:12). 그렇다면, 복음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알았으면서도 고의적으로 믿음을 버린다면, 그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속죄의 제사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서운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킬 맹렬한 불”(27절)이다. 저자는 믿음을 져버린 ..

믿음, 소망, 사랑 (히 10:19-25) / 김영봉 목사

해설:8장부터 이어진 긴 교리 설명에 대한 결론으로서 저자는 권면의 말을 쓴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도 먼저 구원의 원리를 설명한 다음,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19절)라고 확인한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스스로를 정결하게 한 다음에 조심스럽게 들어가 속죄 제사를 드린 곳이다. 대제사장조차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마음 졸여야 했다. 그런데 이제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담대하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의미다.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을 예수님께서 제거해..

속죄와 중재 (히 10:12-18) / 김영봉 목사

해설: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죄를 없앨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영원하고 유효한 제사"(12절)는 그럴 수 있다. 완전한 제사는 반복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다음, 예수께서는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이것은 의인화 된 표현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거하신다는 뜻이다. 앞에서 저자는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7:25)라고 했다. 하나님의 위치로 돌아가신 후에도 그분은 구원의 역사를 지속하신다. 이어서 저자는 시편 110편 1절의 표현을 빌어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 아래에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13절) 계시다고 말한다. 여기서 “원수들”은 사탄과 그의 수하들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그림자와 실체 (히 10:1-11) / 김영봉 목사

해설:저자는 계속하여 인간 제사장이 드리는 제물과 예수께서 바치신 완전한 제물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앞에서 “원형”과 “모형”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던 저자는 여기서 “그림자”와 “실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율법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1절)일 뿐이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규정을 따라 드리는 제사는 완전하지 않다. 그 제사가 완전했다면 해마다 드릴 이유가 없었다(2절). 역설적이게도, 해마다 대속죄일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해마다 확인하는 결과가 되었다(3절). 짐승의 피가 없애준 것은 죄책감이지 죄가 아니었다(4절),  저자는 여기서 시편 40편 6-8절을 인용한다(5-7절). 저자는 이 시편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한다. “주”는 성..

우리가 기다리는 것 (히 9:23-28) / 김영봉 목사

해설:장막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물”(23절)이다. 따라서 짐승의 피로 깨끗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원형 즉 “하늘에 있는 것들”은 짐승의 피로는 깨끗해질 수가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더 나은 희생제물”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통해 “하늘 성소 그 자체”(24절)에 들어가셔서(승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번” 하늘의 지성소에서 “완전한 제사”를 올리셨다(25-26절). 사람이 태어나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27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약속에 근거한 믿음 (히 9:11-22) / 김영봉 목사

해설:“이미 일어난 좋은 일”(11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한 대속의 사건을 가리킨다.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즉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가리킨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손으로 지은 장막에서 제사 드렸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제사를 드리셨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매 년 한 번씩” 반복하여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단 한 번에” “영원한 구원”(12절)을 이루셨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피로써 그렇게 하셨다. 율법에 의하면,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피와 재가 뿌려지면 무엇이든 깨끗함을 얻는다(13절). 짐승의 피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그 효력이 더 커야 한다...

보혈을 지나 (히 9:1-10) / 김영봉 목사

해설:"첫 번째 언약"(1절)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장막"(혹은 “성막” 혹은 “회막”, 2절)을 짓도록 지시 하셨는데(출 25-30장), 그것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있었다(3절). 성소는 제사장들이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성소에는 촛대와 빵(진설병)을 차려 놓는 상이 있었고, 지성소에는 “분향제단”과 “언약궤”가 있었다. 언약궤(혹은 “법궤” 혹은 “증거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물건으로서,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언약(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4절). 언약궤 위에는 “그룹들”이 날개로 ..

더 좋은 약속 (히 8:7-13) / 김영봉 목사

해설:예루살렘 성전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규정은 모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첫 번째 언약"(7절)에 기초한 것이다. 첫 번째 언약은 본질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지은 성전에서, 죄인인 제사장이, 짐승의 피로써, 반복적인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언약"을 주셨다. 그 언약에 대해서는 여러 예언자들이 예언을 했는데, 저자는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예언을 인용한다(8-12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이 예언을 언급하셨다. 당신의 피는 새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 흘리는 피라는 뜻이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첫 번째 언약 즉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그어 주신 것이다. "너희가 죄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