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심증을 물증으로!(히 11:1-3)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4. 11. 05:51

 

해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10장에서 모든 박해와 환난과 유혹을 견디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확신과 담대함과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 "생명을 얻을 사람들"(10:39절)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저자는 그렇게 믿음을 지킨 사람들의 예를 모델로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1절)이다. ‘휘포스타시스’를 “확신”으로 번역하면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 오해할 수 있다. 개역개정처럼 “실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바라는 것”은 “소망하는 것”을 가리킨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소망하는 것--그분의 언약과 약속--을 현재적 실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같은 생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증거”로 번역된 ‘엘렝코스’는 법적이고 객관적인 물증을 가리킨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하나님, 하나님 나라, 영생 등)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는 증거 혹은 물증이 없다. 그럼에도 존재한다고 믿으니, 믿음이 증거가 된다.  

 

“선조들”(2절)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4절 이하에서 저자는 구체적으로 몇몇 인물들을 소개할 계획이다.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들이 믿음을 따라 살았다는 사실에 대해 인정해 주셨다.

 

믿음은 “미래”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게 해 줄 뿐 아니라 “과거”를 그렇게 보게 해준다. “세상”은 ‘투스 아이오나스’의 번역으로 “세상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저자는 여기서 땅의 세계만이 아니라 하늘에 보이는 세계까지도 포함하여 말하고 있다. 오늘의 언어로 한다면 “믿음으로 우리는 온 우주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3절)라고 번역할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나타난 것”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무엇인가 존재하기 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 즉 보이는 것/나타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나타나지 않은 것에서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무로부터의 창조”(criatio ex nihilo)라는 개념이 나왔다.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은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절대 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묵상:

앞에서 저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확신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본질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일차원 시간 안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는 삼차원 공간 안에서 살지만, 하나님은 신적 차원에서 일하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살면서 영원을 소망하고, 육신을 입고 살지만 영적 존재로 살고, 현실에 발 딛고 살지만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는 세상을 전혀 다르게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과 육신을 전부로 여기지만(유물론적 세계관), 믿는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크고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믿습니다(유신론적 세계관).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한 물증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확실한 물증이 없는 한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마음을 열고 보면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환히”(롬 1:19) 드러나 있습니다. 물증은 없어도 그분을 알고 믿을 만한 심증은 많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생각이 허망해져서”(롬 1:21) 그 심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심증을 물증처럼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에 대한 확신은 그것을 이미 손에 잡은 것처럼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심증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그것은 물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욕과 환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에서 완주하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물질에 갇힌 저희의 마음을 여셔서 주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셨고, 시간에 묶인 저희를 풀으셔서 영원을 품게 하셨습니다. 이 걸음으로 저희의 인생길에서 완주하도록, 확신과 담대함과 인내를 더욱 강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