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장막에서 살다.(히11:8-12)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4. 13. 07:21

 

해설:

네번째 모델로 저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제시하는데, 그에게 제일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8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은,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알고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부르신 분을 믿고 그의 안전지대를 떠났다.

 

그는 가나안 땅에 이르러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9절) 하였다. 그의 자손들이 장차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이었으나, 당장 그는 그 땅에서 이방인으로 취급 받았다.  “장막에서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태도로 살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 저곳으로 전전했다.  

 

이주민 소수자로 유랑하는 삶을 살면서도 아브라함이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10절)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저자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9:11)이라는 표현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묘사했는데, “하나님이 지으실 도시”도 같은 의미다. 이 땅에서 “장막에서” 사는 이유는 그 영원한 도시를 믿고 소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믿음의 어머니 사라의 이름도 빼놓지 않는다(11절).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여 “임신할 능력”을 얻은 사람이 사라를 가리키는지, 아브라함을 가리키는지, 원문 상으로 분명하지 않다.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생각”하고 의지했다. 그 결과, 그 부부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12절)이 나왔다. 사라도, 아브라함도 생식 기능 면에서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묵상: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장막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나라의 법에 따라 땅도 사고 집도 짓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장막과 다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두고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장막에서 살던 노마드(유목민)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 심장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믿고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속한 것에서 자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나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고후 5:1)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우리의 몸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3절)라고 말합니다. 그는 때가 되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땅에 있는 “장막”을 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4절) 때가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 모든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이른 것이 75세였고 세상을 떠난 것이 175세였으니, 그는 백 년 동안 가나안 땅에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가 소유한 땅은 아내의 묘지로 구입한 헤브론의 막벨라 밭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때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구책을 구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았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로 하여금 아브라함과 사라의 “장막 정신”을 본받게 해주십시오.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영원을 살 것처럼 생각하는 저희의 미몽을 깨우쳐 주십시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고 바라는 사람답게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