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3 12

그 발걸음이 복음과 섬김의 통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또한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기억하며 찬양합니다. 이어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강권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심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소서!이 시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기도하게 하심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선한 일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오늘 진형형제와 자매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먼저 함께 베다니공동체에서 함께 예배하게 하심을..

동해 산보 / 정용섭 목사

며칠 전 동해 쪽으로 잠간 산보를 다녀왔다.주로 차를 많이 탔지 걷는 건 얼마 되지 않았으니산보라 하기는 민망하나 그래도 스스로 산보라 여겼다.서해는 자주 가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드나갯벌도 많고 섬도 많아서 여성적이라 한다면동해는 수심도 갑자기 깊어지고 말 그대로 망망대해라남성적인 성격이 많이 보인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푸른빛이 짙고수평선이 끌없어 보인다.그날따라 갈매기의 비상이 활발했다.바닷가 바람을 타고 멋진 활공을 보였다.내가 사는 원당에서도 새는 자주 본다.가장 많은 새는 참새다.까치도 제법 보인다.꿩은 나는 게 서툴다.그외 이름을 모르는 새들을 자주 본다.새들이 공기를 이용해서 나는 것과물고기들이 물을 이용해서 수영하는 건 똑같은 원리다.자세히 보면 새와 물고기의 동작도 비슷하다.바..

트레킹 / 정용섭 목사

오늘 이른 아침부터 원당리에 눈이 왔다.눈발이 제법 굵어지더니 제법 쌓였다.금요일과 토요일은 설교를 준비하는 날이니가능하면 꼼짝 말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나이런 날은 특별한 날이니 뭔가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집사람과 둘째딸을 불러서 트래킹을 가자고 했다.그래봤다 왕복 한 시간 거리다.우리집에서 북쪽으로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별로 크지 않은 저수지다.살얼음이다.단단하게 얼었으면 동네 아이들 썰매타기 딱 좋을 거 같다.옛날에는 썰매 탈 정도로 얼지 않았겠는가.동네분들에게 기회 닿으며 물어봐야겠다.내려오는 길에 우리집에서 건너다보이는 무덤쪽으로 갔다.거기에는 우리동네에서 가장 멋진 소나무가 있다.실제 모습은 그림보다 멋지다.왼편으로 봉분이 보인다.옛날에는 동네 아이들이 여기서..

김사인 시(6)- 치욕의 기억 / 정용섭 목사

치욕의 기억                                                영화배우 전지현을 닮은 처녀가 환하게 온다 발랄무쌍 목발을 짚고 (다만 목발을 짚고) 스커트에 하이힐 스카프는 옥빛 하늘도 쾌청 그런데 (뭔지 생소하다 그런데) 오른쪽 하이힐이 없다오른쪽 스타킹이 없다오른쪽 종아리가 무릎이 허벅지가 없다 나는 스쳐 지나간다돌아보지 못한다 묻건데이러고도 生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  * 감상시인은 ‘이러고도 생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 하고 외친다. 문장은 의문문이되 끝에 달린 부호는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다. 물을 대상이 없다는 뜻인지, 묻고 싶으나 물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인지. 저 질문, 저 비탄, 저 좌절은 하나님을 향한 것인지 모른다. 모든 인생은 다..

김사인 시(5)- 탈상 / 정용섭 목사

탈상 영정을 고여놓고떡 고기 전 괴고조율시이 홍동백서 진설하고메 올리고 삽시(揷匙)하고 나서땅 땅 땅 세 번 정저소리 울리고유세차 축도 읽고 일곱 살짜리 상주꾸벅 절하고 잔 올리고미망의 여윈 아내 울먹절하고 잔 올리고 큰동생 절하고친구들 하나둘 절하고막내여동생도 잔 올리고밖은 어느덧 어둡고안개비 깔리고 그대 육신 이제 흙 속에서많이 상했으리잘 가라 그대이승의 마지막 밥이니배불리 들고술 취해 흔들흔들잘 가라 그대  * 감상탈상(脫喪)은 보통 백일이다. 가족에게 상보다 더한 슬픔은 없겠으나 그런 슬픔에 매달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백일로 끝내라는 뜻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망자를 어찌 잊겠는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탈상 의식을 치루고 있는 가족, 친구들도 결국 망자의 길을 곧 따라가야 ..

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 정용섭 목사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    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

일반문화명령의 바른 사용 / 신동식 목사

일반문화명령의 바른 사용 일반은총이라는 신학적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타락 이후에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후에 급속하게 진행되는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일반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일반은총을 강조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께서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일반적인 은혜를 베푸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은총으로 인하여 불신자들도 지혜를 가질 수 있고, 정치와 학문 그리고 과학과 예술 등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별히 이 가운데 국가의 영역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하면 국가는 타락한 이후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창조..

믿음으로 선택하기

믿음으로 선택하기       글쓴이/봉민근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우리의 미래는 지식에 있지 않고 믿음에 달려 있다.믿음은 미래를 맡기는 것이다.믿음 없는 삶은 허상이다.성공은 한때 잠깐이요 영원하지 않다.믿는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믿음은 행동하게 만드는 영원한 진행형이다.행함 없는 것은 믿음이 실종된 것이다.새가 날지 않으면 새가 아니요 물속을 헤엄칠 수 없다면 물고기가 아니듯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는 신자가 아니다.믿음으로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회의론자들은 문제만 찾아내고 말만 하지만 일은 믿음의 사람이 해낸다.진짜는 꾸미지 않아도 진짜로서 빛이 난다.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그의 삶 자체가 믿음으로 짜여 있다.마음 중심에 믿음의 문이 닫히면 현상만 보..

장막에서 살다.(히11:8-12) / 김영봉 목사

해설:네번째 모델로 저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제시하는데, 그에게 제일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8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은,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알고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부르신 분을 믿고 그의 안전지대를 떠났다. 그는 가나안 땅에 이르러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9절) 하였다. 그의 자손들이 장차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이었으나, 당장 그는 그 땅에서 이방인으로 취급 받았다.  “장막에서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12:13) / 이금환 목사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한복음12:12-13)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오가시면서 전도하시고, 설교하시고, 사역을 하시다가 생애 마지막 유월절 엿새 전에 나사로를 살리셨던 베다니에 이르렀다가 유월절 며칠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유월절 명절을 지키려고 전국에서 큰 인파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큰  무리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 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린 나귀를 타심도 그렇거니와 행렬로 보나 로마 황제나, 헤롯 왕이나, 심지어 대제사장이나, 총독의 행차와는 비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