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확신, 담대함 그리고 인내 (히 10:32-39)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4. 10. 07:03

 

해설:

배교의 위험성과 그 결과의 참혹성에 대해 경고한 다음, 저자는 그들이 이미 “고난의 싸움”(32절)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당시에 그들은 “모욕과 환란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33절) 했다. “구경거리가 되다”라는 말은 믿는 이들에 대한 박해가 공공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런 처지에 놓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다”는 말은 공동체로 모여서 박해 받는 이들의 고난에 참여하고 기도했다는 뜻이다(34절). 그들은 “그런 일을 기쁘게” 당했는데, 이 땅의 소유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35절)에서 “확신”으로 번역된 ‘파레시아’는 “담대함”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모욕과 환란의 상황에서 주눅들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내”(36절)가 된다. 11장 1절에 의하면,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보이지 않는 것”)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바라는 것”) 그분의 뜻을 행하며 인내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하박국서 2장 3-4절을 인용한다(37-38절). 이 구절은 바울에게도 매우 중요했다(롬 1:17). 저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1) 하나님의 구원이 멀지 않다는 사실과 2) 믿음의 길에서 물러서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이 되지 말고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39절)이 되라고 권한다.  

 

묵상: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반대를 겪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믿는다는 이유로 무시 당하거나 조롱 당하는 일도 가끔 일어납니다. 특히 요즈음 대학 캠퍼스에서는 “너, 아직도 교회 다녀?”라면서 석기 시대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조롱하는 일들이 흔히 일어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악행에 가담하지 않음으로 인해 손해를 당해야 하는 상황도 가끔 일어납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에서는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한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는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려면, 믿음 때문에 잃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에게 약속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확신은 환난과 박해 중에도 담대하게 말하고 행동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로 인해 고난이 심해진다 해도, 그런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의 믿음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믿음”이며 “증명되지 않은 믿음”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환난의 때에 드러나는 것처럼, 믿음도 환난과 모욕과 박해를 통해 입증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 많은 축복을 누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이 땅의 것을 모두 포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34절)이 약속되어 있음을 믿기에 고난이 올 때 기쁘게 당할 믿음의 실력이 우리에게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 사실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고개 숙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도 큰 환난이나 박해가 올 수 있는데, 그 때에도 든든히 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믿음이 어떠한지, 잘 아시지요? 아직 안전할 때, 저희의 믿음을 고쳐 주십시오. 환난과 모욕과 박해가 일어날 때, 확신과 담대함과 인내로써 진가를 드러내는, 참 믿음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