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약속에 근거한 믿음 (히 9:11-22)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4. 3. 06:10

 

해설:

“이미 일어난 좋은 일”(11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한 대속의 사건을 가리킨다.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즉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가리킨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손으로 지은 장막에서 제사 드렸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제사를 드리셨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매 년 한 번씩” 반복하여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단 한 번에” “영원한 구원”(12절)을 이루셨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피로써 그렇게 하셨다.

 

율법에 의하면,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피와 재가 뿌려지면 무엇이든 깨끗함을 얻는다(13절). 짐승의 피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그 효력이 더 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14절) 하나님께 바치셨다. 그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해 준다. 그리스도를 “새 언약의 중재자”(15절)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언약 안에 들어갈 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 우리는 “죄 씻음”을 받고 “약속된 영원한 유업”(15절)을 차지하게 된다. 

 

헬라어 ‘디아테케’를 “언약”이라는 의미로 사용해 온 저자는 16절 이하에서 “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새 언약은 예수께서 죽음으로써 맺으신 것이므로 유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언은 죽은 후에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16-17절). 모세가 첫 번째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의 피를 언약책과 장막과 장막 기구와 온 백성에게 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18-21절). 이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함이었다(22절). 

 

묵상:

제사 제도는 번거롭고 많은 비용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편리한 면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져 온 짐승의 머리에 제사장이 손을 얹고 “이 사람 대신 이 짐승이 피를 흘리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린 다음 그 사람의 눈 앞에서 도살하여 피를 쏟아내고 몸을 조각내어 제단에 올려 놓고 태워 바치는 광경을 보고 나면, 자신의 죄가 정말 사해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짐승 한 마리를 희생하여 양심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정기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얻곤 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도 과거에 드리던 제사에 대해 자주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서 돌아올 때 느꼈던 양심의 개운함이 그리웠을 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영원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실감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기초한 믿음이 위험한 이유를 발견합니다. 감정과 느낌은 인간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감정이 죽어 있으면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감정과 느낌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것은 늘 변하고 또한 속아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감정과 느낌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들은 제사 드렸을 때 느꼈던 양심의 개운함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주신 새 언약의 약속을 믿고 그 위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추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결과로 일어나는 감정 변화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주목해야 합니다. 느낌이 있거나 없거나, 약속에 근거하여 늘 성령의 인도를 구할 때, 우리는 때로 “진실로 그러하다!”고 고백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감정이 늘 살아있게 해주십시오. 마음의 질병으로 인해 살아 있으나 죽은 것처럼 사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때로 터질 듯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저희로 하여금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게 해주십시오. 감정의 조화에 놀아나지 않고,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