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2 9

야곱의 장례식의 영적 의미(창50:1-14)

야곱의 장례식의 영적 의미(창50:1-14) 본문은 야곱의 장례가 엄숙한 애도 속에 거행되는 장면이다. 본문에서 야곱은 애굽 이주 이후 아마도 요셉의 아비로서 왕족 예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장례가 70일엘 걸친 국장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장례 후 야곱의 시신은 가나안 땅의 선영 막벨라 굴로 운구되었는데, 이러한 야곱의 장례행렬은 400년 후에 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대행렬을 예시한다과 할 수 있다. 한편, 야곱의 가나안 땅 막벨라 굴 장사는구속사적인 면에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인친 행위이자,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천국(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을 상징한다. 또한 야곱이 애굽 땅이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장례된 것은 성도의 참된 안식처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누가복음8:15) 땅이나 화분에 씨앗을 심으면 아예 발아조차도 하지 않은 씨앗, 씨앗이 싹이 터서 조금 자라다가 깜박하고 물을 주지 않으면 어느새 시들어 다시 회생이 불가능 할 때가 있고, 물을 적당히 주어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았는데 식물의 색깔이 누렇거나 허옇게 되어 식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거나 읽어도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이해도 못하는 마음은 씨앗을 새나 짐승이 다 주워 먹고 아예 싹도 틔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느낌도 있고, 감동도 있고, 이해도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 조금만 힘들면 언제 그런 말..

오병이어 (51)(막 6:42)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오병이어로 남자만 계산해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여전히 배고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결식아동들과 결식노인들도 상당한 숫자입니다. 북한을 비롯해서 총체적으로 가난한 나라로 눈을 돌리면 배고픈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들은 왜 배가 고플까요? 간단하게만 본다면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이겠지요. 일반적으로 가난은 본인의 책임으로 취급됩니다. 당사자의 게으름이나 무책임, 또는 나쁜 운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가난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흔한 말이지만 지구에 절대적으로 먹을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너무 많은 걸 소유하고..

오병이어 (50)(막 6:42)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기적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을 위해서 이 문제를 한 번 더 언급해야겠군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은 성서 밖의 세계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지금도 그런 소문들은 많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는 이런 현상들이 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성모 마리아가 직접 현현했다는 이야기나 병자를 특별한 능력으로 고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신약성서에 들어오지 못한 외경이나 위경 중에는 예수님이 어린 시절에 행한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런 위경과 위경을 모두 포기하고 네 복음서만 경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말은 곧 초기 기독교가 예수님의 초능력에 관해서 관심이 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것보다는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실 하..

오병이어 (49)(막 6:42)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당신은 오병이어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는 이 사건을 믿는지, 아니면 믿지 않는지 분명히 대답하라고 다그치고 싶은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말을 자꾸 빙빙 돌리는 걸 보니 믿지 않는 것 같다고 예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저는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본문은 분명히 초자연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전하고 있지만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요. 다시 질문합니다. 그때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진 걸까요? 제자들이 빵을 떼어서 한 사람을 주면, 제자의 손에 들려 있던 빵이 다시 부풀어 올랐을까요? 본문은 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먹을 게 없던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

못은 왜 안 박았나요?

못은 왜 안 박았나요? 고민이 많은 30대 남자가 목사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항상 예수님을 닮아 가시면 됩니다” 목사의 조언을 듣고 이 남자는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머리털과 수염이 무성한 채 예배당에 나타나 목사를 만났다(중략). 남자는 폐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남자는 예수의 사진을 들고 목사에게 설명을 했다. “목사님이 예수님을 닮아 가라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머리 스타일과, 수염을 기른 겁니다.” 목사가 잔인한 질문을 한다. “그렇다고 하면, 몸에 못을 왜 안 박았나요?” 김현기 저(著) 《뼈있는 유머》(베드로서원, 230쪽)이의용의 《엄마는 커피 우리는 코코아》에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식인종이 옥스퍼드 ..

적당히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적당히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글쓴이/ 봉민근 성도는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다. 천하의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해도 믿음이 동반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믿음의 기초는 오직 신뢰다. 수많은 성도들이 그 믿음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 사자굴에 던져지고 살이 찢기고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가운데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적당히 믿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 하지만 그것을 증거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우주를 질서 있게 운행하시며 다스리시고 나의 믿음 속에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 나 스..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민 2:1-34)

민 2:1-34 묵상입니다. 회막을 중심으로 지파별로 진영이 세워집니다. 세 지파씩 회막을 향하여 사방에 진을 치고, 중앙에는 회막 일을 맡은 레위 지파가 자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모든 지파가 더불어 하나 되어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들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게 하소서!

'광야에서'(민 2:1-34)

민 2:1-34 묵상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민수기 명칭은 '광야에서'입니다. 민수기 내용과 일치되는 명칭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결코 질서와 규율이 없는 야생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다운 신앙과 인격을 단련하는 훈련장입니다. 광야의 여정은 하나님의 통제와 명령으로 가득합니다. 거룩과 성결을 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