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6 14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히12:2). 믿음은 내 이성의 소산물이 아니다. 합리적이거나 경험적인 산물도 아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닌 "믿음의 창시자(시여 자)이시며, 믿음을 지속하게 하시며, 믿음의 완성자(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히3:1) 우리는 예수를 믿자고 하면 기계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말에는 생경하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fix your thoughts on Jesus) NIV consider Jesus(NASB) 예수님께 네 생각을 고정시키고 예수님을 상고(詳考)하라는 말씀이다. Andrew Murrey는 이 구절이 히브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글쓴이/봉민근 과연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믿는 자들에게 중대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는 곧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며 산다는 의미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 누구라도 죄 가운데서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덕성마저도 실종되고 옳고 그름이 뒤섞여서 목소리 큰 자와 힘 있고 능력 있는 자의 뜻이 정의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적당히 죄와 타협하는 것쯤은 아무런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며 사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온 날은 둘째치고 과연 한 순간이라..

파리 재앙(출8:20-32)

파리 재앙(출8:20-32) 이 재앙으로 애굽 전역이 고통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계속 강퍅해졌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해충(파리) 재앙으로 바로의 애굽을 징벌하신다. 그 결과 바로는 일시적이지만 그의 고집을 철회하고 이스라엘의 희생 제사 드리는 일을 허용했다. 한편 주목할 사실은 애굽 전역이 파리 떼의 극성으로 고통 중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이 거하던 고센 땅만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22절)” 이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과 택하지 않은 자들을 분명히 하여 취급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또한 최후의 심판 날 신자와 불신자의 ..

하늘땅사람이야기43 - 치곡致曲의 삶을 향하여

치곡致曲의 삶을 향하여 오늘 만나서 참 반가웠습니다. 홍안의 청년으로 만난 후 거의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군요. 세월의 빠름을 한탄해보아야 아무 소용 없는 일이지만,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돌아보니 회한이 밀려옵니다. 인생의 각 시간에 주어진 역할들을 감당하느라 나름대로 갖은 수고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대개는 시간에 등 떠밀리며 살았지만 시간을 타고 산 때도 없지는 않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등 떠밀리며 살던 시간, 어지러움이 아득하게 밀려올 때면 애써 잊고 살았던 허무함이 마치 안개처럼 나의 존재를 삼켜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허무함은 어둠의 중심으로 우리를 이끄는 냉소주의와는 달랐습니다. 지금 애집하고 있는 일들이 어쩌면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편116:8) 어떤 사람은 성경에서 먼저 지식으로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눈물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 넘어짐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먼저 사망 같은 절망, 깊은 눈물의 통곡,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넘어짐을 경험 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이 먼저이든지, 경험이 먼저이든지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발이 완전히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는 것 같은 인생의 절대 절망에서도 주님이 구원하십니다. 눈물이 나고, 피눈물이 나는 시련에서도 끄집어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다른 길..

마음이 둔하여 질 때(6)(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는 마가복음 기자의 진술은 아마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일어난 신앙적 위기를 내포하는 게 아닐는지요. 2천 년 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도행전만 보면 복음이 일사천리로 전파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교회가 계속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살아 있을 때 재림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예수님의 재림이 자꾸 뒤로 미뤄지고 있었으니,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십시오. 이런 문제로 인해서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을 겁니다. 사..

마음이 둔하여 질 때(5)(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우리는 어떻게 자기염려, 자기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의 경직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는 사실 기독교보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더 세밀합니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거든요. 그들에게 집착을 없애는 것, 즉 멸집(滅執)이 가장 핵심적인 공부입니다. 멸집에 이르는 깨우침을 돈오(頓悟)라고 하는데,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멸도(滅道: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수행)를 행합니다. 등을 바닥에 대지 않고 꼿꼿이 편 채로 24시간 도를 닦는 장좌불와를 수년씩 행하는 고승들도 제법 된다고 합니다. 그런 깨우침이 과연 마음공부로 가능한지에 대해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수행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4)(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여러분들은 어떤 순간에 마음이 둔해지시나요? 제 경우를 말한다면 나 자신에게 집착하는 순간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하지 않는다면 집착할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을 염려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둔해지면서 글쓰기나 설교 중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집니다. 나에 대한 염려가 결국은 나를 파괴하는 지름길인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라고(마 6:33) 말씀하셨을까요? 위의 설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본질적으로 자기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기 방어라고 하..

예수님께 배우는 안식 (2023.1.26, 목)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마가복음 6:31). 예수님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셨을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비교할 때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행동을 더 많이 기록한 것이 특징입니다. “곧”이라는 단어를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매우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마가복음을 대본으로 해서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만든다면 예수님은 몸살을 몹시 앓으실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바쁘게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 마가는 예수님이 안식의 원형이자 동시에 모델이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힘들게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