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8 8

오병이어 (69)(막 6:43,44)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제 저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는 일은 메시아에게서만 가능한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메시아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을 초자연적 기적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적으로 초보에 속한 사람들만 그런데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은 사과의 껍질을 혀로 핥은 것에 불과합니다. 메시아 경험은 전혀 다른 생명과의 접촉이기 때문에 많은 걸 소유하고 많은 걸 먹어야만 만족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신비주의자들이 더 이상 사람으로부터의 관심을 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오병이어만 있어도 모두가 배부를 수 있고, 열두 바구니를 남길 수 있습..

오병이어 (68)(막 6:43,44)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마르크시즘만이 아니라 마르크시즘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주의도 역시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자본주의가 표면적으로는 유물론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인 작동기제는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조금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게 사실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마르크시즘과 자본주의의 차이점은 소위 ‘파이’ 분배냐, 키우기냐에 있습니다. 마르크시즘은 정부가 철저하게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파이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데 방점을 둔다면, 자본주의는 가능한 시장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일단 그것을 키우는 데 방점을 둡니다. 마르크시즘이 현실사회주의에서 실패한 ..

오병이어 (67)(막 6:43,44)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인류 역사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완성되어 인민이 노동의 소외로부터 해방되고 모두가 배부른 시대가 온다는, 따라서 그런 역사 발전을 위해서 계급투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마르크시즘은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틀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설명하거나 마르크스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려는 게 아닙니다. 노동해방과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해가 기독교의 종말론적 역사 이해와 사뭇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 역사에서 서로 충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짚으려는 것뿐입니다. 마르크시즘이나 기독교 사상이 모두 인간의 인간다운 새로..

함께 이기는 멋진 일터 공동체를 위하여! (2023.1.8, 주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하고 결합되어 …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5-16).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 발전이란 으레 남보다 나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나친 경쟁에 내몰려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넘어뜨려야만 나 자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승부와 흑백으로 가르는 대결 구도 속에 노출되어 살아간다고 하여 우리도 그런 사고방식에 물들면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진정한 성장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독서를 하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로마서8:35)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8:34-3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목소리 높여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을 누가 정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죄가 없었기 때문도 아니고, 죄를 짓지 않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죄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모든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

빗속에 버려진...

빗속에 버려진...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한 차도의 끝에 있는 주차장에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앉아 있는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것을 근처 편의점에 왔던 한 여성이 발견합니다. 오랫동안 차가운 빗속에 있던 탓에 개의 몸은 경직되어 있었기에 그녀는 조심히 담요를 덮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개의 모습은 마치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것처럼 사람이 다가가도, 담요를 덮어주어도,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한쪽 발은 심하게 다쳐 있었고 눈에도 염증이 있는 성치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이 개가 주인에게 버려졌음을 직감하고 개를 돕기 위해 한 시간 이상 주차장에 서서 천천히 신뢰를 쌓아갔습..

믿음의 공동체의 순결을 위한 규례.(민 5:1-10)

민 5:1-10 묵상입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길 원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구별되며, 거룩한 예배자로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의 순결을 위한 규례. 공동체의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모든 규례는 그 사랑 안에서 완성됩니다.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의 바른 관계. 이웃에게 지은 죄는 회개와 함께 보상이 이뤄져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그분 앞에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하소서! 바른 예배와 섬김의 삶을 살게 하소서!

광야의 삶은 안일할 수 없습니다.(민 5:1-10)

민 5:1-10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성결을 범하지 않으며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부정한 자를 추방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며 공동체의 정의와 공정한 삶을 위해 죗값을 치룹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사랑과 은혜 그리고 행함과 책임의 긴장이 존재합니다. 광야의 삶은 안일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