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병이어 (68)(막 6:43,44)

새벽지기1 2023. 1. 8. 13:08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마르크시즘만이 아니라 마르크시즘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주의도 역시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자본주의가 표면적으로는 유물론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인 작동기제는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조금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게 사실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마르크시즘과 자본주의의 차이점은 소위 ‘파이’ 분배냐, 키우기냐에 있습니다. 마르크시즘은 정부가 철저하게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파이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데 방점을 둔다면, 자본주의는 가능한 시장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일단 그것을 키우는 데 방점을 둡니다. 마르크시즘이 현실사회주의에서 실패한 이후로 정부의 시장개입을 극도로 제한하는 신자유주의가 오늘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파이를 키우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경제의 덩치를 키워야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는지요. 개인소득 5만 달러를 달성하면 그게 가능할는지요. 우리가 여러모로 지혜를 모아서 준비를 잘하면 북유럽처럼 복지가 보장된 나라를 세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완벽하게 보장된 나라로 성장한다면, 그것도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면서 동시에 그런 정도라도 성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우리가 모두 만족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병이어로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상황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소유하고 업적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삶을 확인하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열두 바구니가 남는 사건은 메시아의 일입니다. 즉 메시아만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