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385

정복한 요단 동편의 땅(수12:1-6) / 리민수목사

정복한 요단 동편의 땅(수12:1-6)  본문은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땅의 경계와 그 땅을 통치하던 아모리인의 두 왕에 관한 것과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사실도 언급되어 있다. 사실 요단 동편 가나안 땅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요단 동편 땅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서편 가나안을 정복한다는 조건하에 그들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던 곳이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행10:42-43)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사도행전10:42-43) 베드로 사도는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고넬료와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설교로서 전도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과 제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도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분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죽음을 죽으심으로 그의 이름을 믿는 자마다 죄사함받는 은..

이사야의 ‘충만’ 경험 (사 6:1-8) / 정용섭목사

삼위일체 주일, 2024년 5월 26일 구약 사 6:1절 이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적으로가 아니라 극단적인 은유의 방식으로 서술되어서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인 기원전 739년 어느 날 환상을 봅니다. 당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분열되어 있을 때입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주(아도나이, Lord)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요한계시록(4:2)에도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의 존엄을 임금이 앉은 보좌로 표현한 겁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주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걸 보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옷을 입었다거나 옷자락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경..

옥중서간(7)- 비종교화(3) / 정용섭목사

'종교적인 인간은 인간 인식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칠 때나(생각을 게을리 해서 그렇게 될 때가 많은데) 인간의 모든 능력이 쓸데없게 될 때 신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신은 원래 기계 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이다. 종교적인 인간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피상적 해결을 위해서든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실패에 부딪쳤을 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그 신을 요청한다. 이런 방식의 종교생활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그 한계를 더욱 넓히고 기계 장치의 신이 소용없게 될 때까지는 유효할 것이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오늘날 인간은 죽음 자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참된 한계라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옥중서간(6)- 비종교화(2) / 정용섭목사

'중요한 질문은 비종교화의 세상에서 교회와 설교와 예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우리는 종교 없이, 다시 말해 형이상학이나 내면성 등등의 시간적으로 제약된 전제 없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세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인지 모른다. 우리는 비종교적인,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우리가 종교적으로 대우 받는 자리를 떠나서 온전히 세상에 속해 있는 자로, 그리고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가리키고 있듯이 부름을 받은 자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는 이미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이 세상의 주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비종교적인 세상에서 예배와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북한 퍼주기 / 정용섭목사

북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지난 5월3-7일에 중국을 방문했소. 그대도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요. 여기에 얽힌 왈가왈부도 많소.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가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남한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방문 건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오. 며칠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서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던 것 같소.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소위 조중동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폄하하기에 여념이 없었소.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오. 김정일의 행동은 모든 게 미운 거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미국의 전 대통령 부시와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북한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렇게 씹어대는 게 오..

인생의 성전을 세울 네 가지 자원(역대상 22:14-15, 18-19)

인생의 성전을 세울 네 가지 자원(역대상 22:14-15, 18-19)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15 또 장인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18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온함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주민을 내 손에 넘기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의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19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

축복을 나누는 삶 (창 26:34-27:46) / 김영봉목사

해설:저자는 에서와 야곱의 결정적인 결별 사건을 기록하기 전에 에서의 결혼에 대해 간단히 언급합니다(26:34-35). 그는 헷 족속 중에서 두 여성을 아내로 취합니다. 그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는 말은 이삭처럼 에서도 친족 중에서 아내를 찾기 원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에서에 대한 이삭의 편애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삭이 시력을 잃을 정도로 나이 들었을 때 에서를 부릅니다(27:1).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정신이 아직 온전할 때 큰 아들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그런 뜻을 전하고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지시합니다(2-4절).  둘의 대화를 리브가가 엿듣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자..

하나님에 대한 갈망

하나님에 대한 갈망        글쓴이/봉민근기적 중에 기적은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다.믿음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잘 믿는 듯하다가도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 그랬나 싶게 흔들리는 것이 믿음이다.택한 백성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다.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은혜다.실상은 내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기라는 기회의 자리로 몰아넣으셔서 하나님을 찾게 만든 것이다.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인간다울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바로 그 시간이다.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실감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다.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고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하나님의 붙드심은 견고하다.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아가던 인생이 하나님께 ..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의 말씀을 전합니다.(행 14:1-18)

행 14:1-18 묵상입니다.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의 말씀을 전합니다.많은 무리가 믿는가 하면 핍박도 많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의 협박을 피해 도망하지만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이적을 행합니다.열방 구원을 위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앉은뱅이 치유의 이적을 목도한 군중들.사도들을 신이라 칭하고 숭배하려 합니다.두 사도는 참되신 하나님만 경배하라 권합니다. 부르심의 은혜에 합당한 오늘이길 원합니다.소망의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소서!견실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더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