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9 12

어떤 묘비의 글

어떤 묘비의 글 서양인들의 묘지는 저 멀리 산에 있는 게 아니라 동네 가운데 혹은 교회당 뜰에 있습니다. 거기 가지런히 줄 지어 서 있는 묘비에는 앞서 간 이에 대한 추모의 글이나 아쉬움의 인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묘지를 돌며 묘비에 쓰여진 글을 읽다가 어떤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묘비의 글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글은 단 세 줄이었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두번째 줄이 이어졌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곳에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이 글을 읽자 그는'이게 그냥 재미로 쓴 것이 아니구나'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가다듬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숫자나 무기의 성능에 달려있지 않다(수11:1-5) / 리민수목사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숫자나 무기의 성능에 달려있지 않다(수11:1-5)  본문은 일어난 가나안 북부 왕들의 동맹에 대한 내용이다. 가나안 북부의 모든 거민들은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과 대적하기 위해 메롬 물가에 진을 쳤다. 한편 이는 이스라엘에게는 최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역시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가나안 북부 거민들도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가나안 북부 동맹은 외형적으로 대단한 위세를 보였지만 실상 그것은 그들이 멸망의 전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나안 북부 전쟁 결과는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숫자나 무기의 성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입증해 주셨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 이금환목사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15:3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2:20)라고 고백한 바울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으로 십자가 함께 달려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땅의 삶을 사는 동안은 계속해서 죄의 영향을 받고, 죄인의 모습이 나타나고, 하나님과 말씀을 거역하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하고, 옛죄의 본성이 우리 속에서 살아있음을 볼 수 있으며, 수시로 우리 안에 죄가 살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도 그랬던..

옥중서간(2)-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 / 정용섭목사

자네는 적어도 한 통의 성탄절 편지를 받게 될 거야. 나는 이미 나의 석방을 믿지 않아. 원래는 내 생각으로 12월17일부로 석방되게 되어 있었어. 그러나 당국은 나를 계속 가둬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 지금 예측으로는 수개월, 아니면 수 주간 여기에 있게 될 거야. 최근 수 주간 동안 없었던 정신적인 고뇌를 겪었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자네도 조만간 견디기 힘든 일에 부딪칠 거야. 나는 지금 이 사실을 바꿔보려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그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을 때 그것을 견디는 것이 훨씬 쉬울 테니까 말이야.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천안함 사태의 실상은? / 정용섭목사

지난 한달 여 동안 대한민국은 온통 천안함 이야기뿐이었소. 46명의 해군 부사관과 병사가 죽었으니 그럴 만도 하오. 그대는 천안함의 사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오? 소설가 복거일 씨가 오늘 날짜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보았소. 이렇게 시작하오.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겐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시인 정호승 씨가 지난 달 28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고 하오. “북한이 기습 공격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하기에는 오늘 조국을 위해 전사한 천안함 장병의 슬픔은 너무 크다.” 복거일 씨야 원래 우익의 대표 인사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놀라운 시적 감수성으로 일반 독자들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뛰어난 영성 시인으로 알려..

옥중서간(1)- 종교적 인간 / 정용섭목사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본회퍼의 을 그대에게 읽어드리겠소.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 1945년 4월9일 바이에른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사형을 당했소이다. 죄명은 히틀러 암살 도모였다오. 목사요 신학자인 사람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히틀러를 제거하는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놀랍소. 그는 오늘로 말하면 행동하는 진보 신학자인데, 한국의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도 그의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게 신기한 일이오. 아마 본회퍼의 영성에 매료된 탓일 거요. 은 본회퍼가 옥에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쓴 편지 묶음이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그의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편집한 책이오. 본회퍼의 신학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씩 설명하겠소. 오늘은 직접 그가 친구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

밀려난 곳으로 찾아가시는 하나님 (창 26:1-25)

해설:이삭과 그 가족은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었는데, 그 땅에 큰 흉년이 듭니다(1절). 아브라함 때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이집트로 내려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때였기에 이삭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로 내려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데라로부터 시작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려면 그가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삭에게 말씀 하시면서 있는 자리에서 흉년을 견디라고 말씀하십니다(3-5절).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머물러 삽니다(6절). 그랄은 나중에 불레셋의 영토가 됩니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에게 아내를 누이로 소개합니다(7절). 당시 사람들은 외지인..

운명을 바꾸고 싶은 열망 (창 25:27-34) / 김영봉목사

해설:성경의 이야기들은 샘플링으로 선택된 것들입니다. 어떤 인물 혹은 어떤 사건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는 이야기를 골라 기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에서와 야곱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독자에게 알려 주기 위해 한 가지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은 대조적인 인간형으로 형성됩니다. 에서는 진취적인 성향의 사람으로서 사냥꾼이 되어 바깥으로 쏘다닌 반면, 야곱은 내향인으로서 가정 일을 돌보았습니다. “차분한 사람이 되어”(27절)에 사용된 히브리어 ‘탐’은 “순전한” 혹은 “선량한”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겉으로 볼 때 야곱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큰 아들이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여 에서를 아꼈고, 리브가는 야곱을 아꼈습니다(28..

바울의 선언 (행 13:1-12) / 신동식목사

안디옥 교회에서 1년 동안 가르침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고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칭호를 받습니다.건강하게 세워진 교회는 이제 선교를 준비합니다. 선교가 무엇인지 아는 교회가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바울과 바나바를 세웁니다. 이 둘은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선교사였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교회 지도자를 양육하고 세웁니다(1). 그리고 다시금 선교사로 보냄을 받습니다.실루기아에서 배타고 구브로에 이르러 살라미에 이르고 바보섬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자자인 마술사를 만납니다.바예수는 지혜로운 총독 서기오 바울을 미혹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방해하였습니다.사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엘루마 즉 마술사를 꾸짓습니다.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 마..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글쓴이/봉민근누군가 이야기했다.인생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것이라고...고난을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을까?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나에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올까?잘 믿어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닥쳐오는 고난의 이유가 무엇일까?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연단이다. 훈련이다.나를 단련하여 순금처럼 만드시기 위해서다.연단받지 않은 사람은 작은 풍랑에도 쓰러진다.고난과 하나님과의 거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나를 아신다는 것은 나를 방치하지 않고 지켜보고 계신다는 말이다.나를 아신다는 것은 고난을 허락하신이가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이다.연단 없는 신앙은 위험하다.성경에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혹독한 연단을 통하여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