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천안함 사태의 실상은?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29. 06:49

    지난 한달 여 동안 대한민국은 온통 천안함 이야기뿐이었소. 46명의 해군 부사관과 병사가 죽었으니 그럴 만도 하오. 그대는 천안함의 사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오? 소설가 복거일 씨가 오늘 날짜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보았소. 이렇게 시작하오.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겐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시인 정호승 씨가 지난 달 28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고 하오. “북한이 기습 공격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하기에는 오늘 조국을 위해 전사한 천안함 장병의 슬픔은 너무 크다.” 복거일 씨야 원래 우익의 대표 인사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놀라운 시적 감수성으로 일반 독자들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뛰어난 영성 시인으로 알려진 정호승 씨의 발언은 내게 의외였소.

 

     그대에게 다시 묻소. 천안함 사태의 실상은 무엇이오? 심증만으로 본다면 북한 소행이 맞소. 북한은 대한민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나라요. 지난 수년 동안 몇 번에 걸쳐서 서해에서 실제로 교전도 있었소. 북한 이외에 대한민국 전함을 공격해서 파괴할 마음을 먹을 나라는 이 세상에 없소. 더 본질적으로 북한은 늘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 왔소. 미국과도 그런 식으로 대결해 왔소. 이 세상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북한 정권을 가장 위험한 집단으로 보고 있소. 틀린 말은 아닐 거요. 북한이 이번 사태의 장본일 거라는 심증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거요.

 

     그런데 말이오. 이런 일은 심증으로 재단될 수 없소. 만에 하나 훗날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뒷감당을 누가 한단 말이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거요? 북한이 틀림없다고 말이오? 부시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에 이라크를 공격했소. 이유는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오. 그걸 제거하기 위해 정의의 사도를 자처한 채 이라크를 공격했소. 마치 인터넷 게임처럼 전세계에 중계된 그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장애자가 되고,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입었소.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았소. 그때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는지 아시오? 미군들의 피해도 막대했소. 그런데도 지금 부시 전 대통령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건 불가사의요.

 

     그대는 이번 일은 그때의 일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소. 알아서 생각하시오. 나는 이번 일이 북한의 소행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소. 청와대와 정부쪽에서도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뉘앙스로 말하지만 단정하지 않고 있소. 사건 발생 초기에는 북한 책임에 무게를 두는 듯한 국방장관의 발언을 청와대가 제지하기까지 했소. 청와대의 입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거요. 지금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를 하고 있다 하니, 기다려 봅시다.

 

    그래도 몇 가지 궁금한 점은 그대에게 털어놓고 싶소. 버블제트가 옳다 그르다, 하는 문제는 내가 말하지 않겠소. 좌초로 인한 침몰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소. 이런 문제는 실증적인 증거가 나와야만 확증되는 거요. 나에게는 다음의 질문이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소. 과연 북한 해군력이 이번 사건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거요? 서해안은 물살도 세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탓에 잠수함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하오. 당시는 남한과 미군이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을 때요. 그런 상황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백령도 남단으로 내려와 온갖 탐색 장비를 갖춘 초계함을 박살내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북으로 도망가려면 어느 정도의 군사적 능력이 필요한 거요? 북한군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소? 나는 그게 믿어지지 않소. 더구나 미군은 북한군의 동향을 손바닥처럼 정찰하고 있소. 수십 킬로미터 상공에서 지상의 물체를 15센티미터 크기까지 구별해낸다고 하오. 이런 정찰은 밤에도 가능하오. 우리의 이해와 직간접으로 가장 가까운 두 나라의 태도를 보시오. 미국은 지금 남한 정부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자신들의 입장을 내지 않았소. 중국은 이 예민한 시기에 김정일을 초청했소. 김정일이 지금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소. 남한 정부는 중국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소.

 

     오해는 마시구려. 북한 정권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오. 그들은 자신들에게 능력만 있다면 천안함 사태만이 아니라 더 엄청난 일도 감행할만한 집단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오. 문제는 그들에게 그럴 능력이 거의 없다는 거요. 지금 그들의 최대 목표는 주민들을 굶주림으로부터 면하게 하는 것이오. 생존이 급급한 이들이오. 김정일이 얼만 전에 그걸 공개적으로 밝힌 적도 있소. 아직 확실한 물증도 없고, 오히려 다른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지성인들이 이번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는 건, 그리고 그런 이들이 목소리가 먹히고 있다는 건 한국사회가 아직 정신적 야만의 시대를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요.

 

     끝으로, 만약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면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군 책임자들은 당장 옷을 벗어야 하는 거 아니오? 그런데 그들은 남 탓만 하고 있소. 잘 자시오. (2010년 5월4일, 화요일, 성큼 다가온 여름의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