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4 13

불길한 징조(삼상15:1-9)

불길한 징조(삼상15:1-9) 본문은 아말렉과의 전쟁와 관련, 사울이 또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불순종하는 장면이다.  즉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쳐서 그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육축 가운데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 없는 것만 진멸했던 것이다.  한편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것은 단순 떠돌이 민족에 대한 적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항거였다. 마땅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말렉을 진멸했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사울은 이번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 받게 된다.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사62:9) / 이금환목사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62:8-9) 유다와 예루살렘은 앗수르와 바벨론과 같은 강대한 나라들에 의해 침략 당하여 수고하여 얻은 곡식과 포도주를 다 약탈 당하여 자신들이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침략시대, 약육강식의 시대, 힘으로 하던 시대나 그렇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사람이 노력한 대로, 수고한 대로, 시간과 재능을 투자한 대로 결과를 얻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자신이 뿌린 것을, 자신이 추수하고 거두어, 자신이 먹을 수 있다면 그것..

심리적 위로를 넘어 말씀의 깊이로 / 정병선목사

사람들은 종교를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 특정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진실이 무엇이냐보다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생살이에서 마음을 깊이 내려놓을 만한 의지처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종교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다독여주고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다. 그것이 종교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종교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런 차원의 종교적 기능을 넘어서는 곳에 위치한다. 기독교는 심리적 위로나 마음의 안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재의 존재와 삶을 위로하거나 안정시키는 것을 본질적으로 거부..

주현절후 다섯째 주일 -예수의 축귀 능력-, 2월5일 / 정용섭목사

주님,질병과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을예수님께서 고치셨다는 복음서 기자들의 증언을 듣습니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막 1:39) 그렇습니다.지금 우리의 삶이 여러 가지 종류의 병에 들려있고,우리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악한 세력의 지배를 받지만죄와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궁극적인 해방의 순간이 올 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을 안고 사는 우리가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깨닫도록성령으로 저희의 생각을 붙들어주십시오.거짓 생명이 무엇인지,생명을 파괴하는 악한 영이 무엇인지,소유와 경쟁과 자기 업적을 통해서만 삶을 확인하도록 부추기는오늘의 악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정확하게 분별하도록 순전한 마음을..

사죄기도(1), 2월4일 / 정용섭목사

주님,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나님의 사랑을 분에 넘칠 정도로 받았으면서도그런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복음서에 묘사된 바리새인처럼자신의 종교적, 학문적, 사회적 업적에 마음을 빼앗긴 채자기를 기준으로 남을 판단할 때가 많았습니다.예수님이 회칠한 무덤 같다고 책망하신 서기관처럼말로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지실제로 본이 되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못함으로써,그리고 행동하지 말아야 할 때 행동함으로써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서 나온다고 하셨는데,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도좋은 나무인 것처럼 생각했으니얼마나 미련하고 뻔뻔한 사람입니까. 주님,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오니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저를 용서해주십시..

감사기도, 2월3일, 금요일 / 정용섭목사

주님,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오늘 하루도 숨을 쉬게 하시고,먹을거리를 허락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경우에 따라서 숨을 못 쉴 수도 있고,먹을거리를 삼키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그 모든 생명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저의 생각과 손가락을 활발히 움직이게 하시어설교 준비까지 마치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 똑같은 삶의 반복 가운데서도삶의 기쁨을 놓치지 않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많은 것을 채우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참된 만족을 알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고 인자하시다는 사실을 믿기에나에게 일어날 미래의 모든 일까지 미리 감사드립니다.감사..

무에 대해, 2월2일 / 정용섭목사

주님,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살고 있는 저는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무(無)를 경험합니다.이 세상은 분명히 앞에 있는데(有)제 눈에는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흔하니어찌하면 좋겠습니까.제가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곧 사라질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우뚝 서 있는 저 팔공산과 유유히 흐르는 저 낙동강힘차게 빛나는 저 태양도어느 순간에 산산이 흩어진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제가 어떻게 세상을 확실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하나님이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으니이 세상이 다시 무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옳습니다.단순히 무로 돌아간다기보다는우리 인식에 갇혀 있는 유와 무를 뛰어넘어하나님의 자유로운 창조 완성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옳습니다.창조가 완성되기 전까지 세상에 대한 모든 인식은피조물의 숙명..

제가 누군지, 2월1일 / 정용섭목사

주님,알고 싶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아오늘 또 질문을 드립니다.질문할 나이가 지났는데도,웬만하면 그냥 지나칠 나이가 되었는데도자꾸 질문한다는 것은아직 철이 덜 났다는 뜻인 줄로 압니다.그래도 주님은 저를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에무슨 질문을 드려도 다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저는 누군가요?긴 지구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에서지금 바로 이 시점에삼천리반도의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살다가대구 외곽 농촌에서 30년 살고 있는저는 누구인가요?머지않아,길면 앞으로 30년,짧으면 20년,별일을 당하면 10년그렇게 이 땅에서 조금 더 살다가여차하면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부가 한 순간에 사라지듯이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저는 누구인가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신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한국 사회의 현실과 한국교회 / 신동식목사

한국 사회의 현실과 한국교회오늘의 한국 사회는 큰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여기에 남북의 관계는 참으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군사력을 파견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휴전선에 남북을 잇는 도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에서 보여주는 끔찍한 모습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상황 가운데 오늘날 한국사회는 또 다른 갈등이 있습니다. 현대주의 핵심인 동성애에 대한 갈등입니다. 이번에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갈등의 한 복판에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 되었습니다. 이에 상당..

누구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까?(사도행전 7:57-60) / 원용일목사

누구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까?(사도행전 7:57-60)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우리는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삽니다. 특히 일터에서 ‘영향력’은 리더십의 본질이고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미덕입니다. 초기 기독교의 기초를 세우는 중요한 일을 한 바울에게도 여러 사람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중 스데반은 바울에게 영적 영향을 준 대표적인 멘토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생전에 바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