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1 14

새벽에 찾아온 친구

새벽에 찾아온 친구지병으로 인해 삶을 마무리하게 된한 남자가 있었습니다.남자에게는 친구들은 많았지만,아내와 자식도 없었고 친인척도 전혀 없었습니다.자신의 사후 처리에 관해 생각하던 남자는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변호사에게 맡기고사망했습니다.변호사는 남자의 친구들에게 부고를 보내고새벽 일찍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습니다.수십 명의 친구들이 남자의 부고를 받았지만장례식에 참석한 친구는 4명뿐이었습니다.다른 친구들은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이른 새벽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귀찮았던 것입니다.장례식이 끝나고 변호사는 4명의 친구 앞에서남자가 남긴 유언장을 꺼내 읽었습니다.'나의 전 재산은 장례식에 참석한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힘들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내 말을 편견 없이 끝까지..

요단강 도하에 대한 재언급(수4:10-18)

요단강 도하에 대한 재언급(수4:10-18)  본문은 이미 언급한 요단강 도하 사건에 대한 재 언급이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 강을 밟는 순간 강물이 멈추었으나, 요단을 건넌 후 육지를 밟는 순간 다시 강물이 흘렀다는 사실이다(18절).  이는 곧 언약궤로 상징되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어떠한 장애물도 이스라엘이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음을 증거해 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 우리이 앞길을 인도해 주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자원하는 마음(출35: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출애굽기35:29)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고안대로 성막을 짓기 위하여 예물과 재능을 드렸습니다. 예물이든, 재능이든 그 드림과 헌신의 바탕은 하나님의 감동주심과 자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없이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하는 드림과 헌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도 않고, 성도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교회 안에서의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감동받은 그리스도인이 자원함으로 시간도, 재능도, 물질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도 없고, 자원함이 없는 교회는 피곤하고, 지칩니다..

문명의 옷을 입은 행복의 가면 / 정병선목사

행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의 삶을 농락하는 것들은 또 있다. 문명의 옷을 입은 가면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단순 반복을 몹시 싫어하고 경멸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결 방법을 찾으며 단순 반복이 아닌 새로움을 추구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찬란한 문명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그런 천성-호기심과 상상력이 일구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역경과 실패, 존재의 위기를 몰고 온 역병과 전쟁과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명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것 또한 단순 반복을 싫어하는 인간의 천성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안에는 발전은 유익하다는 믿음,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 문명은 야만보다 인간적이라는 믿음, 과학기술은 결국 유토피아를 가능케 할 것이..

성령님을 따르는가, 다루려는가 (행8:4~25) / 이재훈목사

바람이 불길을 더 크게 만드는 법입니다. 교회에 대한 핍박의 바람은 교회를 무너뜨리기보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성령님이 일으키시는 대반전의 역사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시작된 교회에 대한 핍박이 더욱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씨앗이 흩뿌리게 되듯핍박의 바람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그들이 외로움과 절망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흩어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하셨고, 성령이 임하신 결과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질 거라고 하셨지만, 당시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

마가복음 후기(18)(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16:19) 승천에 이어서 ‘하나님 우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신자들은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에게도 우편과 왼편이 있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이런 표현들은 모두 종교적 메타포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에게 상대적 개념에 불과한 우편과 좌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이 세상의 위치 개념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 기자는 왜 굳이 하나님 우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까요? 구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그 대답입니다. 시편 110: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

마가복음 후기(17)(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16:19)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궁극적인 생명 사건입니다.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들도 그런 부활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죽음 너머의 생명을 주는 존재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궁극적 생명이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근원적인 믿음은 구약성서가 말하는 승천 및 하나님 우편 표상과 연결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 2:11) 이 엘리야는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에 앞서 올 자로 묘사됩니다. ..

마가복음 후기(16)(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16:19) 이제 우리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매일 묵상의 방식으로 따라오다 보니 벌써 이런 순간이 왔군요.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이 순식간에 느닷없이 오겠지요. 막 16:19절과 20절은 마가복음의 결론이라 말해도 좋습니다. 19절은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것이고, 20절은 제자들의 복음 전파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마가복음만이 아니라 신약성서 전체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19절을 봅시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주 예수’라는 표현은 복음서 중에서 이 대목에만 나온다고 합니다. 그 표현은 원래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잘 알려진 것이라고 하는군요. 예수님을 ‘주’로 경험하..

떠날 수 있는 용기 (창11:27-32)

해설:저자는 셈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전역사로부터 족장의 역사로 넘어갑니다. 그는 27절에서 카메라의 초점을 데라 가족에게 맞춥니다. 데라의 이름은 이미 25절과 26절에서 언급되었습니다. 데라는 세 아들(아브람, 나홀, 하란)을 둡니다(27절). 하란은 데라 가족이 가나안 땅으로 가던 길에 멈추어 정착한 지역 이름이기도 합니다(31절). 데라는 바빌로니아 지방의 우르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하란은 롯과 밀가와 이스가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28-29절).  우르는 당시 중동 지방에서 가장 번화했던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이복 자매인 사래와 결혼을 했고, 나홀은 조카 밀가와 결혼합니다. 당시에는 친족혼 혹은 근친혼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사래가 임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단히 ..

즐거운 일터를 만들기 위하여!(룻기 2:3-4)

즐거운 일터를 만들기 위하여!(룻기 2:3-4)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베들레헴 들녘에서 보리 추수를 하던 보아스의 밭이 즐거운 일터의 모델입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이주해 왔는데 홀시어머니를 부양하려고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때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밭 주인 보아스가 자기의 밭에 들렀습니다. 보아스가 밭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