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떠날 수 있는 용기 (창11:27-32)

새벽지기1 2024. 5. 1. 04:57

해설:

저자는 셈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전역사로부터 족장의 역사로 넘어갑니다. 그는 27절에서 카메라의 초점을 데라 가족에게 맞춥니다. 데라의 이름은 이미 25절과 26절에서 언급되었습니다.

 

데라는 세 아들(아브람, 나홀, 하란)을 둡니다(27절). 하란은 데라 가족이 가나안 땅으로 가던 길에 멈추어 정착한 지역 이름이기도 합니다(31절). 데라는 바빌로니아 지방의 우르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하란은 롯과 밀가와 이스가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28-29절). 

 

우르는 당시 중동 지방에서 가장 번화했던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이복 자매인 사래와 결혼을 했고, 나홀은 조카 밀가와 결혼합니다. 당시에는 친족혼 혹은 근친혼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사래가 임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단히 언급합니다(30절). 

 

그러던 중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이민 가기로 마음 먹습니다(31절). 당대 최고의 도시인 우르에 비하면 가나안은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무엇이 데라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게 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온 가족을 데리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하란에 잠시 머뭅니다. 무엇 때문에 그곳에서 멈추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잠시 머물다가 가나안으로 가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납니다(32절). 

 

묵상:

우리는 보통 아브람에게서 선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저자는 선민의 역사가 데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아니, 실은 선민의 역사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저자가 5장과 10장과 11장의 족보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거듭 망쳐놓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짝사랑이 결국 아브람을 통해 제사장의 백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족보들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아브람에게 이어지는 구원사의 흐름을 보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신 것은 아브람이 아니라 데라였습니다. 데라가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보통 이민을 갈 경우, 지금 살던 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데라는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 가장 척박한 곳으로 향합니다. 그러한 결정은 인간적인 계산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부름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왜 데라를 택하셨을까?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저자는 데라가 당한 상실의 상처들을 언급함으로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아들 하란을 가슴에 묻어야 했고, 며느리 사래는 불임의 아픔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고향을 떠나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딛고 난 사람만이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데라는 온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해 가다가 하란에서 멈춥니다. 하란은 우르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 살만한 도시였습니다. 데라는 잠시 머물 계획으로 그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부름을 완수하지 못하고 하란에서 생을 마칩니다. 아버지가 다하지 못한 그 부름을 그의 아들 아브람이 이어 나갑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남긴 정신적 유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