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포기를 모르는 하나님의 사랑 (창11:10-26)

새벽지기1 2024. 4. 30. 06:04

해설:

저자는 바벨탑의 이야기에 후에 셈의 족보를 다시 기록합니다. 셈의 족보는 10장 21-31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다시 기록합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록한 것은 저자에게 그만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장의 족보와 11장의 족보는 에벨에게서 달라집니다. 에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10장의 족보는 에벨에게서 욕단의 가계를 따라가는 반면(25절 이하), 11장의 족보는 에벨에게서 벨렉의 가계를 따라갑니다(16절 이하). 저자는 12장에서부터 시작될 족장의 역사를 전역사와 연결시키기 위해 셈의 족보를 다시 쓴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브람은 셈 가문의 벨렉 지파의 후손인 셈입니다.

 

학자들은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히브리’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봅니다. 저자가 10장의 족보에서 에벨에 대해 두 번(21절, 25절) 언급한 것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에벨이 그만큼 중요한 조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0장의 족보에는 사람들의 수명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11장의 족보에는 각각의 수명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가인의 족보(4:17-24)에도 수명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반면 5장에 나오는 셋의 족보에는 각각의 수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족보에 수명을 기록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장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5장의 족보와 비교할 때 11장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의 수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인류의 수명을 백이십 년으로 제한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6:3)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창세기의 전역사(1-11장)에 기록된 이야기들에는 거듭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하시면, 인간은 죄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칩니다. 그 죄에 대해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인간을 위해 또 다른 일을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까닭에 에덴에서 쫓겨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벌로 에덴의 동쪽에서 유랑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하나님은 그가 사람들에게 살해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인류의 집단적인 죄로 인해 홍수로 심판하시지만, 노아의 자손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게 하십니다. 시날 평야에서 일어난 인류의 집단적인 반역에 대해 하나님은 언어를 분화시켜서 흩어지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벨의 자손 아브람을 택하여 선민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이 패턴은 거듭 반복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가 한도에 이를 때마다 징계 하십니다. 하지만 징계는 하나님의 마지막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징계의 목적은 관계를 끝내기 위함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징계 후에 또 다시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 패턴이 수 없이 반복된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정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장구한 구원의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함 없는 사랑을 보게 합니다. 아무 것도 부족함 없는 하나님께서 왜 나 같은 존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 밖에 모르시는 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힘 입어 오늘도 호흡하고 있는 것이고, 내 호흡이 끝나도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