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무지개와 십자가 (창세기 9장)

새벽지기1 2024. 4. 26. 06:56

해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아담에게 해 주셨던 말로써 축복을 해 주십니다(1-2절). 또한 하나님은 채소만이 아니라 육식까지도 허락하십니다(3절). 다만, 고기를 먹을 때는 피까지 먹지는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4절).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습니다. 피조물은 누구도 다른 생명의 소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5절). 누구라도 다른 생명을 해치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생명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더 없이 큰 죄입니다(6-7절).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자손에게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 언약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맡긴 모든 생명과 맺는 언약이기도 합니다(8-10절). 그것은 다시는 물로써 지상의 모든 생명을 멸절시키는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약입니다(11절). 하나님은 무지개를 볼 때마다 그 언약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12-17절).

 

이제 지상에 남은 것은 노아와 그 아내 그리고 세 아들 부부뿐입니다. 그들을 통해 자손이 퍼져서 오늘날의 인류가 되었습니다(19절). 홍수 후에 노아는 밭을 가는 농부가 되어 포도나무를 가꿉니다(20절). 어느 날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듭니다(21절). 그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은 함이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그대로 두고 형들에게 알립니다(22절). 앞뒤 맥락을 보면 함이 아버지의 추태를 비웃었던 것 같습니다.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에게 가서 벗은 몸을 가려 줍니다(23절). 

 

노아가 술에서 깨어난 후에 이 사실을 알고 가나안에게 저주를 선언합니다(25절). 10장 6절에 보면 가나안은 함의 아들 중 하나입니다. 저자가 함 대신에 가나안을 저주한 것으로 적은 것은 당시 가나안 족속의 불행의 원인이 그 조상의 죄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듯합니다. 이어서 노아는 셈과 야벳을 축복합니다(26-27절). 홍수 후에 노아는 삼백 오십 년을 더 살다가 죽습니다(28-29절). 

 

과거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때 흑인을 멸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이 본문을 오용했습니다. 함은 지금의 아프리카 사람들의 조상으로서 노아의 저주를 받은 민족이라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흑인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당연하고 셈의 후손(동양인)과 야벳의 후손(유럽인)의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해석이 오늘날까지 바른 해석인 것처럼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서학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인류학적으로도 어불성설입니다. 조상의 죄가 극심하다 해도 그 영향은 삼사 대를 넘지 못합니다. 반면 조상의 선한 삶은 수천 대에 이르게 하십니다(출 20:6-7절).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지금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묵상:

어릴 적 한국에서 장마를 겪어 보아 압니다. 날이면 날마다 끝도 없이 비가 내릴 때면 얼마나 견디기 힘들던지요! 그러다가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내리 쪼이고 무지개가 피어나면 한 순간에 마음이 환해지고 살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분의 은총이 그렇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낯을 숨기신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 그 기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길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의 환한 얼굴이 햇살처럼 내리 쪼이고 그분의 은총이 무지개처럼 피어 납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한 없는 감격과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낯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그분의 은총을 더 선명히 드러내 보여 줍니다. 무지개는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시 30:5)는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구약에 무지개가 있다면, 신약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다”라는 징표인 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징표입니다. 무지개는 인류에 대한 심판 후에 주어진 언약의 징표인 반면,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하나님 자신이 담당하시고 맺어 주신 언약의 징표입니다. 무지개는 비가 개일 때 가끔 나타나는 것이지만, 십자가는 우리 앞에 항상 서 있습니다. 무지개는 손이 닿을 수 없이 먼 곳에 있지만, 십자가는 가까이 있습니다. 무지개는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십자가는 우리를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희망은 오직 십자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