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축복을 나누는 삶 (창 26:34-27:46)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5. 31. 05:43

해설:

저자는 에서와 야곱의 결정적인 결별 사건을 기록하기 전에 에서의 결혼에 대해 간단히 언급합니다(26:34-35). 그는 헷 족속 중에서 두 여성을 아내로 취합니다. 그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는 말은 이삭처럼 에서도 친족 중에서 아내를 찾기 원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에서에 대한 이삭의 편애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삭이 시력을 잃을 정도로 나이 들었을 때 에서를 부릅니다(27:1).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정신이 아직 온전할 때 큰 아들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그런 뜻을 전하고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지시합니다(2-4절). 

 

둘의 대화를 리브가가 엿듣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자초지종을 말하고 어린 염소를 가져 오면 자신이 요리를 해줄 터이니 그 음식을 아버지께 대접하고 축복을 받으라고 말합니다(5-10절). 야곱은 아버지를 속일 수가 없다고 주저하지만(11-12절), 어머니는 자신만 믿고 따르라고 말합니다(13절). 야곱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고, 리브가는 그 고기로 요리를 합니다(14절).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히고 여러가지로 변장을 시킵니다(15-16절). 그런 다음 준비한 요리를 들고 아버지에게 들여 보냅니다(17절). 

 

야곱이 음식을 들고 아버지에게 들어가 자신이 에서라고 속이자(18-19절), 이삭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냥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20절)라고 답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까지 끌어 대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삭은 다시금 에서인지를 확인한 다음(21-24절), 준비해 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마음 다해 장자로서의 축복을 빌어 줍니다(25-29절).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고 막 물러나올 때,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옵니다(30절). 그는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서야 야곱이 자신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삭도 야곱에게 속은 사실을 알고 부들부들 떨 정도로 충격을 받습니다(31-33절). 에서가 남은 복이라도 자신을 위해 빌어달라고 청하자 이삭은 이미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빌어 주었다고 답합니다(34-37절). 에서가 큰 소리로 울면서 간청하자(38절) 이삭은 입을 열어 축복의 말을 하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축복의 말이 아니라 저주의 말이었습니다(39-40절). 

 

이 일로 인해 에서는 야곱에게 원한을 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곧 야곱의 제삿날이라고 말하면서 별렀습니다(41절). 낌새를 알아차린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란에 있는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지시합니다(42-45절). 그런 다음 리브가는 이삭에게 에서의 아내들에 대한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어 친족 중에서 아내감을 찾게 하자고 제안합니다(46절). 

 

묵상:

이 이야기에서도 이삭은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리브가는 결혼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혜롭고 민첩하고 결단성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야곱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을 더 꼬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술수와 속임수와 폭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동일하게 사랑하면서 신실하고 진실하게 하루 하루 살았더라면 하나님의 계획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술수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려고 함으로 인해 가족을 원수로 만들고 두 아들을 고생시키고 하나님의 계획이 지연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축복을 빌어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녀를 위해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은 것은 믿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바램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 리브가와 야곱이 벌이는 사기극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축복기도를 가로채야 했을까 싶습니다. 또한 속아서 야곱에게 축복 기도를 해 준 다음에 에서가 소리치며 울면서 자신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할 때 이삭이 “이미 축복을 다 해 주었기에 남은 것이 없다”고 답하는 장면에서는 더 의아스럽습니다. 우리 같으면 야곱에게 준 축복기도를 무효라고 선언하고 다시 기도해 주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드린 축복기도에 대한 경외감과 무거운 신뢰를 봅니다. 축복기도가 단순한 예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체였습니다. 그렇기에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일단 발설하고 나면 회수할 수도 없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축복기도를 두고 벌이는 가족들의 싸움이 유치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에 대한 묵직한 믿음을 여기서 봅니다. 이삭은 자신의 기도가 이미 하나님께 들려졌다고 믿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너무 세속화되고 인본주의화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마음 다해 축복기도를 해 주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일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들려지는 순간 그것은 실체가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다른 사람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고 축복의 기도를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축복집착증’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