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밀려난 곳으로 찾아가시는 하나님 (창 26:1-25)

새벽지기1 2024. 5. 29. 06:33

해설:

이삭과 그 가족은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었는데, 그 땅에 큰 흉년이 듭니다(1절). 아브라함 때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이집트로 내려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때였기에 이삭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로 내려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데라로부터 시작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려면 그가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삭에게 말씀 하시면서 있는 자리에서 흉년을 견디라고 말씀하십니다(3-5절).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머물러 삽니다(6절). 그랄은 나중에 불레셋의 영토가 됩니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에게 아내를 누이로 소개합니다(7절). 당시 사람들은 외지인이 들어오면 소돔 사람들처럼 남성을 성적으로 유린하거나 아내에게 성폭행을 함으로 길들이곤 했습니다. 아내로 인해 자신이 살해 당할 수도 있다는 이삭의 걱정이 당시의 현실이었다는 뜻입니다. 

 

다행이 그 작전이 통하여 이삭과 리브가는 별 탈 없이 그곳에 정착합니다. 경계심이 풀린 이삭은 어느 날 아내와 밀회를 나누는데, 그 장면을 아비멜렉에게 들키게 됩니다(8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로 속이는 바람에 그를 후처로 들이려 하다가 하나님께 큰 책망을 들었습니다(20장). 아비멜렉은 이삭을 심하게 꾸중한 후(9-10절) 아무도 리브가를 건드리지 말라고 그랄 백성에게 엄명을 내립니다(11절).  

 

그곳에서 이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됩니다(12-13절). 처음에는 너그럽게 대하던 불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재산과 가솔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경계하기 시작합니다(14절). 그것은 다수자들이 소수자인 이주민에게 가지는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약자일 때는 동정해 주지만 강해지면 경계하고 배척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워 버리고,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구합니다(15-16절). 우물은 목축업을 하는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필품이었습니다. 우물을 막아 버린다는 말은 오늘로 하면 가게 문을 닫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과 그랄 주민의 부당한 처우에 반항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 그랄 평원에 자리를 잡습니다(17절). 그는 아버지가 팠으나 그랄 사람들이 메워 놓은 우물들을 다시 팝니다(18절). 이삭의 종들은 또 다른 샘줄기를 발견하여 우물을 팠는데, 그랄 사람들에게 빼앗깁니다(19-20절). 이삭의 종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파자, 이번에도 그 지방 사람들이 또 빼앗습니다(21절). 이삭의 종들은 다른 곳에서 또 우물을 팠는데, 이번에는 빼앗지 않았습니다(22절). 팔레스틴 지방에서 물줄기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이삭의 종들은 우물을 팔 때마다 물줄기를 찾아냈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넓은 곳)이라고 짓습니다(22절).

 

얼마 후에 이삭은 브엘세바로 이사합니다(23절). 그곳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축복의 약속을 확인해 주십니다(24절).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께 예배 드린 후에 정착을 합니다(25절).

 

묵상:  

나이 든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삭은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약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 했으니, 키에르케고어가 추측한 대로, 그는 평생 기를 펴지 못하고 지냈을지 모릅니다. 이삭은 세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 중 한 사람이지만, 창세기에 그에 대한 기록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이삭이 홀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26장이 유일합니다. 나머지 이야기에서는 항상 조연으로 혹은 수동적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한 그의 성품이 그랄 지방에서 있었던 사건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살해 위협을 염려하여 리브가를 누이로 소개한 것은 당시의 야만적 문화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두번이나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비멜렉의 보호 아래에서 그랄 지방에서 재산을 불려 갑니다. 그로 인해 그랄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납니다. 그곳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곳입니다. 그곳에서도 그랄 사람들은 이삭을 괴롭힙니다. 광야 지역에서 물줄기를 찾아 내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어렵게 얻은 우물을 두번 씩이나 빼앗깁니다. 이삭의 종들이 또 다시 물줄기를 찾아내자 그랄 사람들은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이삭이 이렇게 밀려나고 빼앗긴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보다는 그의 유약한 성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싸워서 쟁취하는 강인한 사람이었지만, 이삭은 무력하게 당하고 빼앗기고 밀려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밀려 나는 곳으로 찾아 가셔서 그를 돌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과 악다구니로 싸우지 않고 무력하게, 초라하게 물러서는 이삭을 편들어 주십니다. 이삭은 거듭 되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경험하면서 그분이 진실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랄에서 지내면서 겪은 고난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동행하심을 체험하게 했고, 그 고난을 거친 후에 그의 예배는 살아 났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응징하고 보복하기를 포기하고 양보하고 손해 보는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삭에게 함께 하신 분이 지금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겨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을 믿고 누구에게나 선대하고 필요하다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