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8 12

예수외에 그 어떤 구원의 방도는 없다(수20:7-9) / 리민수목사

예수외에 그 어떤 구원의 방도는 없다(수20:7-9)  본문은 이미 모세에 의해 요단 동편에서 선정된 3개의 성읍 외에, 요단 서편의 3개를 포함하여 모두 6개의 도피성을 설정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도피성은 이스라엘이 차지한 가나안 땅 전역에 걸쳐 골고루 선정되었다. 또한 도피성으로 구별된 성읍은 대부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산 위에 위치하였고 성읍으로 가는 길도 넓고 평탄하게 잘 닦여 있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인종과 신분과 지위 여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동일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심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구원의 방도는 없다(행4:12).

주기도(25) / 정용섭목사

-당신의 나라(5)-      지난 이틀에 걸쳐 바르트의 글을 읽은 그대, 수고가 많으셨소. 우리가 애를 쓰면서까지 이런 신학자들의 글을 읽는 이유는 이런 글들이 신앙의 상투성에서 벗어나는데 약효가 가장 특별하기 때문이오. 일반적인 교회생활이나 개인의 경건생활은 바둑으로 치자면 동네바둑과 비슷하오. 바둑을 아무리 재미있게 둔다 하더라도 실력이 느는 건 아니오. 는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소. 신학자들의 글은 일류 프로기사의 바둑과 같소. 여기 판넨베르크 에서 몇 대목을 발췌 인용하겠소. 그 내용은 앞에서 매일묵상을 쓰기 시작할 때 인용한 것들 중의 일부요. 괄호 안의 숫자는 그 책의 쪽수요.      신약성서와 예수의 메시지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수립될 것이다. 이..

주기도(24) / 정용섭목사

-당신의 나라(4)-      앞의 글을 읽어보니 어떻소? 바르트의 글을 감칠맛 나게 읽을 수 있다면 그대는 신학적으로 이미 어른이 된 거요. 신학의 거장인 바르트의 영성 안으로 들어간 것이니 말이오. 거꾸로 무슨 말인지 종잡기 힘들었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시오.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은 이들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오. 어떤 이들은 본인의 신학적 사유가 모자란 탓에 이해하지 못하면서 바르트의 글을 별로 쓸모없는 것으로 매도하기도 한다오. 어리석은 소치요. 자, 이제 바르트의 글 두 번째 단락을 읽도록 하시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더 많은 이유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거기엔 다른 반대가 끼어들 수 없다..

주기도(23) / 정용섭목사

-당신의 나라(3)-      아래의 글도 특강 발제문에 들어 있는 건데, 바르트의 “주기도”(Das Vaterunser) 62-71 쪽의 내용을 발췌 번역한 것이오. 바르트의 글은 그의 독특한 신학적 착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소. 그래도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할 테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시오. 두 번에 나누어 싣겠소.      하나님 나라는 신약성서 안에서 볼 때 이 세상의 삶이며 목적이다. 그 삶과 목적이 바로 창조자의 의도와 부합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죄로 인해 발생하는 위협에 대항하는 방어물이며, 이 세상에 잠복해 있는 죽음의 위험과 파괴성에 대항하는 방어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위협들은 피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죄를 극복하는 최종적 승리이다. 또한 하..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 (창 47:1-12) / 김영봉목사

해설:아버지와 해후한 후에 요셉은 형들 중 다섯 형제를 데리고 바로를 찾아가 인사 시킵니다(1-2절). 요셉의 예상대로 바로는 그들에게 생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형제들은 조상 때부터 유목민으로 살았다고 답하면서 고센 땅에서 가축을 기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3절). “여기에 잠시 머무르려고 왔습니다”(4절)라는 표현에서 보듯, 그들은 이집트에 영구 정착할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는 그 청을 허락하면서 자신의 가축까지 길러 달라고 부탁합니다(5-6절).  그런 다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에게 소개합니다(7절). 야곱은 바로를 만나 축복합니다(8절). “축복하다”는 일상적인 인사를 의미하기도 하고 제의적인 축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를 축복했을 것입..

실패했어도 목표를 다시 세웁시다!(역대상 15:25-28)

실패했어도 목표를 다시 세웁시다!(역대상 15:25-28)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상반기를 보내면서 올해의 목표를 절반쯤 이루었습니까? 그러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좀 엉뚱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목표를 세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행27:1-20) / 신동식목사

드디어 바울은 로마로 가게됩니다. 로마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은 쉽지않습니다.로마는 시대의 중심이었습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방의 사도인 바울에게 로마는 가장 적절한 사역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로마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지만 허락받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예루살렘이 자신의 마지막 종착지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로마였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로마로 보내십니다. 로마로 가는 길은 허락하였습니다. 바울은 백부장의 호의를 입고 동행하지만 쉬운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중에 죽음을 당할수 있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그러나 로마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담대하였습니다. ..

교회 밖에서의 성도가 돼라

교회 밖에서의 성도가 돼라        글쓴이/봉민근천국은 돈 가지고도 가거나 살 수가 없다.내가 평생 쌓아놓은 지식이나 능력으로도 뚫을 수가 없다.내 생명을 불살라 내어 준다고 해도 천국문은 열리지 않는다.오직 믿음이 열쇠다.오직 예수님이 답이다.나는 예수 믿는 자랑스러운 크리스천인가?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기쁘게 살았는가?아니면 무엇 때문에 가슴 아파 눈물 흘렸는가?정말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것이 이 한 몸 추스르는 것 때문이었는가?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자부하지만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애태우며 가슴앓이를 했는가?교회 건축 때문에 눈물은 흘려도 죽어가는 저 영혼들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주의 병에 담을 내 눈물이 있는가?교회 안에서는 남에게 뒤질세라 열심을 다했지만 세상에 죽..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19세기, 중국 청나라에서 '태평천국의 난'이벌어졌을 때 일어난 이야기라고 합니다.황제는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반란군의 세력에황제가 보낸 토벌군은 계속 싸웠지만계속 지고 말았습니다.'연전연패(連戰連敗)'라는 글이 포함된보고서가 올라올 때마다 황제는 토벌군의 장수에게큰 벌을 내렸습니다.그리고 유능한 관료인 '증국번'이토벌군 장수로 임명되었지만, 갈수록 강해지는반란군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그런데 그는 황제에게 보내는 보고서에연전연패가 아니라 '연패연전(連敗連戰)'이라고순서를 바꿔 보고했습니다.즉 자신은 비록 계속 패배하고 있지만,패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싸우고있다는 뜻이었습니다.이에 황제는 '증국번'에게 벌을 내리기보다오히려 ..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믿고 의지하는 바울.(행 27:21-44)

행 27:21-44 묵상입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바울.‘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내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믿고 의지하는 바울.로마 선교의 비전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함께 항해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힘을 합하여 무사히 육지에 상륙한 일행들.바울은 하나님께 축사하고 함께 떡을 나눕니다.성령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나의 선한 목자 되십니다.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성령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