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5 11

하나님 주권과 공평한 원리(수14:1-5) / 리민수목사

하나님 주권과 공평한 원리(수14:1-5)  본문은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땅 분배 책임자와 땅 분배방법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할 것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하면서 자신의 자의적인 생각이나 독단으로 하지 않고 제비를 뽑아 공정하게 시행한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잠16:33)에 기초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실행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장차 하늘 가나안 역시 이같은 하나님 주권에 의한 공평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모두 주어질 것이다.

죄 사함의 은총을 받고 나의 자녀 된 자들아!(요일2:12-13)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한일서2:12-13) 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라고 각각 부른 것은 각각에게 말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말씀을 읽는 우리가 자녀로서, 아비로서, 청년으로서 말씀을 받아 더욱 깊이 새기고, 적용하게 함일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로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비와 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변함없이 알고 기억할 것은 우리가 믿고 아는 하나님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청년과 같은 그리스도인으..

옥중서간(13) / 정용섭목사

'대략 13세기에 시작된 인간의 자율성 운동은 지금 최고조에 달했다. 인간은 이제 모든 중요한 문제에서 ‘신이라는 작업가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과학과 예술과 윤리의 문제에서 아주 명확한 사실이 되고 말았다. 백 년 전부터 그것은 가속도를 내면서 종교적인 문제에도 적용되었다. 만사가 ‘신’ 없이도 여전히 잘 진행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마치 과학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영역에서 신은 끊임없이 그 활동 범위를 억제당하고 있으며 지반을 잃고 있다. 성인이 된 세계를 향해서 세계는 신이라는 후견인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문제’, 즉 죽음 같은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되며, 그 문제에는 신..

옥중서간(12) / 정용섭목사

'나는 바이체커의 을 아직도 탐독하고 있다. 신을 우리의 불완전한 인식의 보충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기서 분명해졌다. 즉 인식의 한계가 부단히 확대되면서 항상 신이 옆으로 내밀리고, 거기에 따라서 후퇴를 거듭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것에서가 아니라 인식하는 것에서 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신은 미해결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해결된 문제에서 우리를 붙잡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신과 과학적 인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 고난, 죄책과 같은 보편적인 인간 문제에 대해서는 타당한 것이다.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신을 제쳐두는 실정이다. 지난날에도 신 없이 이런 문제에 접근했다. 기독교만이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옥중서간(11) / 정용섭목사

'공습경보에도 불구하고 자네들이 성령강림절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바란다. 확실히 사람들은 삶의 위협에 직면해서 내면의 세계와 거리를 두는 것을 배운다. 거리를 둔다는 말은 너무 형식적인, 부정적인, 기교적인, 너무 스토아적인 것처럼 들린다. 차라리 사람들은 이런 나날의 위협을 그의 삶 전체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내가 여기서 관찰해 보건데 여러 가지 것을 동시에 마음에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비행기가 오면 그들은 그저 무서워하고,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그저 식욕에 충실할 뿐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하고, 약간 이루어지면 그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풍요와 자기 존재의 전체성을 보지 않고 스쳐지나간다. 그들에게는 객관..

건기를 지내는 믿음 (창 29:15-30) / 김영봉목사

해설: 야곱이 기약 없이 한 달의 시간을 보내자, 라반이 고용 계약을 제안합니다(15절). 야곱이 냉큼 돌아갈 것 같지 않았고, 겪어 보니 일도 꽤 잘 했습니다. 라반은 그를 잡아 둘 속셈으로 얼마의 보수를 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야곱은 이미 라헬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했는지 모릅니다. 저자는 큰 딸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고” 작은 딸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16-17절)고 소개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어 ‘라콧’은 “약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부드러운”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눈빛입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라면 레아의 눈빛이 강렬하지 ..

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하나님은 우리가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주십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오늘은 정현종 님의 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은 우리가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주십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유리가 바닥에 떨어지면 깨지고, 진흙이 떨어지면 바닥에 붙어 버리지만, 공을 튀어오릅니다.  시인은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탄력 나라의 왕자처럼 살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공은..

'예수의 영의 인도따라'(행15:36-16:15) / 신동식목사

예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은 복음 사역에 앞장서십니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때 복음을 전하였던 교회를 돌아보고자 바나바와 함께 떠나고자 합니다. 그런데 마가때문에 심한 논쟁이 있게됩니다. 결국 따로 다니기로 하고 헤어집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의 충돌이 여러의미를 줍니다. 물론 후에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이후 바울은 갈리디아 지역으로 가고 거기서 디모데를 만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아들이라 불리는 디모데는 이고니온 즉 갈라디아 지역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그런 데모데는 믿음이 성숙하였으며 바울의 훙륭한 동역자였습니다.복음 사역에 혹이라도 흠이 될까봐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사도와 장로들이 정한 규례를 교회가 잘 시행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글쓴이/봉민근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귀하게 지음 받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이다.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다.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다.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존재이기 때문이다.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결코 장난으로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분명한 목적이 계셨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며 그의 뜻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시다.나를 어느 날 갑자기 만드신 것이 아니다.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만세전에 택하시고 부르셔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하나님이 하시는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16-40)

행 16:16-40 묵상입니다. 귀신 들어 점치는 여종을 치유하는 바울과 실라.주인은 여종으로 인한 수익의 소망이 끊어지자바울과 실라를 소란죄로 고발하고 투옥시킵니다. 투옥 중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바울과 실라.성령님의 특별한 역사로 자유하게 됩니다.복음으로 인한 고난 속에서도 은혜를 누립니다. 구원의 길을 묻는 간수에게 복음을 전합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믿는 이들에게 생명과 함께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함께하시고,생명 구원의 역사와 함께 영광을 받으십니다.나에게 임한 복음의 역사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