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야곱이 기약 없이 한 달의 시간을 보내자, 라반이 고용 계약을 제안합니다(15절). 야곱이 냉큼 돌아갈 것 같지 않았고, 겪어 보니 일도 꽤 잘 했습니다. 라반은 그를 잡아 둘 속셈으로 얼마의 보수를 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야곱은 이미 라헬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했는지 모릅니다. 저자는 큰 딸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고” 작은 딸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16-17절)고 소개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어 ‘라콧’은 “약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부드러운”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눈빛입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라면 레아의 눈빛이 강렬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고, 긍정적인 의미라면 부드러운 눈매가 레아의 유일한 장점이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결혼 지참금이 없었습니다. 그는 칠 년 동안의 노동이면 결혼 지참금을 치루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18절). 라반은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19절). 야곱은 라헬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같이 느꼈다”(20절)고, 저자는 기록합니다.
저자는 곧바로 칠 년 후의 일을 전합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21절)라는 말을 직역하면 “같이 자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라헬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라반은 날을 잡고 성대한 결혼 잔치를 베풉니다(22절). 저녁이 되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라헬로 변장 시켜 신방으로 들여 보냅니다. 그 사실도 모르고 야곱은 초야를 치룹니다(23절).
아침이 되어 야곱은 레아가 곁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가서 항의합니다(25절). 라반은 관습을 핑계로 대면서, 칠 년을 더 일하겠다고 약속하면 라헬까지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26-27절). 라반은 야곱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라반은 두 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물건처럼 취급하는 사람이었으니, 조카를 속이고 착취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라반의 제안을 받아 들였고, 또 다시 칠 년의 노예 아닌 노예살이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는 관습대로 일 주일 동안 레아와 지냈고, 그 후에 라헬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28-30절). 레아는 아버지의 욕심으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묵상:
야곱은 흥정의 명수요 속임수의 귀재였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여 인생 역전을 이루려고 몸부림 치다 보니 흥정의 능력과 속임수가 발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발휘했던 흥정과 속임수와 꼼수는 그의 인생을 역전시키기는 커녕 더욱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판 그 구덩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원치 않는 이민의 길을 떠났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악하고 교활한 외삼촌이었습니다. 그는 속임수와 꼼수로 외삼촌과 겨뤄 보려 했지만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첫 칠 년 동안 야곱은 신나게 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이기 위해서 감당하는 것이므로 그 어떤 고생도 달게 받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외삼촌이 자신을 처음부터 속여 먹을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고 통탄해 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칠 년 전에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일을 기억하며 심히 회개했을 것입니다.
유대 문헌에 보면, 아침에 일어나 레아가 있는 것을 보고는 야곱이, “당신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지요? 간밤에 내가 라헬 맞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레아가 “당신이 칠 년 전에 아버지에게 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당신도, 아버지가, 에서가 맞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거짓말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칠 년 동안 야곱은 원치 않는 여인을 위해 원치 않는 노예 노동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첫 칠 년 동안 야곱은 베델에서 만난 하나님이 약속대로 자신을 지키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신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매일 감사의 기도로 살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라반에게 속아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칠 년의 노예 노동을 계속해야 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악한 자의 마수에 사로잡힌 자신을 하나님께서 내 몰라라 하시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에는 이렇게 ‘건기’(dry season)가 있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에 돌아보면 건기에 하나님은 더 은밀하게 일하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어지는 것은 대개 건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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