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하나님 체험의 의미 (창29:1-14)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4. 06:04

해설: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 다음 야곱은 다시 하란으로 향합니다. “줄곧 걸어서”(1절)는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학자들은 히브리어 동사 ‘나샤’(“들었다”)의 사용에서 새로운 출발 혹은 희망에 찬 발걸음을 전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발견합니다. 베델에서의 하나님 체험으로 인해 하란으로 향하는 그의 태도는 180도 바꼈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과제는 외갓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하란에 가서 나홀이나 라반의 이름으로 수소문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야곱은 큰 돌로 입구가 막혀 있는 우물을 만납니다. 우물 곁에는 양 떼 세 무리가 엎드려 있었습니다(2절). 그 우물은 목동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로서 목동들은 자신에게 속한 양떼가 다 모이면 돌을 굴려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닫아 놓곤 했습니다(3절). 

 

그 목자들은 나머지 양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야곱은 그들에게 다가가 출신지를 묻습니다. 그들이 하란에서 오는 길이라고 답하자 야곱은 라반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다행히 그들이 라반의 안부를 전해 줍니다(4-6절). 그 때 라반의 딸 라헬이 양떼를 몰고 그 우물로 오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양떼에게 물을 먹일 때 그들이 따르고 있었던 관습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7-8절).

 

그들이 대화를 하는 동안 라헬이 양떼를 데리고 도착합니다(9절). 야곱은 우물 아귀를 덮고 있던 돌을 굴려서 라헬이 양떼에게 물을 먹이도록 도와 줍니다(10절). 그런 다음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어 인사를 하고 큰소리로 울면서 자신이 라헬의 고모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이 행동에서 야곱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라헬은 즉시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11-12절). 라헬도 반가움으로 인해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헬에게서 조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라반은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13절). “달려갔다”는 표현에서 라반의 반가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데리러 왔을 때 라반은 엄청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은 그의 재산이 불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라반은 그런 선물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야곱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후 라반은 크게 실망합니다. 14절에 기록된 라반의 냉담한 반응에서 그의 실망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묵상:

베델에서의 하나님 체험은 야곱의 세계관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같은 땅에 있었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었지만, 전에 알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전날까지 그는 하나님 없는 세상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가설’인 세상에 살았습니다. 그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 질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땅은 땅이고 하늘을 하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자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으로 충만하며 자신이 선 곳이 곧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에 깨어 났습니다. 

 

그 체험은 하란으로 향하는 야곱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날까지 그의 발걸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을 것입니다. 원치 않는 유랑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 했을 것입니다. 길을 걷는 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날부터 그의 태도는 전격적으로 달라집니다. 그의 발걸음은 암사슴의 그것처럼 가벼웠고, 그의 표정은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빛이 났을 것입니다. 그는 하란까지 하룻길처럼 걸어 갔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 것을 생각하니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란에 도착하자 마자 외삼촌 라반의 냉대를 경험합니다. 라반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인물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는 야곱이 큰 선물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빈털털이 도피자로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차갑게 대합니다. 베델에서 뜨거워졌던 야곱의 마음도 라반의 냉대로 인해 잠시 식어졌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체험은 우리를 즉시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우리를 당장 완전한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대단한 하나님 체험을 했다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체험 이후에 역경과 고난과 환난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앞으로 당할 역경과 고난과 환난에 준비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델에서의 하나님 체험은 야곱이 하란에서 지낼 이십 년의 고난에 대해 그를 준비시키기 위한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