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거룩한 수동성 (창 28:1-9)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1. 05:05

해설:

이삭은 아내의 말대로 야곱을 불러 하란에 있는 외삼촌의 집으로 가서 아내감을 찾아 결혼 하라고 명령합니다. 야곱에 대한 복수를 벼르고 있던 에서로부터 그를 떼어 놓으려는 리브가의 계획이 이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1-2절). 

 

이삭도 자신을 속인 리브가와 야곱에게 분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 들이고는 야곱을 불러 다시 한 번 복을 빌어 줍니다(3-4절). 이로써 이삭은 야곱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언약의 적통임을 인정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후 야곱은 집을 떠나 밧단아람에 있는 라반에 집에 이릅니다(5절). 

 

에서는 야곱이 집을 떠나고 나서야 그 일을 알게 됩니다(6-7절). 그는 어머니와 동생의 계략에 의해 맏아들의 축복을 빼앗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야곱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합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의 두 아내를 가나안 여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싫어한다고 생각하고는 이스마엘의 손녀 마할렛을 데려다가 아내로 삼습니다(8-9절).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

 

묵상:

저자는,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삭은 충격을 받아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거렸다”(27:33)고 알려 줍니다. 이삭은, 남은 축복이라도 빌어 달라고 통곡하며 사정하는 에서를 부둥켜 안고 같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리브가도, 야곱도 대면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고 의지했던 아내가 자신을 감쪽같이 속여 넘길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계략을 그대로 따라 행한 야곱에게도 분노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는 한 동안 미움의 불길로 인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는 평생토록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 사라에게, 청소년 시기에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결혼하고 나서는 리브가에게, 그랄 지방에 피난했을 때에는 아비멜렉에게 휘둘렸습니다. 워낙 유약하게 태어난 데다가 어머니의 과보호 때문에 그는 정신적으로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살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을’이었습니다. 한 번도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만 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그리고 그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삭이 아내의 말을 수용하고 야곱을 불러 축복하고 밧단아람으로 보내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런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리브가와 야곱이 자신을 속인 것이지만,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배신으로 인한 분노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삭은 야곱을 불러 축복을 다시 확인해 주고는 떠나 보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형 이스마엘이 아니라 둘째인 자신에게 이어진 것처럼, 그것이 맏아들 에서가 아니라 둘째에게 이어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는 겸허히 받아 들인 것입니다.

 

현대 사조는 우리에게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이다. 주도적으로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생을 사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당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삭에 관한 많지 않은 이야기들은 철저히 수동적인 인생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더 유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