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진정한 복 (창 30:1-24)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7. 07:03

해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지만 자식을 얻지 못했기에 늘 상실감에 빠져 살았습니다. 자녀들로 인해 남편의 사랑을 언니에게 빼앗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라헬은 그 일로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습니다(1절). 그럴 때마다 야곱은, 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니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답합니다. 저자는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2절)고 표현함으로써 라헬의 성화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아내에게 화를 터뜨릴 정도로 라헬의 히스테리가 심했다는 뜻입니다.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대리모로 삼아서라도 아들들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할머니 사라가 그렇게 했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라헬의 요청에 따라 야곱은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를 얻습니다(3-8절). 그것을 보고 레아는 자신의 몸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갓과 아셀을 얻습니다(9-13절). 자매의 경쟁이 점점 심해져 갑니다.  

 

얼마 후,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합니다. 자귀나무는 당시에 임신촉진제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을 알고 라헬이 레아에게, 자귀나무를 자신에게 주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도록 양보하겠다고 흥정을 합니다(14-15절). 그렇게 하여 야곱은 레아와 다시 잠자리를 같이 했고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습니다(16-20절). 레아는 얼마 뒤에 딸을 얻고 디나라고 이름 짓습니다(21절). 

 

라헬은 도무지 당할 수 없는 언니의 생산력에 항복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경쟁으로는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호소를 들으시고 라헬에게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 라헬은 아들을 하나 더 낳게 되기를 기대하며 그 아이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짓습니다(22-24절).

 

묵상:

앞에서 레아의 심정을 들여다 보았으니, 이제 라헬의 심정을 들여다 봅니다. 당시에 여성에게는 남편의 능력과 자녀의 수가 힘의 척도였습니다. 시편에서는 자녀를 많이 둔 사람을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시 127:5)에 비유했습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래가 걱정이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자신만 홀로 남으면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언니는 아들을 넷이나 두었으니, 지금은 비록 남편의 무관심으로 인해 불행하지만 미래가 든든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라헬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아들들로 인해 언니에게 마음을 두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두려웠을 것입니다. 

 

라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히스테리가 늘어만 갔습니다. 그토록 라헬을 아꼈던 야곱이건만 때로 그의 히스테리를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곤 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라헬은 몸종을 통해서 두 아들을 얻습니다. 하지만 뒤질세라 언니도 몸종을 통해 아들 둘을 더 얻습니다. 르우벤이 자귀나무를 구해 언니에게 주자, 라헬은 남편과의 잠자리를 양보하는 조건으로 자귀나무를 얻습니다. 그런데 닫힌 줄 알았던 레아의 태가 열려 아들 둘과 딸을 더 얻습니다. 이 즈음에 라헬은 언니와 싸워 이기려는 모든 노력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상황에서 라헬은 비로소 하나님에게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언니를 탓하고 남편을 탓하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께 고개를 돌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레아가 남편의 일관된 무관심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처럼, 라헬도 불임의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수천 년도 지난 후에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인생에 필요한 것을 추구하며 살았고, 얻은 것도 있었고 얻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아와 라헬은 모두 인생을 통해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현세에서 얻고 잃은 것을 따지자면 누가 더 복되고 누가 더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똑같이 복된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습니다. 인생 여정을 통해 얻어야 할 것 중에 최고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금 깨닫습니다.